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것’ 돼버린 ‘살 곳’… 선진국은 왜 ‘주거 민주주의’ 실패했나[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5. 9. 1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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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집값에 대하여
조시 라이언-콜린스 지음│윤영호 옮김│사이
英경제학자, 세계 집값전쟁 조명
1980년대 주담대 규제 완화돼
상업은행도 가능케 전면 개방
금융↔집값 상승효과 지속 심화
선진국선 땅값 인상도 악화 한몫
토지·건물 분리 韓 부동산 정책
“일정기간 가격 유지” 긍정 평가
영국의 경제학자 조시 라이언-콜린스는 저서 ‘상품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집값에 대하여’를 통해 전 세계적인 집값 상승 현상의 역사를 파헤친다. 저자는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려된 ‘주거 민주주의’와 늘어난 주택담보대출 등을 지적한다. 뉴시스

집값은 언제나 문제다. 매년 치솟는 가격 앞에서 월급을 모아 집을 사겠다는 꿈은 이미 오래전에 접었다.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샐러리맨의 목표라기보다 환상에 가깝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도 그렇고, 영국도 그렇다. 지금 세계인은 집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조시 라이언-콜린스가 쓴 ‘상품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집값에 대하여’는 바로 이 세계적 전쟁의 연대기를 추적한다.

앞선 저서 ‘땅과 집값의 경제학’에서 토지·주택과 금융 시스템이 어떻게 맞물려 오늘의 거시경제를 형성했는지를 설명했다면 이번 책은 시선을 넓혀 집값 상승의 역사와 그 구조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책이 보여주는 통계는 이렇다. 영국에서 1996년 25~35세 중간소득층의 약 3분의 2가 집을 소유했지만, 2016년에는 4분의 1로 급감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2004년 같은 연령대의 주택 소유율은 45%였으나 불과 10년 만에 10% 이상 추락했다. 한국의 상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렇다면 집값은 언제부터 이렇게 치솟았을까. 라이언-콜린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그 출발점으로 잡는다. 전후 재건을 위해 미국은 ‘주거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연방정부의 보조금과 보증 제도 덕분에 주택 보유율이 급격히 상승했고, 주택 소유가 소비와 건설 부문을 자극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며 경제성장의 엔진이 되었다.

반면 서유럽은 임대주택과 공공주택 건설과 같은 도시계획에 집중하며 자가 보유를 늦게 도입했다. 미국, 뉴질랜드와 같은 개척자 사회와 달리 한정된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서구 전역에서도 주택 소유가 지배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집값 문제는 공통의 과제가 된다.

결정적 전환은 1980년대였다. 이전까지 주택담보대출은 엄격히 규제돼 있었다. 전문 기관만이 대출을 제공했고, 무분별한 확대를 막는 안전장치가 있었다. 그러나 상업은행에도 대출이 전면 개방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자본 유동성을 높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부동산 담보였고, 은행은 경쟁적으로 대출을 확대했다. 그 결과 금융과 집값은 서로 상승을 부추겼다. 은행은 이 손쉬운 상승효과에 ‘중독’되어 버렸다.

여기에 간과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 바로 땅값이다. 집값은 건물 가격이 아니라 그 아래 놓인 땅의 희소성과 직결된다. 땅은 새로 만들어낼 수도, 이동할 수도 없다. 공급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토지 가격의 상승은 곧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2년까지 선진국 집값 상승분의 80% 이상이 땅값 상승에서 비롯됐다. 결국 ‘집값 전쟁’의 이면에는 ‘땅값 전쟁’이 놓여 있는 셈이다.

많은 서구 국가가 꿈꿨던 ‘주거 민주주의’는 실패했다. 정부 정책은 자가 보유에 대한 욕망을 부추겼다. 은행은 담보 대출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결과는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비롯된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가 같은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20세기부터 주택 공급에 애를 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은 비교적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유지했다. 이들 국가는 주택 보유율이 50% 이하에 머무르지만, 공공임대와 민간임대가 안정적으로 공급돼 시민들이 주거 불안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단순히 주택 공급이 아닌 주택 소유에 대한 열망을 조절한 덕분에 집값 급등을 피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이 ‘토지와 건물 분리 정책’의 긍정적 사례로 언급된다는 점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산업용·주거용 토지 개발을 전담하며 토지를 공급한 덕분에 토지와 주택이 일정 기간 비교적 합리적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집값 현실을 생각하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제도적 장치가 갖는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저자는 1980~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사실상 ‘홉슨의 선택’ 앞에 서 있다고 말한다. 겉보기에는 여러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변변찮은 임대주택에서 살 것이 아니라면 연간 소득보다 몇 배나 많은 액수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평생 갚아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토지와 주택 가격을 분리하며, 공공의 역할을 재확립해야 한다.

비교적 짧은 분량으로 세계 집값의 복잡한 역사를 쉽게 풀어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점차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 것’이 되어버린 부동산의 역사를 보다 보니 마음이 헛헛해진다. 244쪽, 1만8500원.

신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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