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000km ASF 울타리, 산양 살리려면 설악산부터 철거해야"…국책기관 첫 발표
환경부 용역 ASF 울타리 철거 로드맵 첫 연구 결과
연구기관들 "국립공원부터 단계적 철거 필요" 제안
편집자주
도심 속 인간과 동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갈등과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갈등의 배경 및 인간과 동물 모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떼죽음과 백두대간 생태축 단절을 막기 위해, 설악산국립공원에 설치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부터 철거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정부가 실시한 ASF 차단 울타리 효과와 관리 방안에 관한 첫 연구 결과로, 올겨울 실제 철거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현재 설치된 울타리는 총 3,000㎞에 달하고 산양 1,022마리 이상이 폐사한 뒤에야 44개 지점만 부분 개방한 상태다.
17일 한국일보는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환경부로부터 받은 'ASF 차단 울타리 효과 분석 및 관리 개선 방안 연구'와 'ASF 차단 울타리 멸종위기야생생물 생태계 영향 조사'를 분석했다. 연구는 각각 한국환경연구원(KEI)과 국립생태원이 지난해 4월부터 1년 2개월간 수행했다. 국립생태원은 차단 울타리 내 생태계 영향을 조사한 뒤 개방 필요 구간을 제안했고, KEI는 이 자료를 포함해 차단 울타리의 ASF 확산 지연 효과와 개방 가능 구간을 도출했다.
울타리 지연 효과 한계, 설악산부터 단계적 철거해야

KEI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1~5차에 걸쳐 설치된 총 3,000㎞의 울타리 중 정부가 관리하는 차단 울타리 1,800㎞로 인한 ASF 지연 효과와 △모든 울타리를 아예 설치하지 않았을 경우, △1~5차 울타리를 철거한 뒤 최서단(경기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최남단(충남 당진영덕고속도로) 울타리를 존치시켰을 경우를 각각 비교했다.
분석 결과, 차단 울타리가 ASF 확산을 막는 효과는 있었지만 5차 차단 울타리 설치 이후에는 효과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지연 효과는 있었지만 5차 차단 울타리 이후로는 효과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또 최서단과 최남단 울타리만 존치시켰을 경우 모든 울타리를 존치시켰을 때보다 지연 효과는 다소 떨어지지만 멧돼지 울타리 통과 확률은 2%로 동일해 큰 차이는 없었다.
KEI는 이를 근거로 최서단과 최남단 울타리는 존치시키되 1~5차 울타리는 생태적 우수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멧돼지 통과 확률과 생태계 연결성, 양돈 농가 위치 등을 고려해 ①우선 철거(멧돼지 통과 확률이 낮고 중복 울타리가 설치된 지역) ②단계적 철거(멧돼지 통과 확률이 낮고 생태계 연결성이 필요한 지역) ③추가 검토 필요 구간(멧돼지 통과 확률이 다소 있으나 양돈 농가 등으로 중장기적 모니터링이 필요한 지역) ④존치 구간(멧돼지 통과 확률이 높고 생태계 연결성 필요성이 낮으며 양돈 농가가 밀집한 지역)으로 구분했다.
KEI가 보고서에서 우선 철거 지역으로 꼽은 곳은 설악산 국립공원 미시령과 한계령, 강원 홍천군 홍천강, 경기 포천시다. 다만 모든 울타리는 현장 조사를 통해 철거와 존치를 판단하도록 했고 농가 중심의 방역 필요성도 제안했다. 구경아 KEI 자연환경연구실 연구위원은 "멧돼지 습성뿐 아니라 사망률, 울타리 통과율, 환경요인 등을 고려해 분석했고 여기에 현장 조사를 더하도록 했다"며 "농가 방역을 위해서는 현장의 특성과 여건을 반영한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산양, 미개방 구간에서 발길 돌려... 개방 구간에선 활발

KEI가 우선 철거 지역으로 꼽은 설악산 국립공원은 국립생태원이 개방 필요 구간으로 제안한 곳과 일치한다. 국립생태원은 강원 화천·양구군의 차단 울타리 미개방 2개 지점을 조사했다. 또 양돈 농가와 ASF 발생지점에서 떨어진 미시령 옛길 등 부분 개방 44개 지점을 모니터링해 야생 생물의 이동 패턴을 분석(본보 3월 20일 보도)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816260003313)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0515380002953)
분석 결과 미개방 지점에서는 산양, 멧돼지 등 우제류가 차단 울타리를 따라 이동(74.6%)했지만 통과(0.6%)는 거의 없었다. 차단 울타리에 의해 이들의 이동이 차단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양구군에서만 포착된 산양의 경우 61.9%는 차단 울타리를 따라 이동, 25.7%는 탐색 활동을 한 반면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밑으로 통과하려는 시도는 0.4%에 그쳤다. 하지만 산양이 훼손된 울타리로 통과한 수만 144건, 실패한 수는 24건에 달했다.
반면 개방지점에서 우제류는 통과(61.8%)하거나 통과 후 재통과(2.1%)했고, 먹이 활동, 머뭄 등의 행동을 보였다. 산양의 경우 66.9%가 울타리를 통과, 1.9%는 재통과했고 회피는 2.6%에 그쳤다.
또 산양의 서식지 적합성과 이동 경로를 적용해 개방 필요 구간을 도출한 결과 강원 양구군, 화천군이 있는 설악산국립공원,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 울진군이 꼽혔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ASF 울타리 철거 계획 관련 한국일보의 질의에 환경부 자연생태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관계 기관과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안으로 울타리 관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인철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국장은 "울타리 철거는 방역 포기가 아닌, 과학적 분석 결과에 기반한 스마트한 방역 체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며 "올겨울이 오기 전 생태적 가치가 높은 설악산국립공원과 백두대간 핵심 구간부터 즉시 철거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헌 의원도 "과학적 결과가 나온 만큼 이제 정부는 차단 울타리의 효과와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며 "환경부는 방역과 생태 보전을 함께 이루는 균형 잡힌 해법을 서둘러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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