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한 점, 나라는 존재…고뇌의 시간 [김용우의 미술思]
김용우의 미술思 28편
스페인 작가 호안 미로 블루 연작
나만의 표현 찾아서 새 세계 펼쳐
원과 선, 원뿔, 기하학적 기호 등
유기적 조합의 표현 방식 활용해
새로움 추구하는 구도의 길
![호안 미로, 블루II, 1961, 캔버스에 유화, 270×355㎝, 퐁피드 센터. [사진 | 퐁피두 센터]](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1/thescoop1/20250921122625562xcax.jpg)
호안 미로(1893~1983년)는 스페인 출신 화가다. 꿈과 무의식에 기반을 둔 초현실주의 화가다. 같은 시대 스페인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로 살바도르 달리(1904∼1989년)가 있다.
미로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보석상이며 시계 제조업자인 부친을 닮은 듯하다. 보석 가공업자 부친을 둔 구스타프 클림트처럼…. 그래서 미로는 회화뿐만 아니라 많은 조각 작품도 남겼다.
1919년 파리로 거처를 옮긴 미로는 그림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처음엔 당시 유행하던 피카소의 영향을 받아 큐비즘을 시도했다. 곧이어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와 칸딘스키·클레 등의 전위적인 화풍을 받아들여 자신의 표현으로 개척해 나갔다.
1940년대 이후 초현실주의 경향이 쇠퇴하기 시작한 후에도 미로의 작업은 계속 이어졌는데, 이는 기존 초현실주의와 결이 약간 다르다. 단순히 무의식에서 나오는 자동기술법自動記述法에 의존하지 않고 미로 자신의 조형을 찾아 새로운 세계를 펼쳤기 때문이다.
1920~1930년대에는 반구상적이며 원과 선, 그리고 원뿔, 기하학적 기호 등 유기적인 조합의 표현 작품을 선보였다. 칸딘스키와 클레 같은 추상화가들의 영향으로 보인다. 미로는 우리가 잘 아는 물방울 같은 작품들을 많이 제작했는데, 리듬감 있고 율동적인 음악적 요소를 많이 가미해 표현했다. 순수한 동심의 눈으로 표현하고 있다. 끝없이 변하고 새로움을 찾아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좇는 예술가의 창작 과정은 구도자의 길과도 같은 것이리라.
오늘은 미로의 추상적 작품인 '블루 시리즈'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 보자.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도 좋지만 구도자의 자세로 그림 앞에 서 있는 미로도 멋지지 아니한가. 일반인들에겐 삼천배三千拜를 요구하셨던 성철 스님도 어린아이 앞에선 그리 밝은 표정을 지으시지 않으셨던가. 동심과 구도자의 방향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가 보다.
먼저 미로의 블루 시리즈를 보기 전에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자. 1961년에 작품을 완성 후 어느 잡지에 실린 글이다. "그것들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명상하는 데 시간을 쏟았죠. 제가 원했던 간소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깊은 내면의 긴장이 필요했습니다. 준비 단계는 일종의 지적인 질서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우환 작가가 점 하나 찍는데 얼마나 많은 생각과 사색, 그리고 고뇌의 시간을 갖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점 하나는 단순한 물감덩이가 아니다. 작가의 철학과 예술혼이 담겨 있다. 미로가 찍은 점과 이우환이 찍은 점은 서로 통하고 있다. 점 하나 찍고 1억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호안 미로 블루I(위), 블루III(아래)[사진 | 퐁피두 센터]](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1/thescoop1/20250921122626896trpo.jpg)
화가의 점은 우리 같은 범부凡夫의 점이 아니라 한 예술가의 혼과 일생이 담겨 있다. 그렇게 혼신의 힘으로 찍어낸 점이기에 1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미로의 블루가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생각과 고뇌의 시간을 가졌으며, 명상을 거친 점 하나, 획 하나인 것이다.
블루 시리즈는 모두 3점인데 각각의 특색을 들여다보면 먼저 블루I은 점점이 박힌 별들을 통해 우주 속 한 점, 그 속에 있는 나의 존재, 그 존재의 무게를 생각하게 한다. 김환기의 우주가 인연의 우주라면 미로의 우주는 고독의 우주다.
블루II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미로의 작품 중 하나다. 붉은 선을 긋고 내리꽂히는 붉은색은 불기둥이고 힘이요 에너지다. 이는 다시 강력한 리더십이 되고, 길을 밝히는 방향등이 된다. 그 뒤를 따르는 다양한 무리의 길을 밝혀준다.
3번째 블루에는 한줄 실낱같은 인연의 줄로 얽힌 우리들이 세상사가 있다. 보일 듯 말 듯, 닿을 듯 말 듯, 이을 듯 말 듯, 우리의 연이 저 실처럼 이어져 있다. 그러니 소중하고 고맙게 감사하며 사랑하자. 기회가 돼 파리에 가면 꼭 퐁피두 센터에 가 블루를 만나고 싶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cla0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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