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서울 아시안 게임의 화려한 개막 [김정한의 역사&오늘]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86년 9월 20일, 제10회 아시안 게임의 화려한 서막이 서울 잠실벌의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올랐다.
우리나라는 당초 1970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유치했으나, 재정난으로 인해 개최를 포기했다. 서울의 반납 결정으로 1966년 아시안 게임을 개최했던 태국 방콕이 다시 아시안 게임을 치렀다.
이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는 1988년 하계 올림픽 유치 시도와 동시에 아쉬움으로 남았던 1986년 아시안 게임 유치도 재추진했다. 1988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후 당시 아시안 게임 유치 경쟁에 나섰던 북한 평양과 이라크 바그다드가 신청을 철회하면서 서울은 단독 후보가 됐다. 결국 서울은 16년 만에 다시 아시안 게임 유치에 성공했다.
서울 아시안 게임은 '88 서울 올림픽'의 예행연습이었다. 이 대회는 27개국 4839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개막식은 에밀레종 타종으로 시작됐고, 한국의 전통미와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공연은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뒤이어 각국 선수단이 가나다순으로 입장하며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성대한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성화 점화였다. 8일간 1300여 명의 봉송 주자를 거친 성화가 올림픽 주경기장에 도착했다. 성화가 타오르자 경기장은 환희와 감동의 물결로 일렁였다. 성화가 타오르는 순간, 오색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아시아의 축제를 축하했다.
16일간 25개 종목을 겨룬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전 세계에 알리고, 2년 후 열리게 될 88 서울 올림픽의 대회 운영을 위한 노하우와 자신감을 확보했다는 점이었다.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였고 서울 올림픽 개최의 값진 밑거름이 됐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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