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의 컬쳐 픽] ‘해태’가 건네는 미소,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힘

박진희 미술평론가·더마루아트 대표 2025. 9. 1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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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미술평론가·더마루아트 대표

최근 미국 하이미술관에서 열린 김종학 작가의 회고전은 한국적 전통미감과 대자연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분출하는 작품세계로 현지 관객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산불과 수해로 깊은 상처를 겪은 경남 산청에서 예술을 통해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김 작가의 초대전이 개최되었다.


그는 숲·꽃·덩굴·곤충·새와 같은 다양한 자연 요소가 공존하는 화풍을 주로 그려왔다. 그의 화면은 ‘나’와 ‘너’,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공생의 질서를 상기시킨다. ‘해태’ 조형작은 김 작가가 현대미술의 언어로 재해석한 상상의 동물이다. 해태는 정의와 진실을 지키는 전통적 수호 동물이라는 의미를 계승하면서도, 산청의 전시에서는 수호와 치유의 표상으로 변주된다. 특히 민화풍의 해태의 익살스러운 표정은 보는 이를 미소짓게 하며, 재난을 겪은 주민들에게는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와 버팀목을 건넨다.


더 나아가 김종학의 대형 화폭에서 터져 나오는 기운생동의 에너지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모든 존재를 아우르며 산청의 회복을 염원한다. 이번 산청 전시는 작가의 예술이 단순한 개인적 감상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회복과 연대를 이끄는 예술가의 강력한 위로의 메시지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비슷한 맥락에서 세계인의 큰 사랑을 받은 콘텐츠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를 떠올릴 수 있다. 케이팝 걸그룹이 무속적 힘을 빌려 악령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 전통문화가 더 이상 지역적 민속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대중문화의 핵심 매력으로 기능함을 증명한다.

여성 무당의 서사, 굿의 공동체적 의례, 화해의 정서가 대중 콘텐츠 속에서 재해석되었으며, 특히 신령스러운 동물인 호랑이는 해학적인 이미지로 현대적으로 변용되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요컨대 케데헌의 ‘호랑이’와 김종학의 ‘해태’는 모두 한국 민속에서 신령한 존재로, 익살과 수호의 상징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오늘날 AI 시대 속에서도 한국의 무속과 전통문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며, 세계적 가치를 더해가고 있다. 이 맥락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예술과 문화는 오늘날 공동체에 무엇을 건넬 수 있는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예술은 오랫동안 아름다움과 상징을 표현하는 매개로 여겨져 왔다. 때로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으며, 때로는 개인적 향유의 도구였다. 그러나 현대의 예술은 더 이상 단순한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의 예술은 공동체와 공공성을 위한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며, 공감과 참여를 촉진하는 장이 되고 있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창작과 해석의 주체로서 참여하며, 세상의 미래를 함께 고민한다.

다시 말해 오늘의 예술은 미적 향유를 넘어서 공동체를 잇고, 공공의 문제에 응답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실험하는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중 올해 부산현대미술관의 ‘열 개의 눈’ 전시는 ‘돌봄’을 핵심 주제로 삼아 접근성과 감각의 다양성을 탐구했다. 관객은 눈으로 보기보다 손끝으로 만지며 작품을 경험했고, 시각장애·청각장애 예술가의 감각을 따라가며 새로운 인식을 체험했다. 장애와 비장애 예술가가 함께 참여하는 동등한 장을 마련했다. 이 전시는 미술관이 단순히 감상의 공간을 넘어 사회적 공론장이자 공동체 회복의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IBK기업은행은 밀알복지재단과 함께 발달장애 작가 육성 프로젝트 ‘IBK드림윙즈’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은 발달장애 예술인의 창작을 동등한 예술 활동으로 인정하는 데 있다. 실제로 참여 작가들은 여러 성과를 거두었으며, 전업 예술가로 성장하기도 했다. 관람객에게도 변화가 생겨났다. 장애 예술은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적 언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과 재단의 꾸준한 지원은 예술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언어가 되고, 공동체가 그 가치를 공유하는 장을 열어가고 있다.

재난과 위기, 그리고 차별 앞에서 예술은 단순한 위로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장은 태도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작품 앞에서 감각을 회복한 사람들은 환경 문제에 더 민감해지고, 서로 돕는 일에 더 쉽게 손을 내민다. 공감은 참여를 낳고, 참여는 회복을 이끈다. 예술은 개인적 감상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의식을 재구성한다. 그것은 약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돌봄의 문화를 확장하며, 전통과 현대를 잇고, 나아가 국가적 매력을 형성하는 역할로까지 이어진다.


김 작가의 해태 앞에서, 장애 예술가의 그림 앞에서, 돌봄의 손길을 맞잡는 예술가와의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묻고 동시에 대답한다. 예술은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가? 그렇다. 그리고 그 힘은 환경을 돌보고 서로를 돕는 공생의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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