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가족 모임

2025. 9. 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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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도 다른 집처럼 구성원에 변동이 있었다.

쓸 땐 나 자신을 내려놓는 만큼 기회가 있을 때 효도하는 편이 낫다.

쓰기 이전에 삶이 있다는 걸 그만큼 생생하게 느낀 때가 없다.

한유리 작가는 '불멸의 인절미' 인터뷰에서 병이 든 반려동물을 두고 출근할 때의 죄책감, 값비싼 병원비를 보며 느끼는 막막함을 이야기하며 그땐 남을 해쳐서라도 돈을 벌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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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도 다른 집처럼 구성원에 변동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땐 친척집에 얹혀살았고, 한동안 1990년대의 가족 모델인 1남 1녀의 4인 가족으로 살았다. 스무 살에 오빠가 집을 나간 뒤, 나도 잠시 해외에 살았다. 돌아오고선 한동안 할머니를 모셨다. 몇 년 전 고모 댁으로 거처를 옮긴 할머니는 올봄 돌아가셨다. 그간 개가 한 마리 죽었다. 지금은 부모님과 나 셋이 산다.

지난 주말 봉평 이효석문학관에서 열린 시상식에 다녀왔다. 비가 내려 실내에서 진행됐다. 엄마는 아쉬워했어도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내 자리 같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나. 작가에게 발표된 작품은 손을 벗어난 자식이다. 수상은 기뻐도 솔직히 제가 알아서 하는구나, 싶다. 영광이 내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참여자의 면면.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변변찮은 직업 없이 줄곧 생계가 불안정했으니, 면이 서지 않았을 어머니를 위해 넉넉히 식구들을 불렀다. 누군가 이희주의 결혼식이냐고 농담을 했다. 낯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상관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자식 노릇을 하겠는가. 쓸 땐 나 자신을 내려놓는 만큼 기회가 있을 때 효도하는 편이 낫다.

지난해 작가가 많이 모인 행사에 갔다. 주말을 포함해 며칠은 숙박을 하고, 며칠은 퇴근 후 술자리에 부지런히 참석했다. 테이블에 모이면 다들 문학 이야기를 했다. 천장의 석면공사니 뭐니, 골치 아픈 이야기만 듣다가 간만에 지적인 대화를 나누니 아주 흥이 났다. 그런 자리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라 신이 나서 엿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숙소 근처였다. 통화 중인 한 선생님을 만났다. 가까이 있어 본의 아니게 내용이 귀에 들렸다. 가족의 이야기였다.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 그랬지, 참. 저 사람도 이 자리를 떠나면 생활이 있다. 기름 묻은 접시를 닦고, 보험회사와 씨름하고, 병원 예약을 해야 한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쓰기 이전에 삶이 있다는 걸 그만큼 생생하게 느낀 때가 없다.

그 행사엔 내 짝으로 배정된 외국 작가가 있었다. 원래는 행사가 끝난 뒤 그와 저녁을 먹으려 했다. 그러나 나는 외국 작가와 사적 친분을 만들 기회 대신, 부모를 선택했다. 구도심의 오래된 노포에서 딸이 무대에 선 걸 기뻐하는 어머니에게 맞장구치고, 술 마신 아버지를 택시 뒷좌석에 실어 보냈다. 부모 앞에선 평생 재롱잔치를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봉평 이효석문학관 앞에는 메밀꽃밭이 있다. 매년 거기에서 문화제도 하고, 시상식도 한다. 올해는 가물어 메밀꽃밭을 한 번 엎었다. 엄마는 시상식에 꽃이 피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 시상식 당일에 비가 온다니 울상이 됐다. 밖에서 하는 게 좋은데. 그때만큼은 기후위기나 가까운 땅의 가뭄도 신경 쓸 일이 안 되었다.

한유리 작가는 '불멸의 인절미' 인터뷰에서 병이 든 반려동물을 두고 출근할 때의 죄책감, 값비싼 병원비를 보며 느끼는 막막함을 이야기하며 그땐 남을 해쳐서라도 돈을 벌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그제야 사랑이 참 무섭다는 걸 실감했다며,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사적인 사랑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위해 가뭄을 지속하겠다고 했으니 그 말이 맞는다. 사랑은 정말 무섭다.

[이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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