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따라 변화하는 나무로 '일상'을 깎고 다듬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5. 9. 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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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위에 바나나가 놓였다.

나이테를 드러낸 바나나는 자신의 본성이 나무임을 항변한다.

9일 만난 작가는 "나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건, 나무가 우리 삶과 비슷해서다.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어 익숙하고 또한 갈라지고 주름지면서 나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한 재료"라고 말했다.

3층에 오르면 나무를 깎아 만든 이 두루마리 휴지의 변신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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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展…백연수 '끝나지 않은 장면'
백연수 작가의 'Black Forms 검은 형상들'(오른쪽). 김종영미술관

통나무 위에 바나나가 놓였다. 이 친숙한 과일의 표면에선 세월이 보인다. 나이테를 드러낸 바나나는 자신의 본성이 나무임을 항변한다. 옆에는 배추와 밥솥이 놓였고, 아이가 가지고 노는 크레파스도 걸려 있다. 생물로도, 소품으로도 자유롭게 변신하는 나무의 노래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은 2004년부터 김종영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를 선정해 '오늘의 작가'전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 초대된 작가는 나무를 깎고, 채색해서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을 재현한 작품으로 익숙한 백연수다. 11월 2일까지 열리는 6년 만의 개인전 '끝나지 않은 장면'에서 작가는 나무를 소재로 한 조각을 다채롭게 펼친다.

9일 만난 작가는 "나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건, 나무가 우리 삶과 비슷해서다.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어 익숙하고 또한 갈라지고 주름지면서 나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한 재료"라고 말했다.

2층에서 관람을 시작하면 좋다. 아몬드 음료, 바나나 같은 일상 사물을 사각기둥 원목 일부처럼 깎아서 재현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는 이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다. 3층에 오르면 나무를 깎아 만든 이 두루마리 휴지의 변신을 볼 수 있다. 수십 개의 휴지 형태를 만들어 이를 다시 탑처럼 쌓은 '쌓기 연습' 연작을 만난다. 제목처럼 재현을 넘어서 조형 실험에 역점을 둔 작품이다.

주전시장인 1전시실에는 최신작 '드러나는 것'과 '끝나지 않은 장면'을 통해 휴지 형태를 한 구상 작업이 조금 더 추상적 형태로 변모한다. 커다란 통나무 내부를 깎아낸 '구(球)' '입방체' 등의 조각은 작가가 나무를 통해 구의 형태에 얼마나 천착해왔는지 알 수 있다. 포도송이처럼 걸린 연작조차도 검은 구의 형태를 실험하고 연습한 끝에 나온 작업이다.

온갖 나무를 사용하지만 그의 작업실에는 특별한 나무도 있다. 작가는 "나무를 깎는 힘든 노동을 하는 동안 기계 소리, 냄새로 가득해져서 늘 오감으로 느끼며 작업을 한다. 나무를 깎을 때 작업실을 향기로 가득 채우는 게 캄포나무라 특별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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