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노동자에겐 없고, 외국인 노동자에겐 있는 것

한겨레 2025. 9. 1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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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의 요즘 조선소 _03
일러스트레이션 김재영

한화오션 기술교육원은 특이하게도 군대처럼 기수를 따졌다. 내가 조선소 현장에 투입됐을 당시였다. 선배들에게 기술교육원을 통해서 취업했다고 하면 대부분 똑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니 몇 기수고?” 257기라고 대답하는 순간, ‘기교원 출신’이라는 느슨한 관계망에 합류하게 되었다. 군대도 아닌데 기수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 전후로 대한민국 거의 최남단인 거제 옥포에 도착한 젊은 남성들. 지금은 정년퇴직했거나 정년을 앞둔 선배 노동자들이 마주쳐야 했던 조선소의 현실이란 살벌한 노동 강도만이 아니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일하는 동안 몸은 너덜너덜해지고, 투박하고 거친 선배들의 폭언에 마음까지 다친 채로 퇴근해야 했을 터. 몸을 씻고 오로지 잠자기 위해 있는 관짝만 한 원룸에 누우면, 한여름 습기처럼 스민 외로움에 마음까지 지쳤으리라. 그럴 때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선후배 관계를 맺어 고난을 버티려 기수 문화를 유지하지 않았을까.

제257기 한화오션 기술교육원의 ‘명목상 수업 시작’은 오전 8시. 실제론 오전 7시에 개방하는 식당에서 밥 먹고 교육원으로 7시30분까지 도착해야만 했다. 잠을 못 자 침대 위에서 비몽사몽하고 있자니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방을 쓰던 동갑내기 배씨였다. 입이 두동강 나도록 하품하면서 물었다. “대체 왜 30분 일찍 도착하라고 해요?” 마찬가지로 눈곱이 덜 떨어진 배씨가 대답했다. 조선소는 ‘배 안으로 들어가는 시점’을 업무 시작으로 본다. 즉 7시 반에 모여 업무 하달하고 체조까지 하는 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하지 않는다. 기술교육원도 현장과 똑같이 운영한다고. 정보를 주고받는 동안 막내인 찬도 합류했다. 찬은 핸드폰을 보고 킥킥 웃고 있었다. 뭘 보나 했더니 조선소 식단표였다. 조선소는 워낙 커서 지도, 식단표, 통근버스 애플리케이션이 다 따로 있었다.

“형님들, 식단표 다운받아서 보세요. 여기 댓글이 대박 웃겨요.” 찬의 말대로 앱 다운로드 뒤 댓글창을 터치했다. 식단에 관한 불평은 자제해달라는 알림창이 떴다. 물론 댓글의 7할은 역시 반찬 투정이었다. ‘우리가 소가? 삼시세끼 풀떼기만 주삿노’, ‘고기는 맨날 참새 모이만큼 주고’, ‘이거 먹을 바에 매점 가서 컵라면 빨지’, 조선소에선 마흔살도 젊은 축에 속하니 저 리플을 다는 사람들 절대다수가 중노년일 터. 남정네들은 관 뚜껑이 닫힐 때까지 철들지 않는다던 엄마 말이 떠올라 한참 웃었다.

사흘 동안의 이론 수업을 마치고 본격 용접 교육이 시작됐다. 안전모와 안전화, 용접 보호복까지 받고 교육장에 들어섰다. 설비는 예상했던 대로 최신식이었다. 장비 상태는 깨끗했고 자재 또한 무제한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재료비 아끼느라 용접도 맘껏 못 하는 사설 학원과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훌륭한 설비와 달리 교육 내용은 별 볼 일 없었다. 조선소에서 용접하려면 선급 자격증이 필수인데 이걸 5주 안에 따면 끝. 선급 자격증은 용접 자세별로 2G(수평), 3G(수직), 4G(위보기)로 나뉘었다. 이왕이면 셋 다 딸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면 좋았으련만. 규정상 3G 자격증 이외엔 따로 시험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즉 앞으로 5주 동안 똑같은 수직 자세만 무한 반복. 용접을 5년 가까이 해왔던 난 자격증을 한주 안에 딸 수 있었으니 나머지 한달 넘는 시간이 허송세월이었다. 7시가 되어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배씨한테 한달 반 동안 심심하겠다고 얘기하니 심드렁한 대꾸가 돌아왔다. “원래 그래요, 기교원은 원래 조선소 일 하다가 힘들면 쉴 겸 교육비 받으러 오는 곳이에요.”

다음날부터 핸드폰 보조 배터리를 챙겼다. 용접보다 유튜브로 운전을 더 많이 공부했다. 용접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보니 자연히 관심사도 바뀌었다. 외국인 노동자. 기술교육원 생활 내내 내국인보다 외국인을 훨씬 많이 봤다. 특히 기숙사 인근 동문 식당의 조식 시간은 직원만 빼고 전부 외국인이었다. 기술교육원 또한 외국인이 월등히 많았다. 한국인 용접 교육생은 고작 아홉명이었는데 외국인은 족히 세배쯤 되어 보였다. 4주 차 주말엔 마감이 몰려 조선소 안에서 글을 쓰기로 했다. 마침 기숙사엔 독서실도 있어 집중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한참 노트북 붙잡고 끙끙대다가 지쳐 커피와 과자를 사러 매점으로 가는 길. 바로 옆 기숙사에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빨래를 널고, 자전거를 고치고, 족구를 하고 있었다. 영상 통화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캄보디아 사람. 자판기 앞에서 콜라 마시고 담배 피우며 쇼츠 보기에 열중인 필리핀 친구들. 이어폰 꽂고 풀밭에 돗자리 깔고 누운 타이 사람. 국적도 각기 다른 외국인 노동자의 면면에서 20년 전 타지에서 온 선배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기술 하나만 잘 배우면 평생 먹고살 수 있으리란 희망이 있던 시절. 고됨을 견뎌내며 반드시 행복할 미래로 한걸음씩 다가가는 하루하루. 같은 한국에서 살지만 정작 한국인은 기대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타지 노동자들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 무렵, 누군가 내 어깨를 툭 두드렸다. 기숙사 사감이었다. 주말인데 집 안 갔냐는 물음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잠깐 쉬러 나온 사감은 기숙사 돌아가는 현황을 얘기해주었다. 취업하게 되면 자취방을 구해야 할 것이다. 내국인 기숙사는 기술교육원용으로 단 한채만 운영되고 있다. 입사하는 외국인은 많은데 법으로 숙소를 내주도록 정해놨기에 내국인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외국인 기숙사 관리 안 힘드냐고 물어보니 일장일단이 있다고 했다. 말이 잘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른 점은 힘들지만 이른바 ‘빌런’의 비율이 한국인보다 훨씬 적단다. 외국인들은 술 반입, 무단 외출, 욕설·폭행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했다. “쟤네 중 대학 나온 아들 억수로 많습니더.” 마침 사감이 손가락으로 영상 통화 중이었던 네팔인을 가리켰다. “저기 네팔 친구 보이지예? 사미르, 점마 즈그 나라에서 의사 하던 아라예.”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 청년들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을 내팽개치고,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러 온 셈이었다. 기묘한 엇갈림에 웃음이 터졌다. 브러더 사미르, 한국에선 니 직업 못 가져서 안달이야!

천현우 | 창원시에서 여러 회사 전전하며 10년간 제조업 노동자로 일했다. 서울 성수동 미디어플랫폼 얼룩소(alookso) 등에서 2년 반 일하다 다시 경남으로 돌아왔다. 현재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을 했다. 산문집 ‘쇳밥일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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