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14개 감염병…교과서보다 생생한 묘사

박현주 책칼럼니스트 2025. 9. 1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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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 즉 인간의 생로병사를 기록하는 장르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감염병이다.

'미생물로 쓴 소설들'은 과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고관수 저자가 소설 속에서 의외의 주인공(세균 바이러스 기생충)을 추적한 책이다.

198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페인의 소설가 카밀로 호세 셀라의 대표작은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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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로 쓴 소설들- 고관수 지음 /계단 /2만2000원

- 문학 속 질병 증상·사회적 의미
- 과학자 눈으로 사실 추적·탐구
- 차별·연대 방식 바꾼 질병 서사
- 내일의 병 준비하는 통찰 건네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 즉 인간의 생로병사를 기록하는 장르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감염병이다. 나이가 들어 자연스레 죽는 일은 소설 속의 극적 장치가 되기에는 맥이 빠진다. 느닷없이 병으로 쓰러지거나, 심지어 그 병을 다스리기 역부족일 때, 혹은 온 마을이나 도시의 사람들이 죄다 감염되는 큰 일이 발생할 때, 독자는 긴장하면서 몰입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문학 속 감염병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 드라마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해 왔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는 그런 일이 늘 있었다. 문학이 그 일을 기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19세기 영국의 화가 토머스 로드 버스비가 광견병에 걸린 개가 돌아다니는 거리의 소동을 그린 ‘미친개’(1826년). 당시에는 사람이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리기만 해도 미쳐버렸고 치료법도 없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계단 제공


‘미생물로 쓴 소설들’은 과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고관수 저자가 소설 속에서 의외의 주인공(세균 바이러스 기생충)을 추적한 책이다. 카뮈가 ‘페스트’에서 전염병의 확산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듯이, 많은 작가가 의학 지식에 버금갈 만큼 정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저자는 이를 과학자의 시선으로 다시 읽으며, 소설과 과학이 어떻게 교차하고 보완하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페스트 결핵 콜레라 매독 성홍열 장티푸스 말라리아 인플루엔자 광견병 에이즈 코로나19 등 총 14가지 감염병을 다루었다. 소설에 나타난 증상과 서사, 사회적 의미가 실제 과학적 사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탐구한다.


어떤 소설에 어떤 병이 등장했는지 작가와 작품 제목만 짚어보자. 페스트-알베르 카뮈(페스트), 오르한 파묵(페스트의 밤). 결핵-샬럿 브론테(제인 에어), 빅토르 위고(레 미제라블). 한센병-장 지오노(영원한 기쁨), 이청준(당신들의 천국). 콜레라-박경리(토지). 장티푸스-코넌 도일(주홍색 연구) 등. ‘토지’에서 콜레라에 걸린 서희와 길상이를 비롯해 저자가 거론한 소설 속 등장인물이 병으로 고통받는 장면이 하나둘 떠오른다.

고관수는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미생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철학 문학 예술과 함께 과학이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자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자와 교양인이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과감히 알려고 하는 노력이 서로의 거리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에 대한 학생들과 일반인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최근 몇 권의 책을 썼고, 앞으로도 계속 써나갈 계획이다.

14가지 감염병 중 ‘광견병’ 편을 보자. 198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페인의 소설가 카밀로 호세 셀라의 대표작은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연쇄살인을 저지른 가난한 농부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사형당하기 직전 남긴 수기 형식의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어린 시절의 파스쿠알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아버지의 죽음이다. 아버지는 미친개에게 물렸고, 그 바람에 광견병에 걸렸다. 미쳐 날뛰는 아버지를 이틀이나 벽장에 가두었다가 잠잠해진 뒤에 열어보니, “피가 흥건하게 고인 두 눈을 부릅뜨고, 반쯤 벌어진 입 밖으로 검붉은 혀를 절반 정도 내민”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저자는 서양에서는 종종 광견병을 전승되는 이야기와 연결 짓는 경우가 있다고 일러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뱀파이어 전설이다. 그래서 ‘광견병’ 편에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도 거론된다.

소설이 묘사한 질병은 교과서보다 생생하고, 논문보다 인간적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감염병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별, 연대, 혐오, 사랑의 방식까지 바꾸어온 역사를 들려준다.

이 책이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것은 ‘감염병 X’이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미래의 질병이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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