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침묵의 장기’ 폐…“폐암, 항암보다 금연·조기검진을” [건강한겨레]

최지현 기자 2025. 9. 18. 07: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계폐암학회 연례학술회의’에서 지적
100여 개국에서 7500명 이상 전문가 참석
‘암 사망 5명 중 1명’인 폐암 예방책 논의
폐암 환자, 금연만 해도 사망 위험 21% 낮아져
한국의 국가폐암검진사업 성과도 발표
지난 7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폐암학회 연례학술회의’(WCLC25) 중 ‘국제폐암학회’(IASLC)와 랜싯이 국제 폐암 예방과 관리를 위한 공동위원회를 발족하는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 둘째가 카렌 켈리 ISALC 최고경영자(CEO).

금연, 조기 검진, 생체 표지자 진단과 추적 검사, 의료 접근성 증진과 의료비 부담 감축, 예방적 치료….

폐암 관리를 위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일까? 이들 문제는 지난 6~9일 나흘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폐암학회 연례학술회의’(WCLC25)에 모인 전세계 100여 개국 7500명 이상의 폐암 전문가가 공통으로 지목한 문제들이다.

‘국제폐암학회’(IASLC)가 주최하는 WCLC는 세계 최대 규모의 폐암 분야 국제 학술대회다. 특히 7일 오전 200여 명의 전문가가 모인 한 세션에선 실시간 모바일 설문조사를 통해 해당 문제에 대한 중지를 모았는데, 결국 금연과 조기 검진으로 대부분의 의견이 모였다. 이 세션은 IASLC가 저명한 국제 의학 학술지 랜싯과 함께 국제 폐암 예방과 관리를 위해 공동위원회를 발족하는 자리기도 했다.

학회는 폐암 조기진단과 치료 접근성의 전세계적 형평성 제고와 함께 폐암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강하게 촉구했다. 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인 카렌 켈리 ISALC 최고경영자(CEO)는 폐암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치료법과 조기 검진, 신약 등의 등장으로 폐암은 더 이상 사망선고를 의미하던 과거의 폐암이 아니지만, ‘더 많은 폐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와 ‘폐암이 단지 흡연 때문만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라는 두 메시지가 전세계적으로 아직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어 그는 “폐암을 단순히 폐나 흡연자의 질병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며 “폐암은 사회적으로 보건, 환경, 정치, 경제 구조에 내재한 복잡한 문제면서 환자의 삶과 경력, 생식능력 등 일생 전체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학회는 2027년까지 폐암에 대한 국제적 치료 가이드라인을 정립하는 등 의학적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담배 규제 정책, 대기오염과 기후변화 문제 해결, 조기 진단과 보편적 의료 접근성 제고 등 각국의 보건 정책 개선을 촉구할 예정이다.

지난 6~9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폐암학회 연례학술회의’(WCLC25)에서 스페인 폐암 환자 협회가 연 폐암 인식 개선 캠페인 부스 모습. 폐암을 상징하는 하얀 리본과 ‘폐암 인식’이란 단어를 각국어로 번역해 나눠주고 있다.

모든 암종 중 발생·사망자 가장 많은 폐암…조기에 알아채기 어려워

그렇다면 폐암에 따른 피해는 실제 얼마나 될까? 랜싯과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폐암은 모든 암종 가운데 가장 많은 발생자와 사망자를 낸다. 2022년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매년 180만 명이 폐암으로 사망하는데, 이는 전체 암 사망자의 5명 중 1명꼴(18.7%)이다. 이는 전세계에서 유방암, 대장암, 전립샘암으로 사망한 환자 전체보다도 많은 수준이기도 하다.

질병 부담 수준 역시 막대하다. 전체 인구에서 특정 질병으로 인한 조기 사망과 건강하지 않은 삶의 기간을 측정하는 지표인 ‘장애조정생명연수’(DALY) 역시 460만 년에 이른다. 그럼에도 WHO는 전세계의 폐암 부담이 2050년까지 2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매년 3만2천여 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하는 폐암은 전체 암종 중 갑상샘암, 대장암에 이어 세 번째로 발병률이 높은 한편, 암 사망률은 가장 높다. 연간 폐암 사망자 수는 1만8천여 명으로 국내에서도 전체 암 사망자의 5분의 1(21.9%)가량이 폐암으로 사망한다.

다른 한편으론, 여성과 비흡연자 폐암도 증가하는 추세다. 전체 폐암 환자의 40%, 여성 폐암 환자의 89%는 비흡연자인데, 전세계 비흡연 폐암 비율과 대비해 약 25%나 높은 정도다. 이는 이지에프알(EGFR) 유전자 변이가 잘 나타나는 동양인의 유전적 특성 때문이나, 다행히도 EGFR 유전자 변이 폐암은 표적치료제의 발달로 치료 예후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이처럼 폐암으로 인한 질병 피해가 큰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다. 우선 폐의 기관적 특성 때문이다. 흔히 침묵의 장기라고 하면 간을 떠올리기 쉽지만, 폐 역시 감각 신경이 없어 장기가 상당히 손상될 때까지도 심각한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호흡을 위해 최대한 공기와의 접촉 면적을 늘리는 구조의 폐포는 각종 감염과 염증에 취약하고 한 번 손상되면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또한 조기 진단이 어렵고 폐의 기능이 호흡이라는 점도 질병 피해를 키우는 데 한몫한다. 폐엔 악성 종양이 생겨도 심각한 통증이나 증상이 없어 중증이 다 돼서야 발견하기 쉬운데, 이땐 필수적인 생명 기능인 호흡에도 문제가 생겨 이미 치명적인 상태다. 실제 전체 폐암 환자의 40%가 이미 암이 전이된 상태인 4기에서 진단받는다.

지난 9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폐암학회 연례학술회의’(WCLC25)에서 금연의 폐암 환자 사망률 감소 효과 연구 결과를 발표 중인 박동원 한양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금연, 강력한 항암치료 효과…지나친 검진 남용은 조심해야

다행인 점은 폐암의 80% 이상이 예방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위험 요인인 흡연을 규제하고 흡연자나 가족력이 있는 등의 고위험군에 대한 조기 및 정기 검진만으로도 예방 효과가 상당하다. 이 외에 대기오염과 주거 환경에서 라돈 노출, 음식물 조리 연기와 같은 실내 공기 오염 등의 발병 원인도 사회·정책적으로 충분히 줄일 수 있는 범위에 속한다.

특히 금연이 그 자체로 상당한 항암치료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단 흡연이 강력한 폐암 유발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흡연으로 인한 폐포 등의 폐조직 손상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병의 진행을 일부 늦출 수 있다. 실제 9일 WCLC25에서 박동원 한양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폐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금연하는 것만으로도 생존율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폐암을 진단받은 시기 흡연을 유지한 폐암 환자에 비해, 금연을 시행한 폐암 환자의 사망률은 무려 26% 감소했으며, 적극적으로 금연 치료를 받은 경우엔 사망 위험이 45%까지 낮아졌다.

김열 국립암센터 암검진사업부 교수(대한금연학회장) 역시 6일 WCLC25에서 우리나라의 국가폐암검진사업 5주년 성과로 국가폐암검진 도입 이후 폐암 검진자의 1년 전체 사망률은 3.21%포인트, 폐암 관련 사망률은 2.69%포인트나 유의미하게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약 50%의 높은 수검률과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한 폐암검진 질관리는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성과다. 미국의 수검률이 10년째 연간 1~2% 수준인 것과 크게 대비된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국립암센터는 내년 상반기 발표를 목표로 ‘폐암 검진 가이드라인’ 개정 작업도 진행 중이다. 고위험군의 검진 간격을 기존 2년에서 1년 주기로 좁히고, 흡연력 기준을 30갑년에서 20갑년으로 낮추며, 폐암 가족력, 폐기저질환력, 특수 환경 노출 등의 요인을 추가해 수검 대상자를 확대한다는 골자다. 다만 폐암 저위험군에 대한 조기 검진 확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김 교수는 “검진이 무조건적인 해답은 아니다”라며 “의학적으로 충분한 근거에 기반해 사망률 감소라는 조기 검진 효과가 과잉진단 및 방사선 노출 등의 위해보다 높다는 근거를 평가해 검진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어 그는 “폐암 검진에도 양면성이 있는데, 가족력을 우려해 검진을 과하게 받으면 폐암이 과진단될 수도 있고, 흡연자가 검진에서 좋은 결과를 받으면 ‘흡연 면허’를 받은 것으로 착각해 금연에서 더 멀어질 수도 있다”며 “금연과 간접흡연 예방, 대기오염 감축, 근무 환경 개선 등의 노력과 검진 후 의료진과의 결과 상담 연계 등이 폐암 예방을 위한 더 중요한 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폐암학회 연례학술회의’(WCLC25)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김열 국립암센터 암검진사업부 교수(대한금연학회장). 김 교수는 6일 WCLC25에서 우리나라의 국가폐암검진사업 5주년 성과를 발표했다.

바르셀로나/글·사진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