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기암절벽과 수림의 조화…구미 해운사와 약사암 [정용식의 사찰 기행]

민상식 2025. 9. 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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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경북 구미시 해운사, 약사암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경북 구미시 해운사 전경

경북 구미와 금오산은 필자가 그동안 방문할 기회가 없었음에도 생소하지 않다. 구미는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출생지이고, 금오(金烏)는 인연이 있는 금호(錦湖)와 어감이 비슷해 자주 회자됐기 때문이다.

6개월여 전 신라불교가 처음 도래한 곳이라는 ‘도리사(桃李寺)’를 방문하면서 구미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이후 수시로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경북 구미 동락파크골프장 모습

요즘 건강과 레저 활동으로 선풍적 열기인 ‘파크골프’의 공인 1호 구장이 낙동강 고수부지에 있는 ‘구미 동락파크골프장’이고, 그곳에서 전국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미 동락파크골프장에서 바라본 금오산 얼굴 모양

강변의 동락구장에서 바라보는 금오산 정상이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이어서 묘한 관심이 쏠렸다.

구미시 중앙에는 남북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강의 서쪽에 구미를 대표하는 금오산(976m)이 우뚝 솟아있다. 산세가 가파르고 기암절벽과 수림이 잘 어울리는 명산으로 꼽혀 1970년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오산 정상 암벽에는 ‘약사암’도 있다.

입구 주차장에서 4㎞ 거리, 계속되는 급경사 오르막길을 2시간 이상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가는 길목에 있는 해운사와 도선굴, 그리고 정상 못미처 마애여래입상도 있어 필히 들러 보고 싶은 곳이었다.

초입에서 해운사까지 1.9㎞는 케이블카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해운사부턴 1시간 30분 이상은 할딱고개를 비롯한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 힘든 코스라고 한다.

구미는 박정희 대통령의 흔적과 향수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는데, 금오산 일대도 마찬가지이다. 초입 금오산 숲속에 있는 1976년에 건립된 금오산 호텔 555호실 앞에는 ‘경상북도 산업 유산’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숙박했다는 곳이라고 한다.

구미 금오산 ‘자연보호운동 발상지’ 표지석

그곳에서 50여m 지나 등산로 입구에는 이곳이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라는 크나큰 표지석이 놓여 있다.

금오산 관광 안내소에서 케이블카를 타든지, 40여분 정도 등산을 해서 올라가면 해운사(海雲寺) 인근에 27m 높이의 대혜폭포가 있다.

대혜폭포 앞 ‘자연보호운동 여기서 시작되다’ 표지석

폭포 앞에는 ‘자연보호운동 여기서 시작되다’라는 표지석이 있는데 그곳에는 ‘1977년 9월5일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에 왔을 때 깨어진 병 조각과 휴지가 널려있는 것을 보고 바위틈에 박힌 유리 조각을 일일이 주웠고 이것이 자연보호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금오산 호텔 아래에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 교체기에 두 왕조를 섬기지 않기 위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은둔하며 평생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한 야은(冶隱) 길재(1353~1419년)를 추모하는 흔적들이 있다.

금오산에 은둔해 금오산인(金烏山人)으로 불린 길재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조선 영조 때 지은 정자 ‘채미정(採薇亭)’이 자리 잡고 있고, 건너편에는 야은 역사 체험관도 건립돼 있다. 길재 선생의 대표적인 시조인 ‘회고가(懷古歌)’ 시조비 앞에서 자연스레 발길이 멈춰진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구름도 쉬어가는 해운사와 도선굴
금오산 도립공원 안내도

영남의 명산으로 태양의 정기를 받은 산이라는 금오산에는 곳곳에 전설과 일화가 얽힌 유적과 절이 있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중턱에 있는 구름도 쉬어간다는 고찰 해운사(海雲寺)도 그런 곳이어서 일정상 부득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금오산 케이블카

주차장 앞 탐방안내소를 지나서 울창한 소나무 숲길과 편평한 돌길을 따라 청량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5분여 걷다 보니 케이블카 타는 곳과 데크 계단이 한동안 이어지는 산행길로 나눠진다.

금오산 케이블카

오전 9시부터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케이블카 이용료는 왕복 1만1000원이다. 30~40여분 등산길을 10여분에 올라가는 비용으론 비싸다 싶은지 이용객은 많지 않지만, 도착지 바로 앞이 해운사 사천왕문이다.

구미 해운사 사천왕문

해운사는 대혈사(大穴寺)라는 이름으로 신라 말 도선국사(827∼898년)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해운사 전경

그러나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돼 오랫동안 폐사됐다가 1925년 금오산성 안의 도선굴과 대혈사지 사이에 복원했는데 이때 절 이름을 해운암이라고 했다.

해운사 대웅전

이보다 아래쪽에 대혈사(지)가 있는데, 길재(吉再) 선생이 이곳에 은거해 손수 대나무를 심었고 도학을 익혔다는 기록이 있다.

해운사 대웅전

1956년 대웅전을 신축하면서 ‘해운사’로 바꿨다.

해운사 지장보궁
해운사 지장보궁 법당

사찰 내에는 산을 뒷배로 대웅전과 삼성각, 약사여래불이 있고 마당을 중심으로 지장보궁과 범종각, 감로당(종무소)이 자리하는 아담하고 정갈한 사찰이다.

해운사 범종각

인접한 곳에 대혜폭포가 있다.

해운사 약사여래불상, 석탑

대웅전 뒤편으로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에 천연 동굴인 도선굴(道詵窟)이 있어 운동 삼아 지역민들이 많이 찾는다.

도선굴 표지판

구미시를 향해 큰 입을 벌리고 있는 ‘도선굴’은 신라 말 풍수의 대가 도선국사가 득도했다는 자연 석굴이다.

도선굴 안내판

가는 길이 천 길 낭떠러지 암벽이어서 옆으로 좁은 돌계단과 쇠사슬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도선굴 입구의 정용식 ㈜헤럴드 상무

구례 사성암에 있는 좁다란 ‘도선굴’과는 달리 임진왜란 때 백성 500~600명이 피난해 화를 면했다고 할 정도로 굴 내부 길이 7.2m, 높이 4.5m, 너비 4.8m 정도로 제법 넓고 큰 굴이다.

도선굴에서 바라본 구미 시내

동굴에서 해운사와 구미 시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산바람에 가슴이 뻥 뚫리고 모든 시름을 내려놓게 된다.

대혜폭포

도선굴에서 내려와 해발 400m에 있는 인근의 대혜폭포(大惠瀑布)를 찾았다. 수직 27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대혜폭포의 장쾌한 물소리와 시원함을 기대했건만 가뭄의 여파인지 물줄기가 약해 아쉬웠다.

금오산 정상에서 발원해 폭포를 지나 긴 계곡을 따라 흘러 금오지의 유일한 수자원이 되고 있고 유명세도 있어 박정희 대통령도 찾았던 곳이다.

폭포 아래에는 선녀들이 물보라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맑은 물에 반해 목욕을 즐겼다는 욕담(浴潭)도 있다. 시간에 쫓겨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도리사 회주 법등대종사님을 뵙고, 잠시 짬 내서 금오산에 다녀왔다고 하니 나중엔 ‘약사암’도 꼭 가보라고 권하신다.

태양의 정기를 받은 와불(臥佛) 형상 금오산
금오산 케이블카

서울 일정으로 12시경에는 귀경 고속철도(KTX)를 타야 해서 금오산 정상과 약사암을 가려면 새벽길을 나서야 했다. 왕복 5~6시간은 걸린다고 블로그 등에 나와 있지만 동행자 말로는 4시간이면 족하다고 한다.

사진과 영상도 찍고, 약사암 방문 시간까지 고려해 새벽 5시30분경 숙소를 나섰다.

어둠이 걷히질 않았지만 산행객들이 종종 보이는데 오늘 산행은 탐방 안내소에서 시작해 금오산성·해운사·대혜폭포·할딱고개·약사암·정상에 이르는 왕복 8㎞ 구간이었다. 전날 만났던 한 구미 시의원이 “오르는 길이 너무 가팔라 금오산을 오르면 대한민국 어느 산도 갈 수 있다”며 힘들 것이라 했던 이야기도 잠시 머릿속을 맴돈다.

금오산의 원래 대본산이었으며, 중국의 오악 가운데 하나인 숭산에 비겨 손색이 없다고 해 고려 때는 남숭산(南嵩山)으로 불렸다. 금오산(金烏山)이란 이름은 418년 구미 도리사와 김천 직지사를 창건해 신라에 불교를 최초로 전한 ‘아도화상’이 이곳을 지나다 저녁노을 속으로 태양 속에 산다는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태양의 정기를 받은 산이어서일까. 산의 동쪽에서 바라보면 부처가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것 같이 보여 ‘와불산(臥佛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금오산’은 평지 돌출형으로 해발 976m이지만 산세가 가파르고 기암절벽과 수림이 잘 어우러져 영남 팔경으로 꼽혀 시인 묵객들도 많은 암각들을 남겼다.

금오동학 안내판

케이블카 승차장을 지나 데크길 등산로를 얼마간 지나자 금오동학 표지가 보인다. 암벽에 조선시대 명필가 ‘황기로’가 금오산의 깊고 그윽한 절경을 표현해 ‘금오동학(金烏洞壑)’이란 글씨를 글자당 1m 큰 크기로 바위에 새겼다는 내용이다.

암벽에 새겨진 금오동학 글씨

주변을 찾아보지만 이름 새긴 암각만 보이고 어두워서인지 찾을 수 없다.

금오산성

케이블카를 타고 갈 때 발아래 한옥 지붕만 보이는 것은 금오산성(金烏山城) 성곽이다. 금오산성은 내성과 외성 등 이중으로 축조돼 산 정상 부위에도 석성(石城)이 있다.

금오산 등산로의 돌탑

등산로 길가 여기저기의 정교하고 단단하게 쌓은 돌탑들을 보며 올라가다 보니 지하 168m 암반층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음수대 영흥정(靈興井)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영흥정 바로 위가 케이블카 종착지이며 해운사가 있고 도선굴이 있다. 주차장에서 40여분 거리의 대혜폭포 앞에는 벌써 많은 사람이 새벽 산행을 온 듯 부산하다.

영흥정 안내판

여기서부터 금오산 등반코스 중 가장 숨이 찬 지점이라는 긴 데크길로 이어지는 ‘할딱고개’다. 할딱고개 중간 지점에서 잠시 머물며 건너편 암벽을 보니 ‘도선굴’이 선명해 새롭다.

금오산 ‘할딱고개’ 데크길

할딱고개 끝 지점에 있는 바위 봉우리는 금오산 전망대 역할을 하는 듯, 구미시가지와 낙동강 물길이 한눈에 들어오고 안개가 덮인 금오산 정상과 주변의 기암절벽이 환상적이다.

금오산 도선굴

힘든 할딱고개를 지났지만 웬걸, 계속되는 오르막 돌길이다. 오랜만의 산행이다 보니 힘도 들고 땀은 비 오듯이 쏟아져 손수건이 흥건히 젖었지만 가을을 앞둔 이른 아침 산 공기에 몸의 독소가 빠지는 듯한 개운함과 신선함에 기분은 너무나 상쾌했다.

정상을 900m 앞두고 마애불 가는 갈림길이다. 약사암 가는 길목에 있는 줄 알고 오가는 길에 들리면 되겠다고 생각했건만 갈림길에서 600m, 오형돌탑도 500m 거리에 있다.

산길에선 짧은 거리가 아니고 오르막길이라는데 내려오는 길에 들릴 수 있을는지 고민이 됐다. 드디어 암벽 사이로 약사암 일주문이 보이고 금오산 정상 현월봉(懸月峯)도 바로 위다.

금오산 정상 아래 10m 지역의 옛 현월봉 표지석

정상 표지석이 2개가 있다. 미군이 정상부 일대에 통신기지와 초소 등으로 사용하면서 등반이 가능한 정상 아래 10m 지역에 표지석을 세웠다.

금오산 정상 현월봉 표지석

그러나 2014년부터 일반인들이 정상을 밟을 수 있게 돼 진짜 정상에 표지석을 다시 세웠다고 한다.

금오산 후망대

꽤 넓은 평지가 조성된 정상에도 조선시대 서예가 황기로 선생이 ‘후망대(候望臺)’라 새긴 바위가 있다. 옛 선조들이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포부를 마음속에 새겼던 장소라고 한다.

정상에서 낙동강 줄기와 구미시, 김천시 등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내려다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운무 때문에 아래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 아래 약사암 종각과 출렁다리조차 보이지 않아 탁 트인 후망대에 대한 기대를 뒤로 한 채 하산 길을 재촉했다.

금오산 정상 절벽 아래 약사암
구미 약사암 표지판

금오산 정상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돌길과 계단 길이 끝날 지점 반가운 식수대가 나타난다. 산 정상 부위에 식수대라니.

식수대를 지나 10여m 가니 정면에 암벽 사이로 약사암 들어가는 길이 있고 우측으로는 정상가는 길이다.

약사암 일주문.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 현판이 걸려 있다.

거대한 바위 틈새에 있는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이라 붙은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깎아지른 절벽 아래 천 길 낭떠러지에 얹혀있는 약사암이다.

운무에 둘러싸인 약사암

이런 곳에 어떻게 사찰을 지었을까 싶다.

운무에 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발아래 굽어 보이는 구미 시내, 멀리 대구시까지 보이는 멋진 풍광은 차치하고 금오산 정상조차도 구름 속에 갇혀 버렸다.

약사암 출렁다리

바로 앞 출렁다리를 건너 암벽 위에 세워진 사진 속의 멋진 종각도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비록 그림 같은 풍광들은 볼 수 없지만 힘겹게 올라온 만큼 종각 출렁다리 앞 널따란 바위 위에 앉아 운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바로 옆 종무소 앞에서 짖는 것을 잊어버린 듯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누렁이 강아지와 괜히 눈을 마주쳐 본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약사암은 거대한 바위 봉우리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약사암 의상대사 동상

암벽 아래 작은 마당 한편에는 청년 의상대사의 동상이 있고, 기암절벽 밑에 남향으로 건립된 약사전이 외로이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약사암 약사전

약사전에는 신라 말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석조여래좌상이 있는데 김천 수도산(1317m) 수도암의 석불좌상, 김천 황악산(1111m) 직지사 약사불과 함께 3형제 불상이라 불린다.

세 불상 중 한 석불이 하품을 하면 다른 두 석불은 재채기한다는 전설도 있다.

구미 약사암 석조여래좌상

조용한 약사전에 잠시 머물며 약사불 앞에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약사전에서 내려와 종각이 곧바로 보이는 암벽 바위에 걸터앉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구미 시내가 살짝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또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구미 시내 전경

오랜 기간 이곳을 지키고 계신다는 주지 스님을 찾아뵐까 하다 그냥 돌아선다. 미련은 남겨둬야 또 다른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하산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간 힘든 산행이고 기차 시간도 있어 마음이 급했다.

여기까지 왔음에도 고려시대 때 제작된 보물 마애여래입상과 어린 손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리워하며 할아버지가 쌓았다는 오형돌탑을 보지 못하고 하산 길을 재촉해야 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싶다.

인간사나 등산이나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주의하고 조심하라고 했건만 하산 길에도 그 무엇인가를 더 얻고자 하는 욕심이 주렁주렁 걸린다. 여기까지 왔는데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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