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뛰어보니 알겠네”…2030 여성 사로잡은 ‘러닝 붐’

이서현 기자 2025. 9. 20. 09: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건강관리에 적극적인 2030, 러닝 기록 인증하며 소통 '활발'
수원·성남 등 도내 러닝크루 확산…‘초보러너’ 기자도 크루와 함께 5km 완주

“발바닥이 너무 뜨거운데요”
“뛰는 높이를 낮추고, 보폭을 줄여보세요”

혼자라면 진작 멈췄을 순간, 옆에서 페이스를 맞춰주는 크루의 한마디에 무거워진 다리를 재촉했다. 3개월 차 ‘러닝 초보’ 기자가 취재를 위해 요즘 핫 하다는 ‘러닝 크루’ 모임에 직접 참여해봤다.

지난 14일 오후 8시 30분, 성남시 판교역 1번 출구 앞. 늦은 퇴근길 직장인 사이로 러닝복 차림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판교를 베이스로 둔 러닝 크루 ‘하이런’ 참가자들은 짧은 자기소개 후 간단한 운동을 마치고 페이스에 맞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각각 ‘페이스 러너’가 속도를 이끌고, 뒤처진 사람들을 챙기는 ‘스위퍼’가 대열을 받쳤다.

경기도 성남시 굿모닝 파크를 뛰고 있는 기자와 러닝 크루의 모습. ‘하이런(HIRC)’ 제공


바야흐로 ‘러닝 붐’이다.

이른 새벽 그리고 밤마다 도심과 공원 곳곳을 달리는 젊은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30대 10명 중 3명은 달리기를 한다고 응답했다.

과거 ‘아저씨 운동’으로 여겨지던 달리기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러닝의 인기 비결은 ‘적은 비용’과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러닝화와 간편한 운동복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

미디어 영향도 크다. 웹툰 작가 기안84(본명 김희민)는 예능 방송프로그램에서 진정성 있는 마라톤 도전을 보여주며 러닝의 새로운 인식을 심어줬고, 가수 션은 꾸준히 기부 마라톤에 참여하며 선(善)한 에너지를 전파했다.

■  러닝 기록 시각화…SNS 사진·영상 올리며 ’ 이끌어
최근엔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의 발달로 러닝 기록을 시각화한다. 

운동 경로, 평균 페이스, 소모 칼로리, 케이던스(분당 착지 횟수), 스트라이드(한 걸음의 길이), 심박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흐름 속에 특히 두드러지는 건 2030 여성들의 참여다. 자신의 건강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소통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는 세대들이 ‘러닝 붐’을 이끌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참여했던 날 러닝크루 참가자 17명 중 12명이 여성이었다.

신한대 스포츠의학과 장덕진 교수는 “러닝은 시간, 장소, 강도에 제약이 없어 본인이 주도적으로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며 “러닝을 본인의 성장을 직관적으로 확인 할 수 있어 성취감을 강화 시킨다”고 분석했다.

자신의 기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하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모여 뛰는 모임도 증가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러닝기록을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하며 소통한다. 왼쪽@shyunss 오른쪽 @jinafit 제공


■ 혼자 보단 함께 운동 지속성 및 동기부여 심어줘 
수원, 성남, 고양 등 경기도 내 주요 도시마다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모여 저녁 시간대 함께 달리며 친목을 다진다.

시 차원에서 러닝 크루 운영을 하는 곳도 눈에 띈다. 구리시는 청년들의 건강 증진, 사회적 소통 강화를 위한 ‘왕숙천 러닝크루’ 운영을 시행하고 있다. 4월 상반기 운영에 이어 두번째다.

구리시 보건소 건강증진과 정헌선 주무관은 “지난 4월 운영했을 당시 이용자 90% 이상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면서 “이번 하반기 역시 모집 이틀만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단체 달리기 운동의 장점을 ▲운동 지속성 및 완주율 향상 ▲한계 극복 및 동기 부여 ▲사회적 지지와 소속감으로 꼽았다.

정 교수는 “심리학 연구에서도 혼자 사이클을 탄 집단보다, 그룹으로 사이클을 탄 경우가 훨씬 더 멀리 가는 결과를 보였다”면서 “혼자 운동할 때 마주치는 한계를 뛰어넘는 데 필요한 동기가 부족할 수 있지만, 그룹 운동은 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함께 운동하는 것 만으로도 서로에게 지지를 보내고, 소속감을 느끼며, 활동에 대한 인정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하이런’을 1년째 운영하고 있는 박지호씨(31)는 “혼자 러닝을 꾸준히 이어가기엔 쉽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크루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러닝은 혼자 하는 운동 같지만 사실 매우 소셜한 운동이다. 대회 준비 과정에서 인터벌이나 장거리 훈련은 혼자 하기 어렵지만, 크루에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혼자선 3km를 겨우 뛰던 기자도, 힘이 떨어질 때 쯤 독려해주던 크루들, 뒤쳐질 때 함께 페이스를 이끌어 준 스위퍼의 도움을 받아 5km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낯선 이들과 나란히 뛰는 게 어색할 줄 알았지만, 땀과 호흡이 섞이는 순간 달리기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운동이 됐다. 

‘러닝 붐’이 언제 또 사그라 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달린다’는 행위가 이제는 자신을 돌보는 건강 관리의 수단을 넘어 일상 속에서 관계와 연대를 만드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매김한 것이다.

이서현 기자 sunshine@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