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Me, myself & I

국무회의 생중계 동영상에 대한 네티즌들 반응이 뜨겁다. 예전엔 대통령이 교장 훈시처럼 판에 박힌 원고를 읽고 비공개로 전환된 뒤 예정된 안건을 처리하면 끝이었다. 장관들 토론은 금기시됐다. 특정 현안에 의견을 내려 해도 남의 영역을 왜 굳이 침범하냐며 눈칫밥 먹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전체 회의가 실시간 중계되자 예상 밖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구체적 사안을 놓고 토론과 문답이 이어지면서 장관들 내공이 그대로 드러나게 됐기 때문이다. “평소 궁금했던 게 속속 의제로 올라오고 난상토론까지 벌어지니 이만한 리얼리티 영상이 없다” “케데헌 등 볼 것 많은 OTT보다 더 흥미진진하다”는 댓글에 ‘좋아요’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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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 살아남으려면
공무원들이 마음 다잡고 다시 뛰어야
」
장관들도 부담스럽다. 기업 출신 국무위원은 “제대로 답하려면 정말 공부를 많이 해가야 하는 분위기”라며 “다만 민간기업에선 이미 보편화된 회의 방식이란 점에서 늦었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미 정치권에선 연말쯤엔 장관들의 실력 유무가 자연스레 가려질 거고, 여론과 전문가들 평가가 일치하는 일부 장관은 인사 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마저 제기되고 있다. 생중계 하나가 불러온 의외의 파급효과다.
“3년 일한 것보다 석 달간 더 많이 일했다.”
정부 부처의 5급 사무관은 혀를 내둘렀다. “지난 3년간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 일상화됐는데 최근엔 수시로 과제가 내려오다 보니 아침 7시반에도 대부분 출근해 있을 정도”라면서다. 동료의 자조 섞인 넋두리가 이어졌다. “예전엔 괜히 무리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팽배했어요.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고 상사 눈에 거슬리지만 않으면 된다고요. 복지부동을 넘어 의자에 딱 달라붙어 꿈쩍도 안 하는 낙지부동 단계까지 갔었죠.”
그렇게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는 동안 나라는 ‘불가역적’으로 악화됐다. “위에서 연구개발(R&D) 예산 대폭 삭감과 의대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일 때는 일선 공무원들도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실제로 그사이 첨단기술 연구자들은 대거 실험실을 떠나야 했고 필수·지역의료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은요? 갑자기 바빠지니 몸은 힘들어도 오랜만에 일할 맛 난다고들 합니다.” 공무원이 다시 뛰기 시작하자 가시적 성과도 뒤따르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 때 효과적으로 활용된 ‘MASGA’ 용어와 자료사진도 일선 부처 공무원들의 아이디어였다. 일하는 분위기가 불러온 또 다른 파급효과다.
“셋만 보고 일한 거죠. Me, myself & I.”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은 정규재tv에 출연해 ‘부처에서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정부에 들어와 여러 관료들과 일하면서 실감한 걸 짧은 세 단어로 압축한 거였다. 그의 말처럼 관료는 생리상 ‘나’의 안위와 ‘내’가 속한 조직의 생존이 제1의 목표다. 이를 계속 방치하면 줄서기와 그들만의 폐쇄적 문화가 횡행하게 되고, 젊고 유능한 공무원은 이에 동화되거나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적나라하게 적용되는 곳이 한국의 공직사회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국가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건 결국 공무원의 몫이다. 이들이 마음을 다잡고 창의력을 발휘해야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나. 물길을 내려면 원하는 방향으로 물꼬를 터야 하는 법. ‘Me, myself & I’라는 철옹성 같은 생존 원칙을 부정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살아남으려면 능력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생중계도, 지속적인 과제 부여도 동기 부여의 한 방법일 터다. 그렇게 내 밥그릇보다 국민의 밥그릇을 먼저 챙길 때 확실히 보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 지금은 공무원이 뛰어야 할 때다. 그래야 국가도 뛸 수 있다.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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