[기고] 여성 과기인 도약이 혁신의 마중물

2025. 9. 2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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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덕 ETRI 에어모빌리티연구본부장


대한민국은 지금 인공지능, 반도체, 우주항공, 바이오와 같은 국가 전략기술의 최전선에서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 무대에서 여전히 충분히 드러나지 못한 존재가 있다. 바로 여성과학기술인이다. 여성의 참여와 권익 신장은 단순히 성평등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 국가 과학기술 역량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핵심 전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2025년 기준, OECD 29개국 중 28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러한 평가는 13년째 꼴찌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연구 현장에서 여성들이 승진과 보직, 연구 기회의 배분에서 여전히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음을 방증한다. 과학기술계에서 다양성과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창의적 발상과 혁신적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여성과학기술인의 성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기술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국가적 과제인 셈이다.

여성과학기술인의 경력은 생애주기마다 여러 갈림길에 놓인다. 출산과 육아, 돌봄의 책임이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구조 속에서 많은 인재들이 연구를 중단하거나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따라서 연구 현장에서는 단절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신진 연구자가 학문적 기반을 다지고, 중견 연구자가 리더십을 발휘하며, 고경력자가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경력 복귀 지원과 재교육 과정, 산학연 전환을 돕는 제도적 장치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

또한 여성과학기술인의 리더십 기회 확대 역시 절실하다. 리더십은 직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궤적을 통해 후배에게 지혜를 전하고, 연구 현장에서 팀을 이끌며,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모든 과정이 곧 리더십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성과학기술인이 이러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앞으로는 선배와 후배가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학습할 수 있는 멘토링 체계와 리더십 교육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과학자가 연구실 안팎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아울러 여성과학기술인을 뒷받침하는 조직의 지속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단기적 재원 구조로는 안정적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장기적이고 다원화된 재정 전략이 마련되어야만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 정책과 연계한 예산 확보, 기업과 연구소와의 협력 확대, 기관회원 제도의 도입 등 새로운 재정 인프라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과 형평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제도적 기반이다. 연구 평가와 보직 배정, 인사 관리 과정에서 성별로 인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가 정비되어야 하며, 여성 연구자가 책임자나 리더의 위치에 설 수 있도록 적극적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의 연구 활동은 이제 국경을 넘어 세계와 연결되고 있다. 국제 학술대회와 공동연구, 글로벌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과학기술인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은 곧 차세대 여성 인재들에게 국제 무대에서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의 여성과학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한층 더 강화되어야 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의 성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저출산과 인재 유출, 이공계 기피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해법이다. 연구 현장에서 여성 과학자가 당당히 리더로 서고, 창의적인 연구성과를 만들어내며, 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열어가는 주역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정책적 제도적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성과학기술인의 권익 보호와 도약은 곧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이고 국가 혁신역량을 좌우한다. 사회와 제도가 응원하고,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할 때 여성과학기술인은 더 큰 무대에서 빛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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