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빛과 그늘 속, 한국 오케스트라의 내일

2025. 9. 2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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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왈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다가오는 가을과 겨울 사이, 해외 명문 교향악단 13곳이 내한 공연을 펼친다고 한다. 일정표까지 상세히 설명한 소개 기사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먼저 그 많은 숫자에 놀랐고, 숨이 멎을 만큼 대단한 그 오케스트라들의 수준과 면면에 놀랐다.

그 13개 세계 정상급 악단의 명단에는 당연히 ‘세계 빅3’도 빠지지 않았다. 베를린 필과 빈 필, 네널란드의 명문 로열 콘체르트허바우를 말한다. 이밖에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필하모닉,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체코 필하모닉, 런던 베이스의 런던 필하모닉과 필하모니아 등등. 일정상 첫 테이프를 끊는 정명훈을 비롯하여 에드워드 가드너, 구스타보 두다멜, 세묜 비치코프, 키릴 페트렌코, 크리스티안 틸레만,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사나이 클라우스 메켈레 등 그 오케스트라의 선장 라인업도 화려한 볼거리다. 이들이 펼칠 휘황찬란한 지휘 덕분에 ‘보는 오케스트라’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풍성
티켓 가격 최고 50만원 안팎까지
자칫 국내파들이 소외될 가능성
국내 연주자에게도 따스한 관심을

실내 극장의 온기가 살갑게 다가올 연말 공연 최성수기, 과연 외국 수입품이 점령한 우리 클래식계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이런 라인업은 황홀한 축제 자체다. 굳이 비싼 값을 치르며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고순도의 선율을 안방에서 만끽할 호재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연말 이런 흐름이 자리 잡으면서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올 연말 ‘4개월간 13개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은 물량과 수준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서울은 국제적인 클래식 음악 도시로 우뚝 서는 순간을 맞았다.

여기까지는 해외 명문 오케스트라 내한이 빚어내는 ‘빛의 세계’다. 그러나 빛이 강렬할수록 그림자도 긴 법이다. 빛의 친구인 그림자는 시련의 영역이지만, 더 밝을 빛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점에서 기꺼이 껴안아야 할 대상이다. 어둠을 이기고 아침이 오듯이, 내일은 빛이 아니라 그림자 속에서 태어난다.

해외 오케스트라 대거 내한이 당장 우리 클래식 시장에 드리울 그림자 몇 가지를 들면 이렇다. 먼저 관객들의 주머니 사정이다. 고액 관람료 문제인데, 아무리 해외 오케스트라의 라인업이 화려한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일반 관객들에게는 언감생심의 높은 벽이다. 최고액이 50만원 안팎에 육박하고 낮은 등급 티켓값도 만만찮다. 이런 형편에서는, 일각에서 부르짖는 ‘클래식 대중화’는 죽은 언어나 다름없다.

기호에 따른 소비자의 선택이자 수요와 공급이 작동하는 시장의 측면에서는 그렇고, 과연 국내 오케스트라에 직접적으로 드리우는 그림자는 없나. 야속한 그림자가 거기에도 있다. 짧은 성수기에 명성이 자자한 해외 악단이 몰려들면 국내 오케스트라 무대는 순식간에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관람료가 낮더라도 품질 경쟁에서는 썰물로 여긴다. 숱한 해외 교향악단의 내한 기사를 접한 순간, 놀란 가슴에 내가 가장 먼저 살핀 건 연말 우리 악단의 박스오피스 상황이다. 다행히 경쟁에서 살아남는 결과가 나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보다 더 얄궂은 그림자는 협연자와 관련한 이야기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한국 출신 스타 연주자들은 국내 오케스트라보다 해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우선하는 편이다. 그 ‘사람’이 이를 우선시한다기보다는 그들이 속한 에이전트의 전략이라 일방적으로 단정하기는 곤란하지만,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맞다. 국내 무대가 아무리 탄탄한 실력을 쌓아도, 글로벌 클래식 음악 시장의 질서라는 운동장은 이처럼 기울어져 있다. 아직은 그게 엄연한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우리나라에 클래식 음악 연주를 업으로 하는 ‘직업 오케스트라’는 50개 안팎이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통계는 아니다. 이 세계의 얼굴인 서울시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 국립심포니와 비교적 활동이 활발한 전국 여러 지자체의 공공 오케스트라, 프라임 필하모닉·코리아쿱오케스트라 등 민간 오케스트라를 두루 망라하여 추산한 수치가 그쯤이다.

아직 앞서 예로 든 해외 오케스트라에 비해 연주 기량과 기획, 운영 등 전반적인 수준은 세계 정상급에 미치지 못하나, 최근 국내 오케스트라와 젊은 지휘자의 약진은 실로 눈부시다. 이때 큰 힘이 되는 게 경도된 편견을 벗어난 팬들의 사랑이다. 우리 오케스트라의 밝은 내일을 위해, 어려움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에 따스한 눈길을 줄 때다.

정재왈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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