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며 봉사하니 일석이조" 일상 된 ESG

지난 15일 서울 성수동에서 회사 동료들과 ‘플로깅(plogging)’ 행사에 참가한 직장인 김은지(31)씨는 “예전엔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게 사실인데, 이렇게 재미있는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어 훨씬 마음이 편하다”며 “운동하면서 봉사활동도 겸할 수 있으니 만족감도 두 배”라고 뿌듯해했다. ‘줍다’를 의미하는 스웨덴어 ‘plocka upp’과 영어 ‘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뜻하는 플로깅은 최근 환경보호와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ESG 실천형 취미’로 특히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9일 충남 태안 해변에선 봉사단체 ‘FPP’ 회원 50여 명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해안을 달리며 쓰레기를 수거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행사를 기획한 선호민(33) FPP 단장은 “쓰레기를 양산하는 기존의 축제가 아니라 쓰레기를 줍는 것도 얼마든지 즐겁고 의미 있는 행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환경보호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플로깅이 인기를 끌자 최근엔 지자체와 기업들도 앞다퉈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참여형 플로깅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나섰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기업 경영 철학으로 자리매김한 ESG가 이젠 일반 시민들의 생활 속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는 셈이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취미 활동이나 소비·먹거리 문화를 통해 환경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례가 갈수록 확산되는 모습이다. 지난 3월 한국리서치 소비자 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중 5명은 “생활 속 ESG에 적극 동참하거나 실천하고 있다”고 답했다.
30대 주부 이은영씨는 “물건을 사더라도 가능하면 친환경 포장을 고르고 종이 영수증도 최대한 받지 않고 있다”며 “소소한 것이라도 일상 속에서 하나씩 실천하다 보면 자존감도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과거엔 사회 캠페인이나 기업 활동 영역에 국한됐던 ESG가 이젠 일반 시민들의 ‘생활 속 가치 담론’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여서 나도 기꺼이 동참하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흐름에 지자체도 동참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 7월부터 한강공원 등에서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시민에게 주문 한 건당 탄소중립포인트 1000원을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지난 15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가족들과 피크닉을 즐기던 김상훈(38)씨는 “배달앱에서 다회용기 선택만 해도 보상 포인트를 받으니 이젠 습관이 됐다”며 만족해했다. 최근엔 종로구·중구 등 서울시내 20개 자치구도 다회용기 배달 서비스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도 이에 발맞춰 개인컵 사용 캠페인 등을 확대하는 추세다. 스타벅스의 경우 지난해 개인컵 이용 건수가 총 3371만 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런 흐름에 소비자들 반응도 긍정적이다. 조사 결과 소비자 10명 중 7명은 “ESG 실천 기업 제품이라면 추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소비를 통한 가치 실현’이란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널리 퍼져 있다는 얘기다. 대학생 김예진(27)씨는 “기후위기를 매년 몸으로 체감하다 보니 환경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됐다”며 “적은 돈이지만 기부도 하면서 일회용품 사용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취미 활동은 물론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늘려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플로깅처럼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늘어날수록 시민들의 ESG 체감도 또한 높아질 것”이라며 “이제 ESG를 통한 사회 공헌은 ‘특별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 교수는 “특히 ‘나 하나쯤이야’라는 인식을 넘어 ‘나도 할 수 있다’는 실천 의지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런 노력들이 우리 사회를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도 ESG 관련법 제정과 공공부문 평가 강화 등을 통한 생활 속 ESG 확산 방안을 모색하고 나섰다. 다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허경옥 성신여대 교수는 “정부의 ESG 정책이 기업에 대한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해선 안 될 것”이라며 “기업·지자체와 일반 시민들이 함께 지속 가능한 사회를 추구하는 기회이자 새로운 공동의 가치를 창출하는 출발점이란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