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에도 밀리는 韓 스타트업 생태계...“현금성 지원책 바꿔야”

정호준 기자(jeong.hojun@mk.co.kr) 2025. 9. 2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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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데이비드 로카 스타트업블링크 CEO
전세계 지역별 스타트업 경쟁력 분석하는 기관
지원금 중심 모델·과잉 보호 문화 지적하며
“막대한 보조금 통한 육성 정책은 이제 한계”
엘리 데이비드 로카 스타트업블링크 CEO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금 고착화된 상태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보조금 정책을 펼치는 정부와 스타트업이 과도하게 밀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평가해 온 스타트업블링크의 엘리 데이비드 로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 같이 진단했다.

스타트업 전문 시장조사기관인 스타트업블링크는 매년 전 세계 1000개 이상 도시들의 생태계 점수를 평가해 순위를 발표한다. 세계 각지를 누비며 스타트업 생태계를 분석하는 로카 CEO가 한국을 찾아 내린 진단은 냉정했다.

한국 정부의 과도한 현금성 지원을 지적한 로카 CEO는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는 스타트업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이를 세일즈하는 구조”라며 “한국에는 좋은 제품 대신 정부의 보조금이 목표가 된 기업들이 많다. 이렇게 되면 스타트업으로서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 해외로 진출하려는 동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 형성이 늦었던 만큼, 정부 모태펀드와 정부 주도형 벤처캐피털(VC), 초기창업패키지와 같은 정책을 통해 사업 자금을 지원하고 창업을 활성화하는 데 집중해 왔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내년에 편성한 창업·벤처 예산도 올해보다 23.3% 증가한 4조3886억원에 달한다.

로카 CEO는 이러한 지원책이 생태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전 세계적인 수준의 스타트업 생태계로 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스타트업블링크에 따르면 서울의 스타트업 생태계 수준은 전 세계 20위로 중국 베이징(5위)과 일본 도쿄(13위)에 한참 밀린다.

특히 그는 “한국은 마치 놀이터에서 아이(스타트업)의 손을 잡고 이곳 저곳 끌고 다니는 것 같다”며 “정부 역할은 스타트업들이 뛰어놀기 좋은 놀이터 자체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과잉 간섭이 오히려 스타트업의 자율성을 해치거나, 자국 기업에 대한 과잉 보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장하려면 처음부터 해외 시장 향해야”
스타트업블링크의 스타트업 생태계 우수 도시 순위. 대한민국 서울은 20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베이징(5위)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으며 일본의 도쿄는 13위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 스타트업블링크]
물론 양자컴퓨팅처럼 장기간 연구개발(R&D)이 필요한 딥테크 분야나 방산 기술처럼 국가 전략에 직결되는 스타트업들의 경우 정부의 초기 지원이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

로카 CEO는 이에 대해 “딥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면서도 어떤 종류의 스타트업에 지원할 지에 대한 전략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봤다.

특히 한국 시장에만 머무르는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은 과감히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카 CEO는 “보호받는 아이들은 결코 위대함을 성취할 수 없고,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며 “한국 시장만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들이 한국에만 머무르는 경우 결국 신생 스타트업들이 기존 스타트업과 한정된 국내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만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처음 창업부터 영어 구사력을 탑재하고 글로벌 무대를 노리는 스타트업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로카 CEO는 우수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 국가로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를 꼽으며 “싱가포르 정부도 스타트업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재정 지원보다는 간편한 법인 설립, 낮은 세율 등 비즈니스 환경 자체에 집중했다. 지금의 성과가 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상황 또한 국내 생태계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로카 CEO는 인상적인 스타트업으로 한국인 창업가가 미국에서 시작해 유니콘으로 성장한 ‘센드버드’와 ‘눔’을 꼽으며 “정부 지원에 의존치 않고 한국 밖으로 나가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자 한국인들의 뛰어난 창업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진 강점으로는 높은 수준의 인재와 함께 반도체 등 글로벌 수준의 하드웨어 경쟁력을 꼽았다. 또한 한국이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글로벌 시장 성공 사례를 이미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생태계에 직접 관여하는 정부의 역할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이들 대기업을 포함해 민간 부문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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