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조정, 장수 박엽의 '엄벌주의' 두둔…병자호란 패인 제공

2025. 9. 2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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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세포에서 우주까지
병자호란에서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의 47일을 다룬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당시 조선 군대는 청나라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중앙포토]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에서 조선이 패배하고 조선의 임금이 청나라 임금 앞에서 항복 의식을 치른 사건은 과거로부터 한국사의 유명한 치욕으로 자주 언급되어 온 일이다. 그런데 그 병자호란의 원인과 결과를 해석할 때 1990년대 이후로 국내 학계에서 종종 언급되는 한 가지 독특한 학설이 17세기 소빙기(The Little Ice Age) 이론이다.

소빙기란 지금으로부터 1600년대를 끼고 수백년에 걸쳐 지구 전체에 작은 빙하기라고 할 만한 기후 변화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본래는 유럽에서 과학 연구와 연결되어 주목받은 생각이었는데 이에 따르면 기후가 바뀌자 농사가 잘 되지 않게 되었고 가뭄, 한파와 같은 여러 재난도 벌어져 세계 곳곳에서 여러 갈등이 발생했다고 한다. 국내 학계에서는 소빙기 때문에 농업을 중시했던 조선이나 명나라의 국력은 약해졌고 반대로 유목과 사냥을 중시했던 청나라의 여진족은 더 단결하고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식으로 그 영향을 해석하곤 한다.

박엽, 인조반정으로 광해군과 함께 제거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올 때 통과한 남문. 남한산성 사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다. [중앙포토]
아직까지 모든 면에서 굳건한 학설은 아니다. 17세기에 소빙기가 어느 정도로 얼마만큼 강하게 왔느냐에 대해서 의견은 분분하다. 소빙기의 원인에 대한 설명도 뚜렷하지는 않다. 태양 활동이 약해지는 시기가 찾아와 지구가 서늘해졌다는 의견도 있었고 이태진 교수 같은 국내 학자는 우주의 유성이 지구에 많이 떨어지면서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추측을 20여 년 전에 제시한 적도 있다. 우주를 떠돌던 돌덩어리들이 마침 이 시기에 지구와 마주쳤고 많은 돌덩어리가 유성으로 변해 타오르면서 그 재와 먼지가 햇빛을 가려 날씨가 바뀌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소빙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중에 내가 특히 관심을 갖고 살펴본 것은 이러한 1600년대의 위기를 맞아 조선 조정이 어떤 정책을 택했느냐 하는 대목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박엽이라는 인물과 그의 활동에 대한 사연들을 소개해 보고 싶다. 박엽은 17세기 초 함경도와 평안도에 걸쳐 북방 지역을 다스리는 일을 많이 맡아 했던 인물이다. 북쪽 여진족을 막아 내는 국방 분야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임금이었던 광해군은 그가 일을 잘 한다고 보고 무척 아끼고 믿었던 것 같다. 세상이 뒤집혀 광해군이 쫓겨나고 인조와 그 후손들이 임금이 된 후에도 적어도 박엽이 건설해 놓은 요새들이나 군사적인 준비에 대해서는 평가가 괜찮았다. 도대체 그가 그런 좋은 평가를 받은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조선 후기의 기록들을 보면 박엽은 엄한 벌을 내려 부하들을 휘두르는 데 아주 능했다고 한다. 1600년대 초 그는 북방 지역에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책임자를 찾아 무거운 징벌을 가해 사람들을 겁먹게 만들었고 그 공포로 사람들을 다스렸다. 자기 뜻대로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극형 처분도 박엽은 과감하게 자주 내렸다. 그 정도가 심했는지 『청성잡기』 같은 책을 보면 박엽은 “1만을 죽여야 네가 산다”라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그렇게나 많이 사람을 처형했던 거라는 전설이 생겼다고 한다.

그 시절 조선 조정의 고위층은 그런 일 처리 방식이 일을 잘하는 거라고 여겼다. 임금은 무슨 일이든 잘못한 것이 없다고 떠받들고 항상 아랫사람이 일을 잘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거라고 이유를 말해야 했던 조선 시대 문화에서는 이렇게 잘못한 사람을 지목하고 처벌하자고 하는 박엽 같은 인물이 특히 인기를 얻기 유리했다.

그렇지만 해결이 어려운 문제일수록 그냥 책임자 한 명을 무겁게 처벌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여진족과 전투하는 문제를 가상의 예로 생각해 보자. 한 장수가 여진족과 싸우다가 패배해서 후퇴했다고 치자. 그런데 패배했다고 해서 충분히 용감하게 싸우지 못했다며 처벌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통 가장 먼저 여진족과 싸운 장수는 그만큼 재주가 뛰어나고 기민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그를 처벌해 내쫓는 것은 경험 많고 뛰어난 장수 한 명을 쓸 수 없게 하는 일이다.

다음번에 또 전투가 벌어지면 지난번에 앞장서 싸우던 그 장수도 없으니 패배할 확률은 더 높을 것이다. 그래서 또 패배하면 아마 더욱 무거운 처벌이 내려올 것이다. 그러면 두 번째로 경험이 많은 장수도 쫓겨나고 감옥에 갇힌다. 다음번에 다시 전투에서 패배하면 더욱더 무거운 처벌이 내려올 것이다. 전력은 점점 더 약화된다.

조선의 장수가 여진족과 싸울 때 지고 싶어서 지겠는가? 무기가 부족하거나 병사 숫자가 부족하거나 훈련이 부족하거나 하는 이유가 있어서 패배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면 현재의 부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어떤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무작정 장수들에게 패배하면 아주 무거운 벌을 내리겠다고 겁을 주기만 하면 결국 장수들은 벌을 받기 싫어서 여진족과 싸우는 곳에 배치되기를 꺼려하게 된다. 아마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들부터 무슨 수로든 여진족과 싸우는 곳은 피해 가려고 할 것이다. 즉 연거푸 패배한다고 처벌만 점점 더 무겁게 하면 그런 곳일수록 유능한 사람은 떠나가고 도리어 그 지역은 약해지기만 한다.

묘하게도 조선 조정 같은 조직에서는 “처벌을 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을 해 주자”는 의견이 나오기가 원래 어렵다. 왜냐하면 처벌은 궁궐에 앉아서 말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지원을 해 주자는 일은 그만큼 조정에서 자금과 인력을 소모해야 하는 “내가 힘을 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원을 해주었는데도 좋은 결과가 안 나오면 “왜 그 많은 자금과 인력을 소모하고도 결과가 나쁘냐”며 지원해 주자는 의견을 낸 사람이 비난받기도 좋다. 그러니 잘 돌아가지 않는 조직일수록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풀기 위해 지원을 해 주자는 의견 보다는 잘못된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자는 주장이 훨씬 더 인기 있다.

17세기 조선 고위층 ‘군인 불신’ 강해
청에 패배해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 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은 삼전도비.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비석으로 높이 3.95m, 폭 1.4m다. [중앙포토]
게다가 처벌을 무겁게 하자는 주장은 누구든 담당자를 정해 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자는 주장으로 악용되기도 좋다. 특히 광해군 시대처럼 파벌과 세력 간의 다툼이 심할 때라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로 상대방 파벌을 공격하기 위한 의도로 책임자를 찾아 강하게 처벌하자는 의견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공사견문록』 같은 책에 따르면 광해군 시대에는 누가 “밥숟가락이 남보다 좀 더 크기만 해도” 하여튼 무엇인가 잘못했다고 이유를 붙여 처벌하라며 공격하는 풍조가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결국 광해군은 정국의 혼란 속에서 몰락했고 박엽도 그때 같이 제거되었다. 안타깝게도 이후 등장한 인조 시대 조정 역시 이런 꼬인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악순환 속에서 군사력은 더더욱 약화되었다. 심지어 이괄의 난 같은 군사 반란 사건을 거치면서 조정이 국방을 담당하는 군인들을 도와주기보다는 반대로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경향은 더욱 심해지기만 했다.

그 모든 것들이 병자호란 당시 조선군 궤멸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박엽을 둘러싼 문제는 한 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 조선 조정의 잘못된 문화 때문 아니었나 싶다. 17세기 소빙기의 위기에 대해서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점은 많다. 지금 이야기한 박엽을 둘러싼 이야기들 역시 그 시대를 설명하기 위한 많은 관점의 이야기 중 한 가지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가 새로운 기후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주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자연의 재난이 더 심각해질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때문에 국제 정세와 세계 경제의 불안 역시 더 커질 수 있다는 예상도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런 만큼 나는 재난 대비를 위해서 뒤늦게 처벌을 무겁게 하는 것 이상으로 미리 취약한 곳을 찾아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정말로 잘못된 일이 있다면 처벌하는 것도 꼭 필요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처벌하는 일 이상으로 지원해 주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지원하는 일은 나서서 부담과 책임을 지는 일이기 때문에 더 힘들고, 그런 만큼 더 의식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일이다. 17세기 소빙기 시대에 나라의 주인은 광해군과 인조였지만 21세기 우리나라의 주인은 국민 모두이기에 나는 이런 인식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곽재식 작가·숭실사이버대 교수. 공상과학(SF) 소설가이자 과학자. 과학과 사회·역사·문화를 연결짓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등을 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화학을 전공, 연세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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