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이 아닌 새가 될뻔했던 농구팀...50년 숙원 풀어준 고대 그리스 괴인의 힘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5. 9. 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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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121][오리저널-35]밀워키 벅스
아메리칸 원주민이 지은 이름, 밀워키
밀워키(Milwaukee)라는 지명은 긴 스펠링만큼이나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아메리칸 원주민인 포타와토미·오지브웨·메노미니 부족 언어로는‘좋은 땅(mino-akking)’이란 의미로 ‘물가의 모임터’, 즉 물가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불린다. 또 메스콰키 계열의 언어에선 ‘마나와우키(모임터)’라는 뜻도 품고 있다. 19세기 정착기 문서들에선 철자도 제각각이었다. 1844년에야 지금의 표기로 굳었다.

중요한 건 의미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풍경이다. 거대한 미시간호로 흘러드는 세 개의 강인 밀워키강, 메노모니강, 키닉키닉강이 만나며 만든 물길의 교차점, 그 지형이 도시의 기질을 좌우했다. 물길은 사람을 데려왔고, 사람은 산업을 세웠다. 독일·폴란드 이민의 물결이 두터워지던 19세기 후반부터 브루어리(맥주), 제재소, 선박·기계 공장이 강줄기를 따라 박혀 들어갔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브루 시티(Brew City)’. 밀워키가 ‘맥주의 도시’라는 명성이 허언이 아닌 이유다. 실제 밀워키의 프로야구팀 이름이 밀워키 브루어스인 이유 역시 여기서 기원한다.

맥주사(史)를 조금만 더 들춰보면 도시의 골격이 또렷해진다. 파브스트(Pabst), 슐리츠(Schlitz), 밀러(Miller), 블라츠(Blatz) 같은 이름들이 1850~60년대에 뿌리내렸고, 20세기 초엔 슐리츠가 연간 100만 배럴의 맥주를 생산하며 세계 최대 양조장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브루어리와 ‘타이드 하우스(특정 양조장과 묶인 선술집)’는 노동자의 휴식과 소비문화를 만들었고, “밀워키가 맥주로 유명해졌다”는 슬로건이 그냥 광고문구를 넘어 도시 정체성으로 굳었다.
소도시의 굴욕, 도시를 떠난 팀
그리고 이러한 밀워키에 처음 농구가 뿌리내린건 1951년, 트라이시티즈 블랙호크스가 연고지를 옮겨오며 시작됐다. 트라이시티즈 블랙호크스는 리노이·아이오와·네브래스카 주 등 3개주를 대표하는 몰린, 락아일랜드, 데이븐포트 등 3개 도시를 연고지 연합으로 둔 팀이었다.하지만 소도시에서 시작했던 그 팀은 대도시에 대한 열망이 컸고 이는 밀워키도 충족시키지 모했다. 게다가 밀워키 시절 승률 5할을 한번도 넘기지 못하며 구단주 벤 케로너는 4년만에 1955년 그곳을 떠나 세인트루이스로 연고지를 옮긴다.

이어 1953년 보스턴에서 이주해온 프로야구팀 브레이브스 마저 1966년 애틀랜타행을 확정한다. 이 역시 상대적으로 스몰마켓으로 분류되는 밀워키의 시장 사이즈가 문제였다. 연이어 2개의 프로스포츠팀이 밀워키를 떠나자 주민들의 공허함은 극에 달했다. 이들은 ‘다시 우리 손에 빅리그를’이란 구호를 외쳤다.
찾아온 기회, NBA팀을 품다
기회는 금세 찾아왔다. 1968년 1월 22일, 리그 확장을 추진하던 NBA가 밀워키에 확장 프랜차이즈를 부여한다. 구단 법인은 ‘밀워키 프로페셔널 스포츠 앤드 서비시스(Milwaukee Pro)’로 퍼벌런과 피시먼이라는 두 사업가가 이를 이끌었다. 퍼벌런은 고등학교 중퇴 뒤 원격·사립 교육 네트워크 ‘커리어 아카데미(Career Academy)’로 큰 부를 일군 일종의 ‘교육 기업가’였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1969년 그를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교사’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퍼벌런이 밀워키에 NBA 팀을 만들려는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파트너 피시먼은 밀워키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훗날 시카고 불스 인수전을 둘러싸고 반독점 소송을 벌일 만큼, 스포츠 비즈니스의 거친 물살을 맨몸으로 헤쳐 나가는 타입이었다. 두 사람의 컨소시엄이 NBA의 문을 두드렸고, 도시는 다시 농구를 품었다.
구단은 존 에릭슨이 이끌었다. 위스콘신대 감독이던 그는 1968년 4월 3일 창단 단장(총괄GM)으로 임명된다. 벤치에는 래리 코스텔로가 섰다. 두꺼운 플레이북으로 유명한 ‘세트 슈터’ 출신의 꼼꼼한 지도자로 이름났다.
새가 아닌 사슴이 된 팀의 역사
밀워키에 새로운 농구팀이 생긴단 이야기에 주민들은 열광했다. 이를 이어가기 위해 팀명 역시 공모했다. 팀명은 시민 손에서 나왔다. 전 위스콘신주의 주민들을 상대로 한 공모에 4만 통이 넘는 응모가 몰렸다. 최다 득표는 ‘로빈스(Robins)’의 차지였다. 위스콘신의 주조(州鳥)인 아메리카 로빈에서 딴 이름이었다. 그리고 2위가 바로 ‘벅스(Bucks)’였다. ‘흰꼬리사슴(White-tailed deer)’은 위스콘신의 공식 ‘주 야생동물’이었다. 사슴은 지역성과도 맞물린다. 1957년 위스콘신 주의회는 오소리를 ‘주 동물(state animal)’로, 흰꼬리사슴을 ‘주 야생동물(state wildlife animal)’로 병기 지정했다. 사냥·자연·야외 여가의 이미지가 생활문화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 ‘현장성’이 팀명에 자연스레 스며든 셈이다. 그러니 벅스는 단순한 동물 이름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여가생활의 상징이었다. 또한 사슴은 활기차고 점프력이 좋고 민첩해 농구의 이미지에 딱 맞아 떨어졌다. 심사위원은 고심끝에 1위를 기록한 로빈스 대신 사슴을 의미하는 벅스를 택했다. 공모에 지원했던 R. D. 트레빌콕스는 새 차를 상품으로 받았다. 만약 그날 심사위원들이 순위대로 팀명을 지었다면 밀워키 벅스가 아닌 밀워키 로빈스가 됐을 것이다.

너무 빨리 찾아온 운, 3년만에 우승하다
이듬해 봄, 리그는 1969 드래프트 1순위를 두고 같은 해 태어난 신생팀 피닉스 선즈와 ‘동전 던지기’를 벌인다. 선즈는 팬 투표를 근거로 ‘앞면’을 콜했고, 1964년 케네디 50센트 짜리 동전은 ‘뒷면’으로 떨어졌다. 밀워키였다. 전화로 결과를 전해 듣던 퍼벌런 구단주가 환호하며 GM 에릭슨을 끌어안는 바람에 들고 있던 담배 불을 그의 귓불에 ‘박아 넣었다’는 유명한 일화는 그날의 열기를 전한다.

그리고 1순위, 루 앨신더는 밀워키로 향했다. 창단 2년 차였던 1969-70 시즌. 앨신더의 존재만으로도 팀은 56승을 바라보는 가속을 밟았다. 하지만 구단은 ‘우승의 문’을 위한 마지막 퍼즐을 기다렸다. 1970년 4월 21일, 벅스는 신시내티 로열스에서 오스카 로버트슨을 데려온다. 대가로 1969-70 시즌 평균 21.8점을 올린 플린 로빈슨과 포워드 찰리 포크를 내줬다. 그리고 이듬해 1970-71 시즌에서, 벅스는 정규시즌 66승 16패라는 우수한 성적과 NBA 파이널 4대0 스윕이란 결과로 창단 3년만에 팀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역사를 썼다. 코트위에 선 앨신더·로버트슨·댄드리지·맥글록클린, 코트 밖엔 코스텔로의 디테일과 프런트의 빠른 결단이 벅스를 ‘가장 빠르게 우승한 확장팀’이란 기록으로 이어졌다.
그리스 괴인, 50년만의 우승을 찾아오다
그러나 너무 빨리 축배를 든 탓일가. 밀워키와 우승의 인연은 무려 50년간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2021년 그리스의 괴물이란 별명이 붙은 야니스 아데토쿤보는 50년만에 밀워키 벅스의 우승을 이끈다. 아데토쿤보는 최근 독일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유로바스켓 대회에서 그리스를 16년만에 3위로 이끄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밀워키는 이름부터 ‘만남의 장소’다. 큰물과 강줄기, 공장과 이민, 맥주와 볼링, 그리고 프로스포츠가 만나는 도시. 벅스의 탄생사는 그래서 도시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팀명 ‘벅스’는 지역의 야생성과 농구의 본능을 한데 묶은 상징이고, 초대 구단주 퍼벌런·피시먼, 단장 에릭슨, 감독 코스텔로, 그리고 코트 위의 앨신더·로버트슨·댄드리지·맥글록클린은 이 상징을 현실로 바꿔 놓은 사람들이다. 창단 3년 차의 정복은 우연이 아니라, ‘좋은 땅’에 제대로 씨를 뿌리고 물길을 텄을 때 가능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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