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셰프' '흑백 요리사'....다시 갈등의 도마에 오른 한중 방송가 [IZE 진단]

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2025. 9. 1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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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갈등 여파로 혐오감 깊어져...단절된 문화교류 재개 가능할까

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폭군의 셰프' 조재윤, 사진제공=tvN

최근 배우 조재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논란에 휘말렸다. 바로 출연 중인 드라마의 중국어 대사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tvN 토일드라마 '폭군의 셰프'에 출연 중이다. 드라마는 인기 웹소설 원작으로 프랑스 요리의 대가가 된 젊은 여성 셰프가 500년 전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주인공인 연지영(임윤아)은 찬찬히 왕 이헌(이채민)을 비롯한 주인공들의 마음을 빼어난 음식솜씨로 잡아나가다 결국 조선의 명운을 건 명나라와의 요리경합에 참여한다. 이때 명나라의 사신으로 온 우곤(김형묵)에게는 세 명의 대가 요리사들이 붙었는데, 조재윤은 그중 선참 격인 대령숙소 당백룡을 연기했다.

드라마는 철저한 고증에 따라, 명나라 사신들이 예전 사극에서처럼 조선의 말을 하는 게 아닌 중국어, 그것도 고대의 중국어를 하는 설정으로 밀고 갔다. 그래서 조재윤 역시 중국어 대사를 했는데 꽤 발음이 빼어나 화제가 됐다. 중화권 시청자들 역시 표준발음 같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한 성우가 SNS에 글을 올리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그는 "내가 당백룡을 더빙했다"며 조재윤의 중국어 실력에 대해 조롱했다. "웃음을 터뜨렸다"라고까지 한 그의 이야기는 SNS에서도 사라졌지만, 여파는 이어졌다. 조재윤의 지인들은 그런 반응을 두고 분개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 사례는 현재 한국과 중국 사이에, 더 나아가서는 한국과 중화권 국가들 사이에 콘텐츠에 대한 인식 또는 친밀함에서 먼 거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굳이 한국 콘텐츠를 깎아내리거나 조롱하고 싶었던 의도가 아니었다면, 굳이 중국 성우가 나설 이유도 없었다. 중국에서는 타국 드라마의 더빙작업은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은 최근 들어 더욱 많이 불거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 세계적으로 동시대 문화권이 가능하게 만든 OTT 플랫폼의 발달과 특히 그중에서 넷플릭스의 콘텐츠가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기 시작한 2020년대 초가 그 시점이다. 그때부터 콘텐츠를 놓고 한국과 중국, 양국이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이 늘어났다.

'흑백요리사',사진=넷플릭스

최근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다. 지난해 한국 오리지널로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로 올라섰던 '흑백요리사:요리계급전쟁'은 난데없이 중국발 표절 의혹이 일었다. 중국의 OTT 플랫폼 텐센트비디오의 요리예능 '이팡펀선(一饭封神·요리 한 끼로 신이 되다)'가 프로그램의 틀은 물론 구성과 함께 장면 하나하나 '흑백요리사'와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흑백요리사'의 김학민PD 역시 분노보다는 신기함을 표현하면서 "그렇게 한 장면, 한 장면 구도까지 똑같이 표현될 줄은 몰랐다"고 놀라워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중국의 텐센트비디오에 관련 콘텐츠의 공개를 중지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향후 대응 전략에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미있는 지점은 넷플릭스는 중국 내 서비스가 안 된다는 사실이다. 분명 이 프로그램을 적법하지 않게 시청하고 오마주를 넘어선 베끼기에 돌입한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국내외 프로그램 포맷 권리 침해 사례'를 보면 2016년부터 5년 동안 18편의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20차례에 걸쳐 표절 또는 도용당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 중 총 19건이 중국에서 발생했다.

최근에는 오히려 거꾸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티빙의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를 예정한 드라마 '친애하는 X'는 도리어 중국 콘텐츠의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드라마는 지난 2017년 중국에서 공개된 일본 원작 영화 '용의자 X의 헌신' 중국판 '용의자 X적 헌신'의 포스터와 유사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흰색 배경을 바탕으로 흰색 배경을 'X'자로 예리하게 찢고, 그 안에 출연자의 눈을 넣은 연출이 같다는 것이다.

결국 티빙은 "론칭 포스터는 특정 사례와의 유사성을 뒤늦게 인지해 즉각 사용을 중단하고 향후 사용을 하지 않기로 조치했다"고 사과했다. 물론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중화권 누리꾼들 비판적인 의견을 낸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한국과 중국은 대중문화 콘텐츠의 유사성 때문에 수시로 부딪히고 있다.

사진제공=티빙, 퍼스트런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늘 과거부터 문화적으로도 화합 못지않은 갈등을 양산해왔다. 과거에는 주로 한국이 중국의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를 수급받는 입장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한류의 확산과 K-팝, K-드라마의 발전으로 균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활발한 인적, 물적교류도 있었지만, 중국 정부의 제동으로 '한한령'이 불어오기도 했다.

물론 사회주의국가인 중국과 정치적으로 친밀하다면 문화적 교류 역시 편안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도 양국은 어려운 상황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특히 북한과 중국이 더욱 밀착하면서, 그동안 '혐중감정' 등으로 중국을 멀리해 온 대중의 중국을 향한 반감의 감정은 더욱 커졌다. 이번 성우의 논란이나 표절 논란 등에는 "왜 하필 중국이냐"는 혐오의 감정 역시 많이 숨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는 인접한 국가 사이에 많이 오갈 수밖에 없고, 한국과 중국의 오랜 교류의 역사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정치적인 상황을 넘어 중국과의 대중문화 교류를 발전적으로 이끌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저작권 침해나 조롱 등을 묵과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잘못된 부분에서는 당당하게 요구하고 바꾸고, 교류를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다양한 요소로 동시대화되고 있는 세계에서 특정 국가와의 단절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문화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아직 한국과 중국 인식의 거리는 여전히 먼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 긴장 완화를 비롯한 화해로 분위기를 풀 것인지, 압도적인 콘텐츠의 차이로 존재감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갈 것인지. 한국과 중국의 콘텐츠 갈등을 바라보는 시선은 2025년 지금에도 여전히 복잡하기만 하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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