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의 총성, 뤼순의 묵념… 광복 80주년 '안중근을 다시 만나다'

인천경기기자협회 공동취재단 2025. 9. 1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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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기자협회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중국 하얼빈·대련 등을 방문해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각 회원사 등에서 모두 16명이 참가해 안중근 의사의 의거, 순국 지역 등을 중심으로 탐방했다.
 
중국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 내부 모습. 사진=인천경기기자협회 공동취재단

◇하얼빈에서 만난 '청년 안중근의 기개'
하얼빈역 옆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다. 이 장소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곳으로 이를 기념해 조성한 공간이다. 기념관 내부에는 역사적 현장이 한글, 중국어로 매우 자세히 묘사돼있었다. '러시아 군대의 대열 뒤에 숨어 있던 안중근은 이토 일행이 다가오자 침착하게 앞으로 빠져나가 이토를 향해 세 발, 수행인원을 향해 네 발을 발사했다. 시간은 약 9시 30분경이었다. 당시 할빈역은 러시아 관할구역이었다. 장거를 마친 안중근은 "코레아우라!"를 세번 외치고 나서 러시아 병사에게 체포됐다. 이토는 치명상을 입고 20분 뒤 절명했다.'

당시 안 의사의 의거, 그리고 이후의 재판 과정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서도 큰 화제였다. 기념관에는 의거 당시에 사용했던 권총과 총알 사진, 의거 당시 보도됐던 신문 기사 사진, 재판 기록 등이 상세히 나열돼있다.

안 의사의 기개에 존경을 표한 중국 주요 인사들의 메시지들도 다수 적혀 있었다. 중국 5·4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이자 중국 공산당의 창시자인 진득수는 "나는 청년들이 톨스토이와 타고르가 되기보다 콜럼버스와 안중근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안 의사를 중국 청년들의 본보기로 여겼던 것이다. 중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정치 활동가였던 양계초도 '추풍단등곡'을 지어 안 의사를 찬양하기도 했다. 안 의사의 삶 전반과 가족, 그가 생전에 남긴 유묵 등은 물론 사상가이기도 했던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 등에 대해서도 설명돼 있다.
 
중국 하얼빈 731부대 유적지 박물관 내부 모습. 사진=인천경기기자협회 공동취재단

◇일본 생체 실험으로 피해자 다수 발생한 '731부대'
하얼빈엔 일제가 조선인, 중국인, 소련군 포로 등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자행했던 731부대 유적지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비인도적 잔학행위'라는 문구가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 러시아어로 명시돼 있다.

731부대는 일본 최초의 세균전 특수 부대였다. 가장 규모가 컸고 관련 전문 인력이 집중돼있었다. 전시관은 731부대가 어떤 부대였는지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당시 부대원들의 면면은 물론 이들이 저지른 각종 만행을 세부적으로 분류해 전시했다. 어떤 도구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어떤 세균을 투입해 실험을 자행했는지 등을 빠짐없이 볼 수 있다. 생체 실험 피해자들 다수에 중국인 포로와 민간인들이 포함돼있었기에 731부대의 만행은 이곳에서도 잊혀져선 안될, 뼈아픈 역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때문에 전시관 내부에선 웃거나 소란을 피우는 행위 등이 금지된다. 한편 전시관 옆엔 731 부대 본부 건물이 복원돼 개방돼있었다.
 
지난 10일 중국 대련 여순관동지방법원에서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 황성규 인천경기기자협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이 안중근 의사를 기리기 위해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인천경기기자협회 공동취재단

◇뤼순 감옥·여순관동지방법원에 남은 독립투사들의 발자취
안 의사는 하얼빈 의거 이후 일제 측에 넘겨져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에 구금됐다. 이후 1909년 11월 3일 뤼순 감옥으로 이감돼 1910년 3월 26일 이곳에서 순국했다. 감옥에는 안 의사가 수감됐던 독방, 그리고 사형이 집행됐던 공간이 보전돼있다. 독방엔 '조선 애국지사 안중근 감방'이라는 알림판이 붙어 있다. 안 의사가 썼을 책상과 의자, 침상 등이 구현돼있는 한편,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저술하고 다수의 유묵을 남긴 144일간의 옥중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었다. 사형이 집행됐던 곳에도, 사형 집행 직전 안 의사 사진과 더불어 '안중근이 순국한 곳'이라는 짤막한 알림이 있다.

뤼순 감옥은 안 의사를 비롯해 신채호, 이회영, 유상근, 최흥식 등 다수의 독립투사들이 수감, 옥중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감옥 측은 안 의사의 사형이 집행됐던 곳 옆 쪽을 '뤼순의 국제지사들'이라는 공간으로 조성해, 안 의사를 포함한 이들 애국지사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특히 중국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의 "청·일 전쟁 후 중·한 양국 국민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은 20세기 초 안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부터 시작됐다"는 담화 일부를 인용하거나 유묵 22개를 함께 전시하는 등 안 의사를 조명하는데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었다.

뤼순 감옥 인근에 있는 여순관동지방법원은 안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곳이다. 당시 안 의사는 법원 1층 지방법원 민사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방청객이 너무 많이 몰려 부득이 2층 고등법원 형사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안 의사가 올랐을 계단을 따라 2층 법정으로 향했다. 별도의 안내를 거쳐 하얼빈 의거를 비롯한 안 의사의 삶 전반을 조명하는 영상을 시청할 수 있었다. 법정 바로 옆엔 안 의사를 추모할 수 있는 별도 공간도 마련돼있다. 황성규 인천경기기자협회장은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추모 메시지를 남긴 후 협회 임원진들과 묵념하며 안 의사를 기렸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신채호 선생 역시 1930년 뤼순 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신채호 선생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국적은 다르지만, 중국 측이 안 의사의 활동과 그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있지만, 협회가 찾은 각 장소들은 공통적으로 '일본은 진정어린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아시아 각국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역사를 기억하자'고 언급하고 있다.

황성규 인천경기기자협회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과거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구국정신과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오늘날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갖고자 했다"며 "이번 연수에 참가한 회원들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교훈을 얻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천경기기자협회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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