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2장] 집강소-민본의 시대(234회)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청년군사 송문수가 물었다.
"동학농민군이 해산한다면 청군과 왜군이 과연 물러난답니까?"
강대국과의 약속이나 협약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약소국에게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이 하면서 강대국의 희생물로 삼는 것을 그는 자주 보아왔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동학농민군을 치기 위하여 들어왔는디 농민군이 해산하면 우리를 칠 명분이 사라지지 않겄는가. 청군·왜군이 조선반도에 주둔할 이유가 없단 말이오."
"순진한 생각입니다. 저들은 이를 빌미로 침략의 이빨을 갈고 있소이다. 임금이란 자는 이런 후과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동학군을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외세를 끌어들였는 바, 나라의 장래가 심히 우려됩니다. 저들은 그 이상의 대가를 노리고 있소."
"그 이상의 대가?"
김덕명이 물었다.
"공짜 없는 출병이 어디 있습니까. 어리석은 임금이 당할 뿐입니다. 일본은 조선의 정정 불안을 이용하여 파병을 기다려왔고, 그것을 제국의 약탈 단계로 이용하여 대륙 진출의 발판을 다지고, 뒤이어 중국과 전쟁을 벌여 중국 영토를 빼앗고, 노대국 러시아와도 붙겠다는 야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 첫 희생물이 조선반도올시다."
손화중이 답했다.
"그러므로 조선 침략의 근거를 없애기 위해 동학농민군대가 자진 해산하는 것이오. 저들이 주둔할 명분을 주지 말자는 것이고, 우리가 약속을 지킴으로써 그들 양심에 호소하자는 것이오. 우리는 군자의 나라이니 약속을 지킵시다. 그렇지 않으면 대놓고 우리나라를 넘볼 것이오."
"저들이 일단 군사를 들여놓은 이상 다른 구실을 붙일 것입니다. 국제질서는 선의로 운영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일반이면 우리 군사가 해산할 것이 아니라 더 무장하여 굳건하게 버티어야 합니다. 조정과 협상을 통하여 자국 군대를 키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야 합지요. 대화가 절실합니다."
"우리를 반도(叛徒)로 몰아 처단하기 위해 외국군을 불러들였는디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불가능하오."
"좌우간 우리가 해산하겠다는 이상 외국군 철수를 강력하게 요구해달라는 것이오."
"완고한 그들이 받아주겠냐고? 사대부, 각 관아, 양반 계급, 유림 등 기득권들이 하나같이 우리를 반대하고 있는디, 조정은 그들의 입김 때문에도 우리를 천하에 없는 역도로 몰아갈 뿐이오."
"그렇게도 사물을 꿰뚫어 보지 못하다니…"
송문수가 탄식하였다.
"나라를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비도들에게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세계관이오."
"그럴수록 명분을 주지 않도록 일단 해산하고, 대신 집강소를 제대로 운영합시다."
그러나 여전히 젊은 층이 반발하였다.
"협상력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으면 버틸 힘이 있지만, 일단 물러나보시오. 쥐도 새도 모르게 가는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세는 기울었다. 여러 차례 전쟁 끝에 군사들의 피로도가 겹친 데다 한창 농사철이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되 유사시 재소집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이렇게 하여 농민군은 해산하고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전주에 총본부를 두고, 전라도 53개 주요 군·읍·면에 집강소를 설치하였다. 집강소를 거부하는 나주와 남원을 제외하면 전라도 전역과 일부 충청도에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무안군 해제면 보천동이란 마을에 훈장 이윤서가 살고 있었다. 해제면은 본래 함평현 소속이었으나 무안군에 편입된 지역이다. 육로가 발달하지 못한 당시 해상로를 통해 영광·함평과 왕래가 잦은 지역이고, 그래서 조선조 말까지 함평현에 소속되었다.
이윤서는 과거 시험을 보러 한성을 자주 내왕했으나 번번이 낙방하였다. 자그마치 네 번째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