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광장] 경주APEC, 동아시아 해양시대를 열어라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5. 9. 21. 16:3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5경주APEC' 시즌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경주APEC을 완벽하게 성공시키려면 고대부터 육상실크로드와 해양실크로드의 거점이었던 해양도시 경주를 부활시켜야 한다. 그래야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바다의 대왕암에 누워 계신 문무대왕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리라. 해양은 길인 동시에 벽이다. 해양이 벽이 되는 균열의 시대에는 해양은 전장(戰場)이 되었고, 해양이 길이 되는 통합의 시대에는 시장(市場)이 되었다. 시장길의 시대에는 교류와 교역의 길이 활발하게 작동했다. 문화가 풍성했던 통일신라와 고려, 당송시대를 보면 비단과 도자기를 비롯한 각종 물산과 다양한 인재들이 오고 갔다. 당시 경주는 해상실크로드와 육상실크로드의 출발점이고 종점인 거점도시였고, 교류와 소통이 만든 풍요로움으로 다채롭고 화려한 문화꽃을 피웠다.

그러나 근대 시기 해양이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통로가 되면서 바다는 국가와 국가, 사회와 사회를 단절시키는 철벽으로 변했다. 시간이 지나 냉전이 해체되고 남북과 동서가 상호교류하는 화합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여전히 역사적 상흔이 남았다. 특히 동아시아 해역은 제국주의가 남겨놓은 잔해들로 인해 아직도 일촉즉발의 갈등이 곳곳에 도사린다.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의 불완전하고 미숙한 마무리, 그로 인해 발생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으로 한반도분단과 양안문제가 생겼고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쿠릴열도(북방4개 도서), 독도, 조어도(센카쿠열도),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해양갈등도 진행 중이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러시아, 한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해양경계선 구획도 완전히 정리되지 못했고, 1994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협약에서 규정한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 문제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공공재이자 평화의 공간이어야 할 해양이 갈등과 분쟁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해양탐사 및 시추기술이 발전되면서 해양을 둘러싼 국가간 이익다툼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중간 서해잠정조치수역에서 중국의 인공구조물 설치, 이어도 해양관측소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 한일공동개발수역인 제7광구 문제,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춘샤오 유전개발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의 근원은 국가들의 물질적 현실주의와 국제법적 기준의 혼재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양경계획정에서 해양국가인 일본은 '중간선 원칙'을, 대륙국가인 중국은 '대륙붕 자연연장원칙'을 주장한다. 그런데 1974년 한일대륙붕협정에서 조인한 한일공동개발구역(JDZ)인 '제7광구'는 1969년 북해대륙붕 소유권 판결의 판례인 '대륙연장선'에 근거하여 설정되었다. 동중국해에서 중-일이 논쟁 중인 '빨대효과'도 과학적 근거가 미비하지만 논쟁거리다. 얽히고 설킨 동아시아 해양문제는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난해하지만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과감하게 자르던지 덩샤오핑의 말처럼 "후대에 맡기면" 된다.

2025경주APEC, 해양시대를 여는 기점으로 삼으려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해양을 벽이 아닌 길로 인식하고 침략로가 아니라 교역과 교류의 길로 바꾸어야 한다. 이익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아니라 해양보호와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근대 제국주의 시기 오인된 해양인식을 식량자원 공급처와 교류공간이라는 공공재로 바꿀 수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상호협력체제를 갖추면 동아시아 지역은 새로운 중심으로 거듭날 것이고 동아시아 해역은 갈등과 분쟁 대신 평화를 제조하는 생활권( lebensraum)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2025경주APEC'은 길을 내고 소통하는데 정성을 쏟아야 한다. 내륙으로는 중국의 일대일로(B&R),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아시안하이웨이를 유럽-러시아-중국-북한-한국-일본으로 연결해야 한다. 해상으로는 중국-한국, 한국-일본 해저터널을 연결하여 해상, 해저에 해양통로를 구축해야 한다. 해상통로가 개통되면 해상무역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생존의 필수 요소인 석유, 액화천연가스, 희토류, 광물자원, 식량 등 경제적 기능과 사회 안전에 중요한 요소들을 수급할 수 있다. 만약 경주 중심의 육상-해상통로가 중국-일본-러시아와 연결되면 한반도의 분단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중국이 설계한 일대일로 청사진을 보면 경의선과 경원선으로 연결되는 두 갈래의 철길이 한반도 구간을 통과한다. 현재 단절된 북한 구간만 연결하면 동아시아의 소통과 교류가 원활하게 되어 전장이 시장으로 전환될 수 있다.

'2025경주APEC'의 가장 중요한 숙제는 한중일과 러시아 정상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북극항로 개통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북극항로가 개통되면 동서양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다. 중국-한국-일본을 거쳐 북극해를 통과하여 유럽으로 연결되는 최적의 항로가 개통되면 그 길목에 있는 포항-경주-울산-부산 중심의 동해안 시대가 열린다. 현재 말라카해협의 통로에 위치한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이점을 대한민국이 가질 수 있다.

동해안 해양시대를 여는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은 경주시민의 몫이다. 다 함께 천년미소를 머금고 숙박업소와 음식점의 바가지카르텔 벽과 불친절의 벽을 무너뜨리는 용기를 내야 한다. 그래야 백년, 천년 후에도 멋진 경주로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