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웰다잉’ 마지막을 존엄하게 (16)책과 영화로 만나는 이별 이야기, 삶을 돌아보다

박준하 기자 2025. 9. 1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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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최전선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쓴 에세이
죽음을 앞둔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대화 등
죽음도 자연스러운 인생의 부분이라고 수용
끝을 생각할수록 살아온 삶에 대한 ‘감사’ 표해
후회 없이 살려면 “지금 죽음을 생각할 것”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조심스럽고도 깊은 화두다. 현대의학은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삶의 질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항암치료 등 연명의료는 때때로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을 더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결국 ‘어떻게 잘 살고, 잘 죽을 것인가’라는 성찰로 이어진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미리 돌아보는 사람만이 오늘을 더욱 충실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죽음에 대해 제대로 그리고 정말로 알기를 원하는가? 나는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건 알고 싶지 않다고 해도 좋다. 어차피 한번은 죽게 마련이고, 그때는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호스피스 운동 선구자이자 ‘인생 수업’ ‘상실 수업’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남긴 말이다. 죽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바라보게 하는 이 문장처럼, 책과 영화 속 이별 이야기도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간접 경험으로 배우는 웰다잉(Well-dying)은 단순히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삶과 이별을 곱씹을 때 곁에 두면 좋은 책과 영화를 소개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외과의사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무의미한 연명 의료 대신 남은 시간을 ‘나의 방식’으로 채우는 의학의 역할을 묻는다. 단순한 철학서가 아니라 환자의 목소리와 임상 현장을 담은 르포형 인문·의학 에세이다. 

그는 요양원 안에서 마주한 동물과 식물, 아이들의 웃음, 한 사람만을 위한 방과 잠금장치, 고통을 줄이는 완화치료 같은 일상의 장면을 통해 ‘삶의 질’이 무엇인지 설득한다. 또한 의사이자 아들로서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며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가.” 이 대화는 치료의 나침반이 되고, 남은 시간을 사랑과 평온으로 바꾼다.  

이 책은 떠남을 늦추는 기술서가 아니다. 오늘을 단정히 살아내는 사용 설명서다. 책을 덮고 나면 알게 된다. 잘 떠나는 법을 배우는 일이 곧 잘 사는 법을 선택하는 일임을.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마침내 나는 어머니와 했던 북클럽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당신에게 무언가를 말할 기회가 아니라, 무언가를 질문할 시간과 기회를 주었던 것임을 깨닫게 됐다.”

췌장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 메리 앤 슈발브와 출판인 아들 윌 슈발브는 병원 대기실에서부터 집 거실까지, 어디서든 함께 책을 읽으며 마지막 시간을 준비한다. ‘마지막 북클럽’은 모자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책을 매개로 나눈 특별한 대화와 사랑의 기록이다.  

그들은 ‘인생의 베일’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 같은 책을 함께 읽으며 두 사람은 삶의 자세를 돌아보고, 이별을 견디는 힘을 얻었다. 책은 어머니가 떠남을 차분히 받아들이도록 했고, 아들은 어머니 없는 삶을 준비할 수 있었다.  

수십 권의 책과 수백 시간의 대화 끝에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했고, 책은 두 사람 사이의 다리가 되었다. ‘마지막 북클럽’은 부모와 자식의 사랑 그리고 책이 인간에게 불어넣는 위안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기록이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가지
병실 형광등 아래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묻는다. “무엇을 가장 후회하시나요?”

완화의료 전문의 오츠 슈이치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는 마지막을 앞둔 환자들의 고백을 통해 우리가 끝내 미뤄온 일들을 직면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했더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그 모든 후회는 ‘지금’을 바꾸라는 신호였음을 깨닫게 한다.

저자는 평생을 참고 살아 화병이 쌓인 이, 자신감에 가득 차서 다른 이의 조언을 무시했던 이, 성공을 위해 배반을 선택한 이들이 죽음을 앞두고  털어놓은 후회를 담담히 전한다. 그리고 권한다. 건강할 때 유언을 남기고, 장례를 스스로 설계하며, 고향과 사람들을 찾아가 화해하라고. 언젠가의 마지막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오늘을 단정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책장을 덮으면 ‘후회’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희망’을 생각하게 된다. 

영화 ‘소풍’
영화 ‘소풍’의 마지막 장면. 손을 맞잡은 은심(왼쪽)과 금순. 네이버 영화
“왜 무습나. 내는 (죽기로) 정했다. 난 다시 태어나도 네 친구 할 끼야.”

존엄사를 화두로 한 김용균 감독의 영화 ‘소풍(2024)’은 잘 죽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의 완성일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진다. 삶의 끝을 앞둔 두 노년의 친구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웰다잉’의 의미를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절친이자 사돈지간인 금순(김영옥)이 은심(나문희)을 찾아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사람은 오래도록 가슴에 묻어둔 고향 남해로 향하고, 그곳에서 은심은 과거 자신을 짝사랑했던 태호(박근형)와 재회한다. 오랜 세월 속에 묻힌 청춘의 기억과 우정이 다시 피어나며 남은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성찰로 이어진다.

‘소풍’은 삶의 끝을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를 넘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권리에 대해 묻는다. 떠남은 두려운 이별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임을 보여준다. 삶이 짧은 여행이라면 우리는 누구와 함께 걸으며 어떻게 그 길을 마무리할 것인가.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영화 ‘룸 넥스트 도어’의 한 장면. 암에 걸린 마사(오른쪽)와 친구 잉그리드. 네이버 영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룸 넥스트 도어(2024)’는 마지막 순간의 우정을 그린다. 유명 작가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오랜 친구 ‘마사(틸다 스윈튼)’가 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고 병실로 찾아간다. 오랫동안 멀어졌던 두 사람은 재회해 서로의 삶을 되짚으며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눈다. 마사는 자발적인 안락사를 택하겠다고 고백하며 잉그리드에게 ‘옆 방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한다.

영화는 단순히 존엄사를 둘러싼 논의를 넘어 인간이 마지막 순간에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뜻하게 묻는다. 잉그리드의 불안과 마사의 평온한 수용 사이에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온도가 교차하고, 그 간극은 오히려 우정을 더 깊게 드러낸다. 

“눈이 내린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라는 대사는 죽음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감정의 깊이를 인정받았다. 영화는 삶의 끝에서조차 진정으로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이 얼마나 큰 위안을 얻을 수 있는지를 잔잔하게 보여준다. 존엄은 제도나 논리보다 결국 마지막 순간 서로의 곁에 있어 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알모도바르는 차분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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