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수수료 100배 올린다던 트럼프 행정부 “신규 신청자에게만 적용” 급선회?
기업 사이에서 혼란 벌어지자 진화 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문직 취업비자(H-1B) 신청 수수료를 기존보다 100배 인상한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로 책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혼란이 확산하자 하루 만에 새 수수료 정책이 신규 신청자에게만 적용된다고 해명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간) “해당 조치는 신규 비자 발급에만 적용되며 기존 비자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엑스를 통해 밝혔다.
레빗 대변인은 “이는 연간 수수료가 아닌 일회성 수수료”라며 “이미 H-1B 비자를 소지하고 해외에 체류 중인 경우 재입국 시 수수료를 부과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의 발언과 배치된다. 러트닉 장관은 전날 취재진에게 새로운 비자 수수료가 연간 부과될 것이라며 “회사는 그 사람이 정부에 연간 10만달러를 지불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전문직 비자’로 불리는 H-1B 비자 수수료를 1000달러(약 140만원)에서 10만달러로 인상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H-1B 비자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외국인 노동자가 미국에서 3년간 체류하며 일할 수 있는 비자로, 매년 8만5000건이 추첨을 통해 제한 발급된다. 새 수수료 정책은 21일 오전 0시1분부터 발효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포고문 발표 이후 기업들 사이에서 혼란이 벌어진 것이 백악관의 입장 변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JP모건 등의 기업들은 해외 체류 중인 H-1B 비자 보유 직원들에게 미국으로 돌아오라는 안내문을 발송했다.
백악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H-1B 비자를 둘러싼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프 조지프 미국 이민 변호사 협회 회장은 “다른 단체들과 협력해 이번 주말까지 임시 가처분 명령을 청구하는 법적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직원과 그 가족, 미국 고용주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회원들과 협력해 전체적인 영향과 최선의 향후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H-1B 비자 소지자의 70% 이상이 인도 출신인 만큼 미국과 인도의 관계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가족에 위협이 되는 인도주의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인도 산업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가 (새로운 지침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은 H-1B 비자로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돼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반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등 실리콘밸리 기반의 지지자들은 이 비자가 인재를 미국으로 유치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H-1B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면서 숙련된 외국인 기술 노동자들의 고용이 줄어들어 인공지능(AI) 분야 등에서 국가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술중심 기업들의 연합체인 챔버오브프로그레스의 최고경영자 아담 코바세비치는 “AI 분야의 최고 인재는 한정되어 있고 그중 일부는 외국인”이라며 “한 손을 등 뒤로 묶은 채 중국을 상대로 AI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100만달러(약 14억원)를 내면 영주권 취득이 가능한 ‘골드 카드 비자’를 발급하는 내용의 행정 명령에도 서명했다.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 연방이민국 고위 공무원이었던 더그 랜드는 트럼프 행정부의 새 비자 정책에 관해 “이건 진짜 정책이 아니라 이민 제한론자들을 위한 팬서비스일 뿐”이라며 “법원에서 이의가 제기된 후 확실히 뒤집힐 것”이라고 말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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