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 3차 상법개정안…"K증시 부양 효과" "경영권 방패 뺏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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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독한’ 3차 상법개정안
세지고 독해졌다. 정부와 여당이 또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1차 개정(7월), 2조원 이상 상장 기업에 대한 집중투표제 의무를 담은 2차 개정(8월)에 이어 벌써 3번째다. 3차 개정의 핵심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다. 2차 개정안이 1차에 비해 ‘더 센’ 상법이었다면, 3차 개정안은 ‘더 독한’ 상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를 벼르고 있는 3차 상법 개정안은 취득한 자사주를 6개월이나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사주는 기업이 발행한 주식을 다시 사들여 보유한 주식으로, 의결권과 배당권은 없다. 2011년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취득·처분이 전면 자유화되면서 많은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해 보유하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상장 기업 1666곳(전체의 73.6%)이 자사주를 갖고 있다.

한국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장치 ‘전무’
자본시장에서는 3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상법 개정안과 같은 제도적 변화로 국내 증시의 자기자본 이익률 개선 등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면 발행(유통) 주식 수가 감소해 주당순이익(EPS·당기순이익을 주식 수로 나눈 값)이 증가하는 등 직접적인 주주환원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동안 국내 기업은 소각에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기준 자사주를 가진 국내 기업 1666곳 중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은 142곳(8.5%)에 그친다. 정부와 여당이 ‘독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주환원이 목적이 아니라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등을 이유로 자사주를 취득해 보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업이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태광산업은 6월 발행 주식의 24.41%에 달하는 자사주 전량(27만1769주)을 담보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려다 주주 반발에 부딪혀 최근 EB 발행 계획을 보류했다. 재무구조가 나쁘지 않은 데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EB를 발행하려는 건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려 꼼수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자사주를 담보로 한 EB 발행은 사실상 ‘3자 배정 유상증자’와 같은 효과가 나타나 EB 발행 이유에 따라서는 기존 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21년 SK가 자사주 8.6%를 활용해 글로벌 투자사 KKR로부터 1조원의 투자를 유치한 사례다. 당시 SK는 자사주를 KKR에 매각하고, KKR은 이를 기반으로 EB를 발행했다. SK는 신주 발행 없이 대규모 투자금을 확보해 첨단소재 등 신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 재계에서는 자사주마저 보유할 수 없게 되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에는 차등의결권(특정 주주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 부여)·황금주(주식 수와 관계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와 같은 외부 세력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 노출된 한국기업 4년새 6배
SK는 소버린의 공격 당시 보유 중인 자사주 10.41%를 하나은행·신한은행 등에 매각해 우호 지분을 형성해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엘리엇과 삼성의 공방에서도 삼성물산이 자사주 5.76%를 KCC에 매각하면서 경영권을 방어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차등의결권 등 제도적 경영권 방어 장치가 전무한 상황이어서 국내 대표 기업이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은 거세지고 있다. 영국 리서치업체 딜리전트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에 노출된 아시아 기업은 2020년 126곳에서 2024년 202곳으로 늘어났다. 이 기간 한국은 10곳에서 66곳으로 6배 넘게 증가했다. 재계와 전문가가 3차 상법 개정과 동시에 경영권 방어 수단 제도화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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