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노출 심한 20대 여자와 바람난 40대 남편”…한 나라를 구해냈다고? [히코노미]
어떤 사내도 “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외치지 못했다. 전쟁에서 계속된 패배 탓이었다. 다친 건 육체만이 아니었다. 정신도 사실상 불구상태였다. 다시 해보자는 의지도, 이겨내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어떤 남자들은 술에 취해 세상으로부터 도망쳤고, 어떤 이들은 새로운 지배자에 아부하면서 잇속을 챙겼다.
묵직한 패배감이 모두를 짓눌렀을 때, 의연히 들고 일어난 건 ‘여자들’이었다. 한 명은 농부의 딸이었고, 한 명은 지도자의 ‘불륜녀’로 손가락질받는 여인이었다. 농부의 딸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 분열된 권력층을 불륜녀가 통합했다. ‘100년 전쟁’에서 잉글랜드에 승리한 프랑스의 얘기다. 농부의 딸은 유명한 잔 다르크. 불륜녀의 이름은 아녜스 소렐이었다. 두 여인이 아니었다면, 프랑스는 지금도 영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아녜스 소렐의 통합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진 건 아니었다. 그에겐 든든한 경제적 후원자가 있어서였다. 자크 쾨르라는 이름의 ‘대(大)상인’이었다. 불륜녀에 줄을 댄 걸출한 사업가. 사가(史家)는 이런 결합을 두고 ‘멸국의 첫발’로 묘사하길 즐기지만, 역사는 사고의 편향을 비웃으며 정반대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아녜스 소렐과 자크 쾨르가 프랑스를 하나로 통합해서였다. 역사의 줄기를 바꾼 경제 이야기기도 했다.


그야말로 압도적 승리였다. 프랑스의 왕 샤를 6세는 평화조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딸 카트린을 헨리 5세에게 시집보내고, 두 사람의 아이를 프랑스의 왕위 계승자로 인정한다는 ‘트루아 조약’이었다. 잉글랜드 핏줄이 흐르는 아이가 프랑스의 왕이 된다는 굴욕적 서명이었다.


절색이(絶色·뛰어나게 아름다움)었지만, 경국(傾國·나라를 위태롭게 할 미인)은 아니었다. 그녀는 프랑스의 위기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애국자였다. 궁에서 권력 기반이 다져지자 그녀는 자신이 가장 믿는 인물을 궁으로 불러들였다. 프랑스의 대상인 자크 쾨르였다.


자크 쾨르가 궁의 호출을 받았다. 왕 샤를 7세의 새로운 애인 아녜스 소렐로부터였다. 쾨르는 쾌재를 불렀다. 그는 실세가 누군지 간파하는 데에 탁월한 직관을 갖고 있어서, 돈을 어디에 갖다 받쳐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소렐을 위한 화사한 드레스와 두둑한 금전, 빛나는 보석을 들고 궁을 찾았다. 왕의 여자에 줄을 대면 사업은 더할 나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계를 유랑하며, 돈의 흐름과 냄새를 맡으며 기른 기민한 상인의 감각이었다.
![자크 쾨르의 선박을 묘사한 스테인드 글라스. [사진출처=Remi Mathis]](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0/mk/20250920081810624qxmn.jpg)
그가 궁에서 마주한 건 사치의 바다에 빠져 허영의 자맥질을 하는 평범한 귀부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지한 눈으로 자크 쾨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개인의 영달을 내려놓고, 조국을 향한 헌신을 주문했다. 쾨르는 설득당했다. 호수처럼 푸른 눈으로 간절한 부탁을 해오는 가녀린 여인의 마음을 거절할 도리가 없어서였다. 세속에 찌든 마음을 한 켠에 치워놓고, 그곳에 애국심을 심었다. 아녜스 소렐과 자크 쾨르의 만남이었다.

왕은 샤를 7세였지만, 그를 주무르는 건 이제 아녜스 소렐이었다. 그 뒤에는 자크 쾨르가 있었다. 전쟁은 값비싼 정치행위이므로, 누군가 칼을 들 때 누군가는 주판을 튕겨야 했다. 재정 전문가는 전쟁 지휘관만큼이나 중요했다. 자크 쾨르가 ‘돈의 지휘관’을 맡았다. 아녜스 소렐의 고언이 통했던 덕분인지. 샤를 7세는 자크 쾨르를 조폐 책임자로 임명했다.

오랜 전쟁과, 왕실의 잦은 사치로 프랑스의 신용은 엉망이었다. 비루한 현실이 ‘화폐’로 대번에 드러났다. 화폐에 금·은 함유량이 지속적으로 줄어서였다. ‘악화’(Bad Money)가 ‘양화’(Good Money)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화폐가 녹슨 광물과 동의어가 됐을 때 인플레이션은 자명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화폐를 눈썰미있는 상인들은 모두 손사래쳤다.
자크 쾨르는 신용이 개인의 것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저잣거리에서, 난전에서 배운 것이었다. 그는 개혁을 여러 차례 단행해 악화를 거둬들이고, 양화를 풀었다. 오염된 돈 줄기를 정화하는 작업이었다. 프랑스 은화에 은 함량을 92%로 고정했다. 은이 부족하면 자신의 은광산에서 끌어다 썼다. 화폐 질서가 바로 서자, 시장의 혈색이 좋아졌다. 프랑스의 곳간이 차고 있다는 의미였다. 세금제도까지 밀어붙였다. 기득권의 반발이 일었지만, 샤를이 권력으로 찍어 눌렀다.

프랑스는 달라져 있었다. 병사의 결기가 달랐고, 말(馬)에는 윤기가 돌았다. 전장에 나가고 싶어 안달했다.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로 예열하고, 1449년에는 노르망디 회복전에서 프랑스 군대가 압승을 거뒀다. 잉글랜드 왕실이 오래도록 터 잡은 곳이었다. 프랑스 상비군의 화력과 의지를 잉글랜드 군은 버거워했다. 시소는 다시 프랑스로 기울었다. 전장에 선 샤를 7세는 어엿했다. 백성 앞에서도, 소렐 앞에서도 샤를 7세의 어깨는 으쓱했다. 오랜 세월 프랑스 본토를 좀 먹던 잉글랜드를 섬나라로 내쫓기 직전이었다.

![“프랑스를 구한 여인, 여기 잠들다.” [사진출처=Jardillierjulien]](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0/mk/20250920081817110agff.jpg)
쾨르가 이끈 개혁이 성가신 기득권 세력들이 한 데 뭉쳤다. 소렐이 묻힐 무덤의 껴묻거리로 쾨르만한 인물이 없어서였다. 반대파들은 쾨르가 소렐의 독살 범인이라고 몰아붙였다.
왕권 모독, 횡령 등 잡다한 죄목을 갖다 붙였다. 하나만 걸리면 된다는 식이었다. 쾨르는 1453년 독설은 무죄를 받았으나, 횡령 혐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의 방대한 재산이 모두 국고로 귀속됐다. 쾨르의 돈으로 전쟁을 치렀던 샤를 7세는 법원의 판결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토끼사냥이 끝나자 사냥개는 잡아 먹혔다. 쾨르는 프랑스에서 영구 추방당했다.

추방당한 지 3년 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자크 쾨르 역시 아녜스 소렐의 길을 따랐다. 조국을 구해낸 경제 영웅의 초라한 죽음이었다. 사가(史家)들의 오랜 관행대로, 100년 전쟁이라는 역사서에는 정치인의 이름이 가장 처음에 올랐고, 다음에는 전쟁 영웅의 공적이 적혔다. 정치의 비대한 자아 탓에 경제인의 이름이 적힐 공간은 비좁았다. 물밑에서 조국을 구해냈지만, 수면 아래에 서 올라 오지 못한 상인. 자크 쾨르의 이야기였다.

ㅇ백년전쟁은 잉글랜드의 승리가 확정적이었으나 잔 다르크의 등장과 왕의 불륜녀 아녜스 소렐의 통합 정치로 반전을 이뤘다.
ㅇ아녜스 소렐을 지원하고, 프랑스의 재정 상황을 개선한 것은 대상인 자크 쾨르였다.
ㅇ자크 쾨르의 재정 개혁으로 프랑스는 다시 강력한 상비군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ㅇ전쟁 중 소렐이 급사하자, 자크 쾨르 역시 반대파의 정치 공세로 인해 숙청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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