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 “피폐한 비주얼도 또 하나의 옷일 뿐”

하은정 대중문화 저널리스트·우먼센스 편집장 2025. 9. 21. 11: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토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로 복귀한 고현정
예쁘고 화려한 주연을 넘어 배우로서 진가 보여줘

(시사저널=하은정 대중문화 저널리스트·우먼센스 편집장)

고현정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상징적인 이름이다. 1990년대 《모래시계》로 국민적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민 여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이후 긴 공백 끝에 돌아온 2000년대에는 《여왕의 교실》 《대물》 등으로 강렬한 카리스마와 시대를 읽는 연기를 선보였다. 단순한 미모의 상징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의 얼굴이 된 것이다.

한때는 '주연'과 '로맨스'라는 키워드가 고현정을 규정했지만, 이제는 그 이미지를 벗고 장르물 속 낯선 얼굴로 관객 앞에 선다. 넷플릭스 《마스크걸》에서 중년의 김모미를 연기하며 놀라움을 안겼던 고현정은 SBS 금토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이하 《사마귀》)에서 연쇄살인범 '정이신'으로 또 한번 스스로를 흔들었다. '엄마이자 살인자'라는 모순된 정체성을 가진 인물을 통해 배우로서의 확장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사마귀》는 20여 년 전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이 잡힌 뒤, 동일 수법의 모방범죄가 발생하며 시작된다. 평생 엄마를 증오해온 아들 형사가 다시 나타난 범죄의 그림자를 쫓으며, 연쇄살인마였던 엄마 정이신과 불가피한 공조를 펼치는 이야기다.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인간적 질문을 던지며, 피해자를 더 이상 만들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분투를 담는다. 연출을 맡은 변영주 감독은 "고현정이 한다면 상상 못 한 얼굴이 나올 것"이라며 확신을 보였다.

이번 복귀는 2021년 JTBC 《너를 닮은 사람》 이후 4년 만의 드라마 출연이다. 장르물 주연은 《마스크걸》 이후 2년 만이다. 무엇보다 연기력에 대한 기대가 크다. 고현정은 언제나 대사와 눈빛으로 인물을 압도하는 배우였고, 이번 작품에서도 모순된 정체성을 지닌 정이신을 통해 다시 한번 깊은 울림을 예고했다.

극 중 아들로 출연하는 후배 배우 장동윤은 "올 타임 레전드다. 상상 이상이었다"고 했고, 감독은 "고현정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9월4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SBS에서 열린 새 금토드라마 《사마귀》 제작발표회에서 고현정을 만났다.

ⓒ연합뉴스

《사마귀》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대본을 읽자마자 끌렸다. 단순히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를 묻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정이신'은 살인자이자 엄마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딸이다. 이 복잡성을 연기해 보고 싶었다."

엄마이자 살인범이라는 설정, 쉽지 않은 역할이다.

"모순적이라 상상하기 어렵지만, 사람의 인생 안에는 여러 층위가 공존한다. 나는 '나는 정이신이다'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감정을 과도하게 싣지도, 억제하지도 않았다. 정이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만 고민했다. 선택지는 최대한 다양하게 두고 감독님이 판단하도록 맡겼다."

연출을 맡은 변영주 감독은 "대본을 읽자마자 정이신은 고현정이라고 생각했다. 고현정이 한다면 내가 상상 못 한 얼굴이 나올 거라 확신했다. 팬으로서 오래 기다린 순간"이었다며 "이번 작품은 범죄자를 미화하지 않는다.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스틸컷 ⓒSBS

외적인 변신이 화제다. 부담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또 하나의 옷을 입는다고 생각했다. 피폐한 비주얼도 정이신의 일부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분장팀이 워낙 섬세해 오히려 감사했다."

건강 문제 이후 복귀했는데, 현장은 어땠나.

"건강이 나빴던 건 사실이다. 배우들이 많이 배려해 줬고, 덕분에 금방 적응했다. 그래서 작품에 더 애정을 갖게 됐다. 참여한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 만든 작품이다."

고현정은 JTBC 《너를 닮은 사람》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긴 공백을 가졌다. 이후 차기작 소식이 뜸해 팬들 사이에서는 여러 추측이 이어졌지만, 구체적인 이유가 공개된 적은 없었다. 이번 《사마귀》 제작발표회에서 고현정은 동료 배우에 대한 고마움을 밝히며, 촬영 당시 컨디션이 완벽하진 않았음을 털어놓았다. 긴 공백을 마친 복귀작이자, 건강 회복 과정 속에서 완성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드라마는 고현정에게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장동윤을 처음 봤을 때 '이렇게 예쁜 배우가 있나' 싶었다. 촬영하면서는 배우 대 배우로서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다. 모자 관계를 굳이 의식하기보다는 서로의 에너지를 즐겼다."

시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다. 정이신이 얼마나 잔혹한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됐는지를 봐주면 좋겠다. 선과 악을 쉽게 단정 짓지 말고 인물들의 선택을 지켜보며 스스로 판단했으면 한다."

고현정은 한때 예쁘고 화려한 주연으로 불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로서의 궤적을 달리하고 있다. 《마스크걸》이 그 시작이었다면, 《사마귀》는 본격적인 전환점이다. 장르물 속 새로운 얼굴을 꺼내는 과정은 단순한 배역 선택을 넘어, 달라진 환경 속에서 배우가 스스로 길을 찾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