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태극권 창시자 장삼풍은 누가 진짜일까

강현철 2025. 9. 1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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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여행할때면 한국에서 보기 힘든 장면을 자주 만나게 된다. 건강을 위해 공원에서 남녀노소가 모여 느린 동작이 특징인 ‘태극권’을 하는 모습이다. 무당파 무술로 알려진 태극권은 소림사 무술과 함께 중국 무술의 2대 원류로 꼽힌다. 소림 무술은 중국 불교 선종의 조사인 달마대사가 심신 단련을 위해 창시했다고 알려져 있다.

무당파 무술의 창시자는 장삼풍(張三豊)으로 전해져 온다. 장삼풍은 장삼봉(張三丰)으로 불리기도 한다. 봉(丰)은 ‘풍’으로도 읽을 수도 있으며, 풍요로울 풍(豐)자의 약자로 쓰인다. 게다가 중국어 발음으로 봉(丰)과 풍(豐)의 음이 같다.

장삼풍은 천하를 떠도는 무림의 고수로, 그가 창시한 태극권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며, 무형속에서 유형의 변화를 일으킨다. 무당파는 몸의 단련을 통해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교의 도사와도 밀접히 연결된다. 무협지엔 ‘화산 무당파’ 또는 ‘무당산 무당파’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데, 화산과 무당산은 모두 서안 근처에 있는 산이다.

화산은 중국 오악의 하나로 험준하기로 유명하며, 도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무당산은 호북성 서북부에 위치하며, 태화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72개의 봉우리와 36개의 거대한 암석, 24개의 계곡, 11개의 동굴이 있다. 송나라의 서법가 미불은 무당산을 일러 “천하 제일의 산”이라고 했다.

태극권의 창시자로 알려진 장삼풍은 한 사람이 아니다. 누가 진짜인지도 확실치 않다.

우선 장삼풍이 송나라 사람이라는 설이 있다. ‘중국사의 숨겨진 이야기’(파라북스 펴냄)에 따르면 청조 강희 8년 황종희가 쓴 ‘옹정남묘지명’엔 태극권은 송나라 무당단사인 장삼풍이 개창했다고 기록돼 있다. “소림은 권법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쳤지만 주로 격투 위주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싸움에 이용했다. 하지만 이른 바 내가(內家)란 정(靜·고요함)으로 동(動·움직임)을 제압하여 상대를 즉각 굴복시킬 수 있다. 그래서 소림은 외가(外家)라 하여 이와 구분했는데, 이는 모두 송나라 장삼풍에서 시작됐다”는 구절이 나온다.

두번째는 장삼풍이 명나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넷플릭스 ‘의천도룡기’에서는 명나라 건국과 관련된 장삼풍의 스토리가 나온다. 14세기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명교의 교도였고, 그래서 명나라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명교 제34대 교주 장무기는 어릴 적부터 장삼풍과 인연이 있다고 한다. 주원장은 장무기 밑의 교도였다. 무당파의 장삼풍 밑에는 무당칠협이라는 7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장무기는 그 중 다섯째인 장취산의 아들이라고 한다.

명나라 역사서인 ‘명사’(明史) 장삼풍전에 따르면 장삼풍의 이름은 통(通)이며, 전일(全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자는 군보(君寶) 또는 군실이며, 호는 삼풍 또는 삼봉이다. 원말 청초의 도사로, 본적은 요양 의주(지금의 요녕성 창무)이다. 그는 “큰 거북이처럼 몸집이 거대하고 등이 학처럼 생겼으며, 귀가 크고 눈이 둥글었다”고 써있다. 춥든 덥든 항상 낡은 도롱이 하나만을 걸치고 다녀 ‘장랍탑’(랍탑은 지저분하다는 뜻)으로 불렸다. 그는 일당백의 무술을 갖췄고, 산을 뚫고 지나갈 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는 신통력까지 있었다고 한다. 명 영락제는 그를 위해 무당산을 정비해주는 한편, 30만명에 달하는 인부를 동원해 무당궁(태화궁·太和宮)도 지어주었다.

장삼봉에 대한 정사 기록은 ‘명사’ 방기전의 “황제가 장삼봉 진인을 현자의 예우로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숨었다”는 구절이 유일하다.

마지막으로 장삼풍은 허구적 인물이라는 주장이다. ‘명사’의 ‘호전’ ‘정화전’ 요광효전‘ 등에 따르면 장삼품은 영락제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영락제는 자신의 조카 건문제를 몰아내고 명 3대 황제에 올랐다. 건문제는 남경을 지키다가 함락 위기에 몰라자 궁전을 불태우고 종적을 감췄다. 마음을 놓지 못한 영락제는 도사 장삼풍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20년간 건문제를 추적했으나 찾을 수 없게 되자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민간에는 황제가 도사 장삼풍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고, 영락제는 어쩔 수 없이 무당산을 정비하고 장삼풍 동상까지 세웠다는 것이다.

장삼풍이 무당파 개조로 널리 알려진 것은 김용의 무협소설에서다. 태극권을 장삼봉이 창안했다는 건 전설일뿐, 실제로는 태극권은 진가구의 진씨 집안에서 내려오던 가전무예라는 얘기도 있다. 1930년대 무술 고증가인 당호 등의 고증을 거쳐 태극권은 명말청초의 장군인 하남온현 진가구의 진왕정(陳王庭)이 창시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강현철 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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