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 짓고 돌을 품은 제주, 그 ‘전설의 통로’로 들어가 볼까

김봉아 2025. 9. 21. 08: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건축] (5) 제주 ‘제주돌문화공원’
섬의 과거와 미래 보여주는 공간
설문대할망 테마로 20년 걸려 완성
기획자 백운철, 수집품 2만점 기증
신화 이미지를 건축으로 형상화
세계적 건축가 “자연과 조화” 극찬
‘하늘연못’ ‘벽천계류’ 시원한 눈맛
자연이 빚은 작품 400점 ‘돌갤러리’
야외전시장엔 ‘시대별 돌문화’ 체험
지역 예술인들 전시·공연장도 갖춰
건물이 지상으로 돌출되지 않아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제주돌문화공원의 제주돌박물관. 입구의 계단식 벽체를 타고 ‘벽천계류’라는 물이 흐른다. 낮은 건물 뒤로 솟은 오름과 물에 비친 하늘이 아름답다. 제주=현진 프리랜서 기자

제주에 갈 때면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설렌다. 이번엔 어떤 제주를 만날까. 바다·오름·유채·수국 등 제주엔 수많은 보물들이 곳곳에 박혀 있고, 갈 때마다 새로운 보물을 하나씩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다.

이번에 찾은 보물은 ‘돌’이다. 제주에선 너무 흔해 눈여겨보지 않았던 돌. 그 돌로 짓고 돌을 품은 건축, 돌로 된 섬의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는 공간, 바로 ‘제주돌문화공원’이다.

돌문화공원은 한라산 동쪽 중산간지역인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이곳을 찾는다면 세가지에 깜짝 놀랄지 모른다. 하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대한 규모다. 공원의 면적은 93만여㎡(28만여평)로 전체를 둘러보려면 4시간 이상 걸린다.

오백장군 군상.
설문대할망의 아들인 오백장군을 테마로 한 오백장군갤러리. 진입로에 우뚝 도열한 오백장군 군상이 시선을 압도한다.

또 하나는 광활한 푸른 대지에 끝없이 서 있는 돌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사람 키보다 큰 바위들이 늘어선 ‘전설의 통로’가 나온다. 신성한 다른 세계로 이동하듯 통로를 지나면 크고 작은 석상과 돌탑들이 우뚝우뚝 이어지고,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이라는 낯선 이름이 계속 따라온다.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칠레의 이스터섬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쯤에서 궁금증이 커질 터. ‘대체 이곳의 정체는 뭘까?’

기묘한 형태의 용암구와 화산탄 등이 전시된 제주돌박물관 돌갤러리.

돌문화공원은 제주를 창조한 여신인 설문대할망의 신화를 테마로 제주의 형성 과정과 돌문화를 보여주는 복합문화공간이다. 2006년 개원한 공원은 올 6월 설문대할망전시관의 개관으로 완성됐는데,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공원은 제주도가 관리하고 있지만, 20년이 넘는 대역사의 중심에는 한 사람이 있다. 40여년간 제주의 돌과 나무, 민속품 등을 수집한 백운철 전 탐라목석원 원장이다. 그는 1999년 북제주군과 협약을 체결하고 2만여점의 수집품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또 민관 합동추진기획단장으로서 2020년까지 공원의 기획·디자인·설치를 맡았다. 제주의 돌문화를 설문대할망 신화와 접목해 스토리텔링을 하고 신화의 이미지를 건축으로 형상화하는 데 평생을 바친 것이다.

이렇게 조성된 돌문화공원은 2023∼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관광 100선’에 올랐으며, 세계적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공원을 방문한 멕시코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박물관 안에 돌을 채워 넣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인데도, 중산간지역이라는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 자연환경과 조화를 잘 이뤄냈다”는 찬사를 남겼다.

돌문화공원은 ‘자연과 공존’이라는 원칙에 따라 조성됐다. 자연을 압도하는 거대한 건축물 대신, 자연 속에 건축을 녹여내고 그 안에 제주의 문화적 가치를 담은 것이다. 공원이 들어선 곳은 곶자왈(화산활동으로 생긴 바위에 다양한 식생이 형성된 곳) 지대라 건물의 지상 돌출을 최소화하고 지하 공간을 활용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이러한 건축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제주돌박물관이다.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던 땅에 들어선 박물관은 지상 1층, 지하 2층 구조이며, 옥상에는 지름 40m의 원형 수상무대 ‘하늘연못’이 있다. 하늘연못은 설문대할망 신화에 나오는 ‘물장오리(분화구에 물이 있는 한라산 기슭의 오름)’와 ‘죽솥’을 상징한다(박스기사 참고). 주변의 오름을 배경으로 물과 하늘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하늘연못은 최근 사진 명소로 인기다. 또 건물 입구의 계단식 벽체를 타고 흐르는 물 ‘벽천계류’도 시원한 눈맛을 선사한다.

제주 입체 모형. 열두달을 상징하는 12개의 기둥 옆에 서면 하늘에서 섬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땅속으로 들어가듯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5700분의 1로 축소된 제주 입체 모형이 어둠 속에 떠 있다. 섬의 생성 과정을 보여주는 제주형성전시관을 지나면 기묘한 형태의 용암구와 화산탄, 얼굴 모양의 두상석 등 자연이 빚은 40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된 돌갤러리가 나온다.

현무암을 활용한 돌천으로 마감된 검은 벽과 화산회토의 질감이 드러나는 바닥.

박물관은 벽과 바닥도 제주의 돌을 품고 있다. 외벽은 현무암 골재를 활용한 노출콘크리트로 돼 있는데, 제주에서 나는 자재로 콘크리트의 고유한 색감과 질감을 구현해낸 드문 시도로 평가된다. 내부엔 검은색 ‘돌천’으로 마감된 벽이 있다. 돌천은 현무암을 고열로 녹여 만든 돌실로 직조한 천이다. 또 제주의 화산회토를 이용한 바닥에서도 향토색이 느껴진다.

이제 야외 공간을 둘러볼 차례다. 옛집이 재현된 전통초가마을에서는 제주의 전통건축을 살펴볼 수 있고, 돌문화야외전시장에서는 시대별 돌문화를 만날 수 있다. 돌담과 구들돌·정주석·맷돌·비석 등 갖가지 돌을 보고 있으면 돌 위에서 태어나 돌로 돌아간다는 제주 사람들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설문대할망의 아들인 오백장군을 테마로 한 오백장군갤러리다. 오백장군 군상이 호위하는 2층 건물에는 지역 예술인들의 전시 공간과 공연장이 있다.

공원을 모두 둘러보고 나니 마치 유적 발굴 작업을 끝낸 듯한 기분이 든다. 걷는 곳마다 새로운 돌이 나오고, 돌과 함께 오래된 이야기가 딸려 나오는 느낌이랄까. 막 캐낸 돌에는 가장 제주다운 곳을 만들고자 했던 정성스러운 손길이 묻어 있다. 낮게 누워 자연을 보듬는 건축이 제주의 다른 어떤 근사한 건축보다도 반짝이는 이유다.

다시 현실 세계로 나오는 길, 이번 여행에서 찾은 보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돌, 아니 돌로 된 섬 전체였다.

제주=김봉아 여행작가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농민신문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