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만찬장, 박물관 무산되고 호텔로…한 달 앞두고 또 뒤집혀

장성재 2025. 9. 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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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장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로 변경됐다.

불과 한 달여를 앞둔 시점에서 결정이 변경되면서 준비 부실과 경주의 문화적 상징성 약화 논란이 지역사회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행사를 준비하는 경주시 APEC 담당자는 "완전히 바뀐 것"이라며 "정상 만찬장의 의미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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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교→박물관→호텔, 수차례 바뀐 만찬장…준비 부실, 경주 상징성 퇴색
국회 특위 기본시설 미비 ‘플랜 B’ 제기…공정률 95% 보고 이틀 만에 변경
국비 80억 투입된 박물관 신축건물, 정상 만찬장 무산…2년 뒤 철거 가능성
2025 APEC 정상회의 만찬장 후보지로 거론된 월정교와 국립경주박물관,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 전경. <영남일보DB>

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장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로 변경됐다. 불과 한 달여를 앞둔 시점에서 결정이 변경되면서 준비 부실과 경주의 문화적 상징성 약화 논란이 지역사회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경주시는 당초 지난해 5월 개최지 심사과정에서 신라 전통미와 역사성을 갖춘 월정교를 만찬장 후보지로 제안했지만 정부가 목조 구조물의 안전성과 대규모 인원 수용 인프라 부족으로 제외했다. 이어 지난해 6월 경주가 개최지로 선정된 뒤 첨성대 동부사적지, 황룡원, 우양미술관이 후보로 거론됐지만, 문화재 조사·보안·공사 기간 문제로 모두 탈락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만찬장으로 확정된 것은 지난 1월이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후보지를 둘러본 뒤 박물관을 최적지로 낙점했다. 총사업비 국비 80억원(건축비 41억원)을 들여 박물관 중앙 마당에 연면적 2천㎡ 규모의 신축 목조 건물을 세워 정상 만찬을 치른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각국 정상은 물론 글로벌 기업 CEO, 수행원 등 700여 명을 수용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선정 이후에도 논란이 이어졌다. 부지 확정이 늦어 행정 절차도 지연됐고 지난 5월 시공사 선정 뒤에야 겨우 착공이 이뤄졌다. 지난 6월 말 국회 APEC 특위 의원들은 현장 점검에서 "공정률(당시 20%)이 이 정도라면 매우 심각하다. 국가 행사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해외 정상들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달 4일 열린 국회 APEC 특위 전체회의에서도 만찬장 준비의 시급성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정상 간 비공식 외교가 이뤄지는 핵심 무대인데도 화장실, 조리실 같은 기본 시설이 미비했고 공사 진척도 더딘 탓에 '플랜 B'(장소 변경)를 가동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나왔다.

지난 17일 공정률 95%를 기록한 국립경주박물관 중앙 마당 만찬장 신축 건물.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만찬장 공사가 속도를 내면서 이달 17일 정상회의 추진상황 보고에서는 공정률이 95%라는 수치가 제시됐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인 19일 APEC 준비위원회가 보문관광단지 내 라한호텔 대연회장을 최종 만찬장으로 확정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호텔은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박물관 개최 구상과 비교해 경주의 문화적 상징성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국비 80억원이 투입된 박물관 신축 건물은 정상 만찬장으로 쓰이지 못한 채 APEC CEO 써밋과 연계한 기업인들을 위한 장소로 제공된다. 이후에는 2년가량 임시로 활용된 뒤 철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행사를 준비하는 경주시 APEC 담당자는 "완전히 바뀐 것"이라며 "정상 만찬장의 의미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지역 분위기는 냉담하다. 시민 최창원(62)씨는 "세계적 행사를 앞두고 만찬장을 여러 차례 바꾼 건 행정 부실의 민낯"이라고 했다. 경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지성(55)씨는 "애초에 일부 경주시민들은 동궁과월지나 월정교에서 열리기를 기대했다"면서 "호텔 만찬으로 결정돼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는 대신 "국내외 인사를 폭넓게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여를 남기고 뒤집힌 이번 결정에 대해 지역사회에서는 경주가 내세운 '문화적 무대'라는 구상이 사실상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