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심기 건드린 美 심야 토크쇼, 줄줄이 간판 내린다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2025. 9. 1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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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 암살’ 비꼰 키멀 쇼 중단
미국 코미디언이자 토크쇼 진행자인 지미 키멀. ABC 방송은 17일 찰리 커크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아 지미 키멀이 자사 토크쇼에서 무기한 하차한다고 발표했다. /AFP 연합뉴스

오랜 전통의 미국 심야 토크쇼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 속에 연이어 중단되고 있다. 성역 없는 정치 풍자와 권력 비판으로 인기를 누리고 영향력을 과시해 온 진행자들이 트럼프와의 갈등 속에 하나둘씩 무대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방송 인허가권을 무기로 심기를 거스르는 토크쇼 폐지 압박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17일 미국 ABC 방송은 자사 심야 토크쇼 ‘지미 키멀 라이브(Jimmy Kimmel Live)’의 무기한 편성 중단을 발표했다. 2003년 방송을 시작한 이 토크쇼는 올해로 23년째인 ABC 최장수 심야 토크쇼다. 이번 결정은 키멀이 지난 15일 방송에서 최근 피살된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 사건을 두고 “‘매가(MAGA·트럼프 지지자)’ 진영이 커크를 죽인 용의자가 자기들 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 필사적이다”라고 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매가 세력이 커크 피살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한다는 얘기다.

그래픽=정인성

앞서 브렌던 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보수 성향 팟캐스트에 나와 키멀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ABC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왜곡된 발언이 반복될 경우 방송사들에 벌금을 부과하거나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ABC의 방송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는 취지로 압박한 것이다. 그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압박을 더 볼 것”이라며 “싫으면 (방송사들이) 방송 면허를 반납하면 된다”고 했다. 트럼프는 ABC 결정 직후 트루스소셜에 “ABC가 마침내 해야 할 일을 할 용기를 보여줘서 축하한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NBC 방송의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에 출연해 진행자인 지미 팰런(오른쪽)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7월에는 CBS가 스티븐 콜베어가 진행하는 자사 토크쇼 ‘더 레이트 쇼’의 폐지(2026년 5월)를 공식 발표했다. 이 토크쇼는 CBS 심야 시간대 9년 연속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방송국 측은 표면상 재정난을 이유로 폐지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미 작가조합은 방송사가 트럼프 행정부의 눈치를 본 것이라며 규탄 성명을 냈다. 방송사의 모회사가 대규모 합병과 관련해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지속적으로 트럼프를 비꼬는 콜베어의 쇼에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당시 “콜베어가 잘려서 정말 좋다. 다음은 키멀이라고 들었다”고 했는데, 이날 ABC의 발표로 트럼프의 예고는 ‘실제 상황’이 됐다.

다음 타깃은 NBC의 지미 팰런, 세스 마이어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이날 “이제 남은 건 지미(팰런)와 세스, 가짜 뉴스 NBC의 완전한 ‘루저(패배자)’ 둘뿐이다. NBC도 하라!”며 이들을 공개 압박했다. NBC의 대표 심야 토크쇼 ‘더 투나이트 쇼’를 진행하는 지미 팰런은 최근 방송에서 “트럼프가 복잡한 일정 속에서도 골프장을 떠나지 않는 걸 보니 ‘역사상 가장 꾸준한 운동선수’ 아니냐. 맥박이 뛴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라고 꼬집었고, NBC에서 ‘레이트 나이트’ 토크쇼를 진행하는 세스 마이어스는 “트럼프가 시카고에 군대를 보내겠다고 위협했는데 자신이 깡패 두목인 줄 아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지난 7월 미국 뉴욕시 한 극장 앞에서 시민들이 "콜베어는 남아라! 트럼프는 물러가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당시 CBS는 콜베어가 진행하는 자사 토크쇼가 2026년 종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심야 토크쇼는 단순 예능을 넘어 미국 사회의 거대한 정치 담론장이자 시사 풍자 문화의 상징이었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이들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정치 정보를 간접 전달할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정치 관여도를 높이고 여론을 흔들어 실제 투표 행위로 이끄는 등 시민 참여의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다만 토크쇼 진행자들의 풍자·조롱 대상이 공화당 쪽에 치우치는 등 편향성을 보였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은 현직일 때 키멀과 콜베어의 쇼에 직접 출연도 했다. 반면 이들 토크쇼는 트럼프와는 집권 1기 때부터 ‘전쟁’ 수준의 대립을 해왔다. 또 지상파 토크쇼가 유튜브· 넷플릭스 등에 밀려 광고 수입, 콘텐츠 파급력 등에서 이미 하향 곡선을 그려왔기 때문에 이들의 퇴장을 트럼프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교롭게 지난 14일 최고 권위 방송상인 에미상의 토크 시리즈 부문 대상을 받은 콜베어는 소감에서 “이 쇼(더 레이트 쇼)가 끝난 이후에도 늦은 밤 토크쇼 전통이 계속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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