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무너뜨린 네팔 Z세대의 분노…혁명은 이뤄질까? [특파원 리포트]

정윤섭 2025. 9. 18. 16: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지 시각 16일, 네팔 카트만두. 경찰의 총격에 숨진 아들 라식 카티와다의 관을 붙들고 엄마가 오열하고 있다.(사진출처 : 로이터)


■ 거리에서 쓰러져 간 네팔 청년들…"명백한 살인 행위"

아들의 관을 붙들고 오열하는 엄마. 올해 23살의 라식 카티와다는 거리의 시위에 나섰다가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습니다. 현지 시각 지난 16일, 네팔 카트만두에서는 이번 시위에서 숨진 이들의 합동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곳곳에서 가족들이 오열했고, 생때같던 자식들은 한 줌의 재가 됐습니다.

올해 19살의 아유시 타파는 운동을 좋아하고, 항상 밝았던 청년이었습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기 위해 카트만두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던 아유시는 지난 8일 거리로 나섰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숨졌습니다.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70대 할머니는 애지중지 키우던 아유시의 사망 사실을 아직도 모릅니다. 여전히 그가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카트만두 포스트)

올해 26살이 이쇼트 아디카리는 육군 소령 출신 아버지의 제안으로 시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쇼트 스스로 "우리 Z세대의 운동"이라며 시위에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영국 유학을 위해 여권 갱신을 기다리던 이쇼트도 결국 거리에서 경찰이 쏜 총에 숨졌습니다.(카트만두 포스트)

사망 72명 부상 2천백여 명.

네팔 정부는 희생자들을 '순교자'로 지칭하고,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네팔 매체들은 이번 시위 과정에서 숨진 청년들의 사연을 잇따라 지면에 싣고 있습니다. 네팔 사회가 나라의 미래였던 이들의 죽음을 기리고, 기억하는 방식일 겁니다.

그러면서 경찰의 강경 진압을 잇따라 비판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지난 8일, 19명이 한꺼번에 숨지게 된 상황을 복기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네팔 육군 장교 출신으로 분쟁 전문가인 프라나야 슘셔 J.B. 박사는 네팔 영문 매체 <더라이징 네팔>과의 인터뷰에서 "비무장 시민들의 생명을 몇 분 만에 앗아간 명백한 살인 행위"라고 맹비난했습니다. "군인도 비상 상황에서는 무릎 아래 사격이 기본인데, 당시 네팔 경찰에게 시민들의 생명이 하찮게 보인 것"이라며 당시 일선 경찰과 장관, 총리에게까지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네팔 정부는 이번 시위 과정에서 숨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 18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정했습니다. 모든 관공서와 해외 공관에선 네팔 국기를 반기로 게양했습니다.

불타는 네팔 국회의사당. 네팔 청년들의 대규모 시위로 주요 공공건물이 불에 탔고,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희생자가 속출했다.


■ 정권 무너뜨린 네팔 청년의 분노…도망가기 바쁜 권력자들

네팔 청년들이 거리에 나서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네팔 정부의 SNS 차단 조치였습니다. '허위 정보 확산'을 방지한다며 지난 5일 26개의 '등록되지 않은' SNS를 전격적으로 차단했습니다. 네팔 청년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던 유튜브, 페이스북, 엑스(구 트위터) 등도 포함됐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허위 정보', 네팔 청년들은 권력층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때마침 직전까지 이른바 '네포 키즈(Nepokids)' 운동이 SNS로 확산하던 중이었습니다.

'네포 키즈'는 부모의 배경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자녀들을 지칭하는데, 네팔에선 권력층 자녀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고발하는 방식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들의 사진과 가난에 고통받는 서민들의 사진을 대비한 콘텐츠를 퍼뜨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완곡하게나마 부패한 권력층을 비판해 오던 네팔 청년들, 아예 이걸 막아버리자 분노가 폭발한 겁니다.

분노한 시위대가 현직 장관들을 찾아내 폭행하는 영상이 SNS로 확산했다. 사임한 총리는 두바이로 피신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정부 청사와 의회 건물, 전현직 장관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집이 불탔습니다. 청년들은 곳곳에 숨어있던 장관들을 찾아내 거리로 끌고 와 폭행했습니다. 정권은 무력했습니다. 시위가 벌어진 8일 당일, SNS 차단 조치를 해제하겠다는 발표뿐, 청년들이 분노한 근본 원인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습니다. 시위가 더 커진 이유 중 하나입니다.

장관들이 잇따라 사임하고 총리도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지려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샤르마 올리 전 총리는 결국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도주한 거로 전해졌습니다.

네팔 인구 3천 명 가운데 20% 이상이 빈곤층. 22%가 넘는 15~24세 실업률.
전체 660만 가구 가운데 23%의 가족 중 한 명은 해외에서 이주 노동자로 일하는 가난한 나라.
그런데도 고가 명품을 구입하고 해외 호화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SNS에 올려 자랑하는 부패 권력층의 자녀들.

네팔 청년들의 분노는 결국 정권을 붕괴시켰습니다.

지난 13일, 수실라 카르키 신임 총리가 카트만두의 병원을 찾아 부상당한 시위대를 만나고 있다.(사진출처 : 카트만두 포스트)


■ 새 총리에 'Z세대 인기' 전직 여성 대법원장…정부 구성에도 참여

시위대에 쫓겨 달아난 총리. 그 자리에 올해 73살의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이 임명됐습니다. 람 찬드라 포우델 네팔 대통령은 카르키 전 대법원장을 임시 총리로 임명하고, 하원을 해산하는 한편 내년 3월 5일에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네팔의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상징적 존재로, 의례적인 권한만 행사. 실제 국정 수반은 총리.)

네팔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된 카르키 임시 총리는 2016년 7월 역시 첫 여성 대법원장으로 부임해 특히 권력층과 부패 사건에 대한 소신 있는 판결을 해온 인물입니다. 시민 단체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판결, 네팔 정부의 경찰청장 임명 과정이 불공정했다며 취임을 취소한 판결 등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받아왔습니다.

카르키 임시 총리의 임명 과정엔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하미 네팔(우리는 네팔이다)'이 참여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 카르키 전 대법원장을 추천했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인 겁니다. 카르키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부패 근절'과 '경제적 평등'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시위에 나선 네팔 Z세대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겁니다.

장관직도 속속 새 인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지난 16일엔 재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에너지부 장관이 발표됐는데 역시 모두 'Z세대'가 선호하는, 청렴한 인물들이라고 현지 매체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네팔 포카라에서 건물 잔해를 치우는 시민들. 시위가 벌어졌던 네팔 주요 지역에서 복구 작업이 본격 시작됐다. (사진출처:카트만두 포스트)


■ "우리 모두가 Z세대"…앞으로 6개월이 관건

시위가 벌어진 수도 카트만두 등 주요 도시들은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통행금지도 해제됐고, 대중교통 운행이 재개됐으며, 시장과 상점 등이 다시 문을 열고 있습니다. 불에 타고 파괴된 건물에 대한 복구 작업도 시작됐습니다. 시민들은 이번엔 달라질 수 있을 거란 희망에 지금의 불편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Z세대 (We all are Gen Z)"
현지 시각 18일 네팔 매체 <카트만두 포스트>에 실린 칼럼의 제목입니다. 글쓴이는 시위 직전까지도 '네포 키즈' 운동을 알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스스로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젊은 층이 SNS로 보다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무지한 세대로 치부됐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네팔의 변화를 가져온 그들의 용기와 희생이 바래지 않으려면 그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Z세대'의 특성만으로 이번 상황을 재단하지 말고, 국민 모두가 스스로 'Z세대'라는 생각으로 그들의 요구와 의견을 앞으로 변화의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네팔 매체들은 특히 총선이 치러질 내년 3월 5일까지, 앞으로 6개월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시 '기득권'을 노리고 곳곳에서 등장할 기회주의자들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Z세대가 그들을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008년 왕정이 붕괴되고 연방민주공화국이 출범했을 때, 삶의 질이 나아질 거란 기대가 가득했지만 역시 그들만의 나눠 먹기, 부패가 만연하며 네팔 사회가 한 걸음도 나아가질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임시 정부는 당파를 초월한 Z세대의 열망을 실현해야 하기 위해선 '꼭두각시의 등장'을 차단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카카오 '마이뷰',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정윤섭 기자 (bird2777@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