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수익 90% 내놓으라’는 곳에 투자할 기업은 없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2025. 9. 2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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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투자 기업도 대규모 단속…기업들 “어찌하란 말이오”
“투자 구조와 수익 배분에서 균형점 찾아야”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지난 4월부터 세계를 상대로 벌인 무역전쟁에서 거의 모든 상대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하는 형태의 합의를 받아들였다. 트럼프의 부당한 보호무역정책에 단호한 보복을 공언하던 유럽연합(EU)도 결국 6000억 달러의 투자 약속과 함께 미국의 수출품에는 무관세를 적용하는 반면, EU의 미국 수출품에는 15% 관세를 부과하는 불평등한 협상에 동의했다.

한국은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하면서 상호관세율을 낮추기로 했다. 우리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3500억 달러는 엄청난 돈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60여 년간 미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무역흑자를 모두 합쳐야 4500억 달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 협상단과 무역 합의를 타결한 후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민간기업이 동맹 비용 책임져야 하나"

한국은 대규모 투자 약속을 통해 한미 관계를 안정시키는 방향을 선택했지만,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잘됐다는 정상회담 성과는 적어도 아직은 동맹 관계 손상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피한 것뿐이다. 우리 기업들은 지금도 자동차를 포함해 모든 대미 수출품에 25% 상호관세를 내고 있다.

정부는 3500억 달러라는 투자 패키지 구성 문제가 쟁점이라고 한다. 사실 투자 패키지를 어떻게 구성할지는 관세 협상 이후 계속 제기된 문제였다. 우리 정부는 직접 투자는 일부고, 대부분은 대출이나 보증 위주로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백악관은 투자할 곳을 트럼프 대통령이 지정하면 한국이 현금을 직접 넣고,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간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이런 발표를 정치적 수사로만 치부했고, 수익 90% 확보 주장은 정상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얘기라며 일축했다. 정부의 구상은 국내에서 설명한 대로 보증을 통한 간접 투자나 사업성 평가에 기반한 민간 중심 투자 방식을 제안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발표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다.

우리보다 먼저 진행된 미·일 무역 협상 결과도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할 곳을 정하면, 45일 이내에 투자금을 보내겠다는 불리한 내용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투자 이익은 미국과 일본이 90 대 10으로 나누기로 했다. 미국은 우리에게도 일본과 비슷한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사업을 지정하면 한국은 바로 돈을 내고, 투자금 회수 뒤에는 미국이 이익의 90%를 취한다는 방식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민간 투자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익 90%를 내주고도 투자를 집행할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인도나 브라질처럼 미국과 대립각을 세울 여건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입장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정부는 미국의 펀드 조성 요구에 대응해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제안했다고 한다. 통화스와프는 두 나라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제도로 미국은 영국과 일본, 캐나다, EU, 스위스 등 5개국과만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우리로서는 통화스와프는 물론이고 투자금 운용권과 수익 분배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비자 문제를 푸는 것도 급하다. 현재의 비자 제도로는 한국 기업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 숙련 기술자를 위한 특별 비자 트랙 협상이 필요하다. 거액을 투자한 한국 기업이 예상치 못한 대규모 단속을 당한 것은 심각한 사안이다. 이번 일이 한미 관계에 치명적이지 않다고 해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풀려난 것을 두고 정상의 신뢰 관계가 쌓이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정부가 지금 할 일이 아니다. 순서로 치자면 미국의 공식 사과부터 받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다 체포돼 약 일주일간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돌아왔다. 이 공장은 내년 가동을 앞두고 있었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63억 달러를 투자한 곳이다. 정식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편법으로 이뤄진 근로 관행이 문제였다고 한다.

9월11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LG엔솔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 국토안보부의 불법체류자 단속 후 건설이 전면 중단됐다. ⓒ연합뉴스

63억 달러 투자한 곳에서 벌어진 구금 사건

파견 직원들의 비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한국 기업들은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단기 비자 인력을 투입했으며, 이로 인해 고용 구조의 불법성 논란이 제기됐다. 정부는 2012년 이후 한국인 전문인력을 위한 별도의 비자 쿼터 신설을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지만, 성과가 없었다.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직원을 파견한 기업은 물론, 이 같은 상황을 알고도 방치한 외교 당국에도 분명 일정한 책임이 있다. 미국 역시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싶다면 비자 제도 확대 등 제도적 기반 정비부터 선행했어야 마땅하다.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중 캐나다, 멕시코에는 H-1B 취업비자를 무제한 발급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이 같은 혜택을 주지 않고 있다.

사건을 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응은 묘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할 때 숙련 노동자를 함께 데려오기를 원한다는 것을 '이해'하며, 동시에 그들이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교육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사과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국을 비판하지도 않고 있다. 관세를 무기로 투자를 압박해 왔던 미국 정부가 오히려 투자 기업을 공격한 셈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언론은 이번 사건을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제조업 확대와 강경한 이민 단속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가 충돌한 결과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단순한 법 집행의 결과로만 보기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단속 대상이 된 한국인들은 밀입국자가 아니다. 그러나 연방 및 주 정부 소속 10개 기관에서 400명이 넘는 단속 인력을 투입했고, 장갑차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 분명한 메시지를 보여주겠다는 목적이 있었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는 중무장 요원들이 노동자들을 수갑과 족쇄로 묶는 단속 영상을 자랑하듯 공개했다. 많은 투자 기업에서 일종의 관행처럼 이뤄져온 일을 미국 이민 당국이 이제야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도 이번 단속이 수개월간 수사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사전 경고나 협의도 없이, 왜 지금 그것도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단속을 시도한 걸까. 정치적인 배경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속이 이뤄진 바로 다음 날, 미국 노동부는 제조업 일자리가 4개월 연속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8월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비농업 부문 취업자 수는 2만2000명 증가에 그쳐 시장 예상치인 7만5000명을 크게 밑돌았다. 실업률은 4.3%로 올라 2021년 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일을 사전에 보고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만약 사전에 알았더라도 막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는 악화하는 고용 지표 속에서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지킨다는 의지를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한미 무역 협상과 무관한 사건으로 보기도 어렵다. 구금됐던 한국 근로자들이 귀국한 바로 그날, 미국 상무장관은 한국이 무역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 양국은 앞서 7월말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에 합의한 바 있다.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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