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짝 만들던 닌텐도를 게임회사로

한겨레 2025. 9. 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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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살 대학생이던 야마우치 히로시, 할아버지가 몸이 아파 갑자기 1949년에 닌텐도 회사를 떠맡았다.

게임 기획자 미야모토 시게루가 입사한 것이 1977년의 일이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수천대의 게임기를 '동키콩' 게임기로 개조했고, 전설적인 히트작이 됐다.

닌텐도를 세계적인 게임 회사로 변신시킨 야마우치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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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야마우치 히로시 (1927~2013)

스물한살 대학생이던 야마우치 히로시, 할아버지가 몸이 아파 갑자기 1949년에 닌텐도 회사를 떠맡았다. 할아버지의 측근 경영진을 곧바로 회사에서 내보내고 자기 사람을 심었다. 회사를 장악했지만 책임도 오롯이 자기 몫이 됐다.

1889년에 문을 연 닌텐도는 오랫동안 화투를 만들던 회사였다. 1945년 미군정이 들어서며 트럼프 카드도 만들었다. 새로 사장이 된 야마우치 히로시는 플라스틱 카드도, 디즈니 캐릭터 카드도 만들어봤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회사를 키울 수 없었다.

1960년대에 야마우치 히로시는 새로운 사업을 벌였다. 요즘 말로 전략적 전환, ‘피벗’을 했다. ‘핵가족 시대’를 내다보고 즉석밥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대형 식품기업에 밀려 철수했다. 러브호텔 사업도 손을 대고 택시 회사도 해보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사이 닌텐도는 위기를 맞았다. 주가는 900엔에서 60엔으로 떨어졌다.

1966년에 완구 사업에 손을 댔다. 공장 직원의 아이디어에 따라 ‘울트라 핸드’라는 간단한 기계식 장난감을 만들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히트를 쳤다. 1973년에 레이저 실내 사격장을 만들었는데, 오일 쇼크 때문에 사업은 실패했지만 이때부터 전자 게임 산업에 발을 걸쳤다.

1970년대 후반부터 비디오 게임에 손을 댔다. 게임 기획자 미야모토 시게루가 입사한 것이 1977년의 일이다.

1980년에 닌텐도는 아케이드 슈팅 게임기 수천대를 미국에 보냈지만 팔리지 않았다. 재고가 쌓이고 자금이 묶였다. 이때 신인이던 미야모토 시게루가 참신한 게임을 기획했다. 유명한 ‘동키콩’이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수천대의 게임기를 ‘동키콩’ 게임기로 개조했고, 전설적인 히트작이 됐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그 뒤로도 ‘슈퍼 마리오’ 같은 유명한 게임을 만들었다.

닌텐도를 세계적인 게임 회사로 변신시킨 야마우치 히로시. 2002년에 경영 일선에서 은퇴했다. 2013년 9월19일에 세상을 떠났다. ‘게임을 즐기지 않았지만 게임의 역사를 만든 사람’이라고 불린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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