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엽서화’... “오직 단 한 사람을 위한 세레나데”

“엽서화는 이중섭이 사랑을 매개로 예술의 뿌리를 키워낸 작은 실습장이었습니다.”
18일 제주도 서귀포 KAL 호텔에서 열린 ‘2025 이중섭 세미나’에서 신수경 충남대 연구교수는 ‘이중섭이 전하는 사랑의 세레나데’라는 주제로 엽서화의 기법과 도상, 의미에 대해 발표했다. 1940년 12월 25일 청년 이중섭(1916~1956)은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1921~2022)에게 14×9cm 크기의 작은 관제엽서에 사랑을 담아 보냈다. 글은 없고 그림만 있는 연애 편지다.
이때부터 1943년 여름까지 3년 6개월 동안 보낸 엽서화가 88점. 엽서에 그렸기 때문에 ‘엽서화’라고 불리는 이 그림들은 오직 단 한 사람, 연인 마사코를 위해 그린 것이다. 그림에 담긴 내용은 둘만이 알 수 있는 상징과 기호로 가득하다. 신 교수는 “이중섭 하면 떠오르는 ‘소 그림’이나 ‘은지화’에 비해서 덜 알려졌지만, 엽서화야말로 화가 이중섭이 추구했던 예술의 지향점이 가장 솔직하게 반영된 장르”라고 했다.


엽서화를 그리던 시기 이중섭은 20대 초반의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다. 신 교수는 “호기심이 가장 풍부했던 시기”라며 “엽서라는 작은 지면에 재료와 기법을 끊임없이 바꿔가며 실험했다”고 했다. 선 하나를 긋더라도 펜과 연필, 크레파스, 먹지로 베껴 그리는 등 다양한 기법을 구사했고, 도상도 반인반수, 행운을 상징하는 토끼풀, 연꽃, 포도송이, 한 쌍으로 이뤄진 오리와 사슴, 남녀 도상 등 풍부했다. 반면 유화나 드로잉에는 자주 보이는 복숭아, 닭, 비둘기, 게 등의 도상이 엽서화에선 보이지 않는다. 신 교수는 “이러한 도상은 이중섭의 삶과 결부되어 월남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도상”이라고 해석했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소설가 김탁환은 ‘이중섭을 소설로 쓰며 생각한 두세 가지 것들’에 대해 발표했다. 지난해 이중섭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참 좋았더라’에 이어 올해 소설 ‘내 사람을 생각한다: 백석에게 띄우는 이중섭 편지’를 펴낸 그는 “이중섭의 아틀리에, 홀로 작업하는 이중섭이 궁금했다”며 그 답을 찾기 위해 이중섭의 숨은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들려줬다.
이날 행사엔 현봉윤 서귀포공립미술관장, 이케다 요오이치 주제주일본국총영사관 총영사, 양병식 서귀포문화원장, 고영우 기당미술관 명예관장, 김영순·이지호·김종학·정현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 유족 대표로 이중섭 화백의 조카손녀 이지연·지향씨, 이종조카 이태호씨 등 각계 인사와 제주도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검찰, ‘전분당 가격 담합 의혹’ 대상·삼양 등 4개 식품업체 압수수색
- 정성호 법무장관 “‘사법 3법’ 입법 취지 공감… 내란·외환 사면금지법 위헌 여지 없어"
- 밀양 삼랑진읍 야산서 불...소방당국, ‘국가소방동원령’ 발령
- 佛 우파청년, 좌파에 피살... 미국과 외교 갈등 번졌다
- 코인 투자로 돈 잃자 동업자에게 ‘농약 커피’ 먹인 30대
- “이직 생각 있느냐” 노골적 반도체 인재 사냥...韓 인력 유출 위기
- 매일 9500억씩 나랏빚 쌓인다...키프로스보다 가난해진 프랑스 [손진석의 머니워치]
- 각재기국, 갈치회, 비빔고기국수...제주도 내렸더니 펼쳐진 ‘맛의 방주’
- 내일 전국에 눈·비...메마른 영남엔 대설특보급 습설
- KBO, ‘도박장 출입’ 롯데 선수 4명 30~50경기 출전정지 중징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