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권 환수와 남북관계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 [정욱식 칼럼]

한겨레 2025. 9. 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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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환수 조건과 남북관계 악화의 ‘악순환’ 직시해야
조건을 시기로 바꾸거나 평화협정의 유용성도 검토해야
한미 정상, 연합훈련 유예 선언으로 대화 물꼬 터야
정경두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2019년 10월 3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된 제50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이후 공동기자회견에 앞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지침’에 서명 이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그들(북한) 입장에서 ‘전시작전권도 없는 나라가 무슨 (중요성이 있나). 북미관계가 중요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북한은 체제 위협의 핵심이 남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보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를 남북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나온 발언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도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한국이 한반도 안보와 평화 문제의 주체가 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과 실질적인 협상을 벌이려면 전작권 환수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이재명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의 “페이스 메이커”(조력자)를 자처하면서도 ‘자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국정기획위원회에서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을 보강하여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국정 목표로 내건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한국이 전작권을 보유하지 않고 있는 현실과 조선이 한국을 중시하지 않는 이유가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의 문제이다. 또 하나는 ‘전작권 환수 조건을 충족하려는 것이 오히려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켜온 주된 원인이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이 대통령이 이 문제를 꺼낸 만큼 차분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같은 착오를 반복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대남 무시와 한국의 전작권 미보유와의 관계와 관련해선 조선측과 대화와 협상을 경험했던 전직 관료들의 입을 통해서 주로 나왔었다. 그런데 김정일 정권 때의 경험을 일반화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갖게 된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8월 5일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군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부족이나 7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이란 육군과 싸우고자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개념적으로나 가설적으로, 전쟁 준비연습의 주요 타깃은 우리의 군대”이며 “이는 우리의 오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약속을 뒤집고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기로 한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나온 입장이었다.

이는 후자의 문제와 연결된다. 김 위원장의 불만은 문재인 정부가 전작권 환수 조건을 충족하겠다는 이유로 역대급 군비증강과 한미연합훈련을 지속한 것에서 비롯됐다. 당시 여러 차례 이러한 입장을 피력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2018년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군축” 추진에 합의했던 한국과 조선은 최악의 군비경쟁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조선은 한국과의 관계를 ‘손절’하고 말았다.

이는 남북관계가 폭망한 원인을 재조명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하노이 노딜’에서 그 원인을 찾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문재인 정부의 전작권 환수 중시와 그 조건을 충족하겠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이에 대한 조선의 반발에 있었다는 뜻이다. 결과는 더 참담하다. 남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전작권 환수도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현명한데, 오히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우려가 크다.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인데, 이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 즉 한미연합훈련과 대규모 군비증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국방비 증액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커지고 이재명 정부도 이를 일부 수용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문재인 정부를 훨씬 상회하는 군비증강에 이뤄질 공산도 크다. 이렇게 되면 군비경쟁과 대화 단절을 특징으로 하는 남북관계의 퇴행이 거듭되고 말 것이다.

조선의 움직임도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김정은 위원장은 9월 중순에 무기연구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앞으로 당 제9차 대회는 국방건설분야에서 핵무력과 상용무력 병진정책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은 2013년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선포한 이래 재래식 군사력의 비중을 줄여 인민생활과 경제발전에 힘쓰고 국방건설은 핵과 미사일에 치중해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상용무력에도 큰 비중을 두겠다는 뜻을 밝힌다. 조선이 ‘핵·상용무력 병진노선’에 박차를 가하면 ‘조건’이 달라지면서 전작권 환수는 또다시 안개 속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전작권 환수와 남북관계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떼어내거나 조건을 달리하는 방식을 떠올려볼 수 있다. 전자는 조건이 아니라 시기를 정하는 방식을 뜻한다. 노무현-부시 시기엔 2012년 4월 17일을, 이명박-오바미 시기엔 2015년 12월 1일을 환수 시기로 못 박았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미국에 요청해 시기를 조건으로 둔갑시켰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사례를 참고해 시기를 협의하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 안보는 스스로 책임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두루 고려해, 11월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 전작권 전환 시기에 합의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은 한미연합훈련과 군비증강에 유연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국내 정치적으로 거센 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품고 있다.

또 하나의 방식은 전작권은 잊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 특히 평화협정 체결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이게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이고 현명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작전권 이양은 한국전쟁과 정전체제가 낳은 산물이다. 이에 따라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평화구축을 명문화하는 협정 체결은 전작권 환수의 최적의 조건이자 환경에 해당한다. 역사적인 근거도 있다. 한국전쟁 발발 20일 후인 1950년 7월14일에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에게 “현재의 적대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부여한다”는 서신을 보냈는데, 평화협정 체결은 “적대 상태”의 종식을 공식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이재명 정부는 ‘임기 내 평화협정 체결’을 국정목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반론이 나오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평화협정의 주체는 남북미중이다. 조선과 중국은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줄곧 말해왔고, 한국은 정권에 따라 달랐다. 이재명 정부는 평화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장 큰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은 어떨까? 전통적으로 미국 행정부는 이에 관심이 없었거나 비핵화 완료 즈음에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평화협정에 비교적 적극적이다. 미국인도 과반수가 평화협정에 동의한다. 한미 정상간의 소통을 통해 평화협정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는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차원에서 보더라도 평화협정 추진은 조선의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주장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다.

평화협정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현실적이고 유연한 입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 조야에선 비핵화는 장기적 과제로 미뤄놓고 동결과 감축부터 추진하자는 ‘군비통제론’이 나날이 힘을 얻고 있다. 이재명 정부 역시 ‘동결→감축→폐기’로 이어지는 단계적 비핵화를 공식화한 상황이다. 여전히 조선와의 간극은 크지만, 협상의 여지가 과거보단 커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북핵 동결이나 감축 단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협정에 ‘한반도를 포함해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세계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담은 방안을 추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미공조를 통해 그 출발점을 잡는 게 매우 중요하다.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유엔 총회 기간이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즈음에 한미 정상이 연합훈련 유예를 선언하면서 조선에 대화를 제안하는 것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sik@gm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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