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궁금해하는 마음
그래도 조용히 살아가는 부부
우연히 구한 아이의 반복된 말
끌린 듯이 바닷가 마을을 간다
폴 윤 ‘크로머’(‘벌집과 꿀’에 수록, 서제인 옮김, 엘리)

어렵게 그들은 타인들의 폭력과 혐오를 견디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어린 해리 앞에서 한 남자가 아버지에게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는” 거냐던 조롱은 잊지 못했지만. 꼭 그들의 아버지들처럼 “반쯤 죽은 듯이”. 이제 둘만 남아, 더 고립을 느낀 해리는 “모든 시간이 그들을 둘러싸고 고리 모양으로 굳어져 버린 것” 같다고 여기지만 무언가를 기다렸다. 무언가 “그 경계 밑을 파고들어 모습을 드러내 주기를”. 그러던 어느 가을밤, 후드를 뒤집어쓴 아이가 가게로 피신하듯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경찰을 부르고 기억을 잃은 듯한 아이를 일깨워 엄마에게 전화를 연결해 주고, 병원에 데려가고, 아이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고. 그날 밤 해리와 그레이스는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걸 다했다. 아이는 누구에게 폭력을 당했는지, 왜 집을 나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아이가 유일하게 계속 반복한 말은 오직 ‘크로머’였다. 자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 예전에 해리와 그레이스가 신혼여행을 갔던 바닷가 마을이었다. 아는 한국 사람이 그곳 호텔에서 일하고 있어 숙박비를 할인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해리는 종종 그 아이 생각을 했다. 기억을 찾았는지, 그 애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 아이 일이 “내면에 붙들려” 계속 궁금해졌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해가 바뀌었다. 겨울 비수기, 그레이스의 생일도 다가와 여행을 가기로 했다. 크로머. 거길 말한 사람은 그레이스였다. 아이들을 꺼리고, 폭력 앞에 쉽게 노출될까 봐 자신의 아이도 갖지 않기로 한 그녀가. 눈 내리는 해안 도시는 추웠고 호텔도 그랬다. 프런트 직원에게 고장 난 난방 이야기를 한 해리는 로비 밖, 해변 산책로 벤치에 후드 티셔츠를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곤 밖으로 나간다. 그 아이일까?
더플백에 든 위조 시계와 담배 등을 팔며 벤치를 집으로 여기는 ‘아이’는 빛을 내는 물건을 플라스틱 총에 넣고 머리 위로 쏘아 보여주었다. 해변에서 해리는 “하늘로 솟아오른 빛나는 별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자신이 찾고 있는 아이 이야기를 했다. 헤어질 때 벤치의 아이가 약속했다. “아저씨네 아이는 제가 찾아볼게요.” 아이가 멀어졌고 멀어진 자리에서 또 하나의 별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어쩌면 해리는 알았으리라. 폭력을 당한 아이, 길을 잃은 아이, 불완전한 환경에 놓인 그 아이에게 자신이 예전에 원했으나 갖지 못했고 만나지 못했던 어른이 돼 주고 싶어 했던 거라고. 방법도 올바른 길도 알지 못하지만, 그저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여기 먼 곳까지 찾아온 거라고.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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