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 작가의 치열한 글쓰기 [크리틱]

한겨레 2025. 9. 1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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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된 김석범 소설집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에는 2017년부터 2022년 사이에 발표된 '소거된 고독',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 '땅의 동통' 등 세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김석범 작가가 '보름달'을 통해 선보이는 이야기는 이런 소재를 품고 있다.

'보름달' 일본어판(2022)을 출판한 김승복 쿠온 대표에 의하면 김석범 작가는 "이 책이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인데, 내가 죽으면 이 책이 가장 많이 팔릴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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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 소설가가 2018년 4월21일 오후 일본 도쿄 호쿠토피아에서 열린 제주도 4·3 70주년 추모행사에서 ‘제주도 4·3 항쟁의 정의를 이야기하자’라는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된 김석범 소설집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에는 2017년부터 2022년 사이에 발표된 ‘소거된 고독’,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 ‘땅의 동통’ 등 세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소설들에는 모두 작가 케이(K)가 등장한다. 내용상 그가 김석범의 실제 초상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일종의 소설가 소설이자 자전적 소설의 엮음이라 하겠다.

인생의 벼랑 끝에 섰던 센다이(仙台) 시절 얘기, 한국전쟁 발발 직후 당시 제주 산지항 앞바다에서 발생한 수장 학살의 참담한 비극, 1946년 여름 일본으로 밀항 이후 42년 만의 조국 방문이라는 초유의 체험. 김석범 작가가 ‘보름달…’을 통해 선보이는 이야기는 이런 소재를 품고 있다.

케이에게 “아흔의 생애 동안 가장 정신적으로 존재의 중심이 녹아내려 붕괴한 시기”라고 기억되는 센다이 시절의 상흔은 가슴을 치는 이야기다. 심한 대인기피증을 지닌 케이에게 지하조직을 통해 부과된 광고 수주는 “남들의 몇배나 되는 노력과 고통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로 인해 결국 조직을 떠난 케이는 깊은 좌절감과 패배감에 휩싸인다. 한편 케이가 떠난 센다이 조직에 합류한 정우가 있다. 한때 미군의 통역이자 니힐리스트였던 그는 혁명과 연애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철광산에서 다이너마이트로 자살한다. 센다이에서의 극한적 체험은 김석범에게 제주 4·3의 비극을 선구적으로 담은 작품 ‘까마귀의 죽음’(1957)을 쓰게 만든 동기로 작용했다.

표제작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에서 작가는 한국전쟁 직후 제주경찰서에 예비검속으로 연행됐다가 1950년 여름 제주항 앞바다에서 비밀리에 수장된 사람들의 무참한 비극을 거듭 되짚는다. 기록의 부재로 아직도 그 진상 규명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 은폐된 역사다. 작가는 묻는다. “보름달이 뜬 밤, 50명씩 밧줄에 묶인 나체의 남녀 500명이 탄 백톤급 옛 어선의 출항이 완전한 비밀이 될 수 있을까.” 4·3 당시 집단수용소 터였던 제주항 인근의 ‘주정공장 수용소 4·3역사관’은 이 처참한 사건을 환기하는 공간이다. 책에 수록된 작품에 스며든 이야기 하나하나, 편편이 가슴을 관통한다. 얼마나 뜨거운 진실의 목소리인가.

‘보름달…’ 일본어판(2022)을 출판한 김승복 쿠온 대표에 의하면 김석범 작가는 “이 책이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인데, 내가 죽으면 이 책이 가장 많이 팔릴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온라인 서점 판매 지수를 보면 ‘보름달 아래 붉은 바다’ 한국어판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출간된 지 한달여가 지난 현재 이 문제적 소설집에 대한 언론 보도도 전무한 상황이다. 대체로 작품의 문학적·역사적 가치는 판매량이나 미디어 노출과 별개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현실은 마음을 쓸쓸하게 만든다.

내일 개최되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대산문화재단 주최)에서는 김석범 문학을 소재로 낭독극이 열린다. 일본에 거주하는 작가가 행사에 직접 참석하기는 힘들 테지만, 생존 작가를 기리는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는 건 특별한 사건이다. 곧 다가오는 10월2일 김석범 작가는 만 100살을 맞이한다. 지난해 두편의 신작을 발표한 그의 새로운 단편소설이 문예지에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100살에도 여전히 치열한 창작욕을 불태우는 김석범의 작품이 더 많은 독자의 시선에 가닿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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