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만의 굶주림…팔레스타인 향한 ‘거대한 폭력’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한겨레 2025. 9. 1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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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가 늦어진 오후를 상상해보라.

하루가 멀다 않고 때 되면 음식을 집어넣고 살았다.

아침이면 빵 한조각이라도 먹고 나서고, 점심시간 가까워지면 무엇을 먹어야 하나 동료와 심각한 논의를 하며, 퇴근 즈음해서는 하루의 마감을 무슨 음식과 함께할지 고민하는 현대인의 삶.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하려는데, 나는 음식에 대해 쓸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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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현지시각) 가자 북부 가자시티에 도착한 구호품을 실은 트럭에서 주민들이 밀가루 포대를 나르고 있다. 가자시티/AP 연합뉴스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끼니가 늦어진 오후를 상상해보라. 하루가 멀다 않고 때 되면 음식을 집어넣고 살았다. 아침이면 빵 한조각이라도 먹고 나서고, 점심시간 가까워지면 무엇을 먹어야 하나 동료와 심각한 논의를 하며, 퇴근 즈음해서는 하루의 마감을 무슨 음식과 함께할지 고민하는 현대인의 삶. ‘무엇을’ 먹을지는 고민이어도, 하루 곡기를 걱정하며 살지는 않았다. 위장이 비어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러다 일이 바빠 한끼라도 늦어졌다면. 점심을 먹지 못한 채 오후 두시가 됐다면. 아, 어찌나 배가 고픈지. 영양소도 충분, 머리로야 저녁 되면 먹을 음식 있다는 것 알면서도, 내 몸뚱이는 사냥하며 굶주림을 두려워하던 그 시절에서 한치도 진화하지 못하고 꼬르륵거린다. 배고픔은 여전히 가장 원초적 두려움이며, 배부름을 향한 욕망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동기 중 하나이다. 그러니 우리는 복스럽게 먹는 이들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몸매를 가꾸기 위해 그 욕망을 통제하는 이들을 우러러본다. 이 단순한 욕망에 이런저런 옷을 입혀 번듯하게 만들어뒀지만, 한끼라도 먹지 못하는 날이면 여지없이 발가벗겨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곡기를 끊은 사람들을 응시하게 된다. 그이가 며칠을 굶었는지, 여직 그의 눈빛이 생기를 잃지 않았는지, 그의 피골이 상접했는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짝 마른 그 입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귀를 기울인다. 투쟁하는 이들이 막다른 골목 앞에서 단식에 돌입하는 이유일 것이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다면, 굶는다는 것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굶는 이들의 몸뚱이는 무언가를 강렬하게 증언하고 있다.

바다에 쌀 몇줌과 렌틸콩이 담긴 병을 띄워 보낸다. 이집트 사람들이 지중해 바다에 띄운 것이다. 봉쇄된 가자지구 연안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바로 옆 동네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띄운 식량이 도달할 가능성은 적다. 그럼에도 어떤 절박함이 그런 행동을 끌어냈을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던 이들이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서울 절반 정도 크기 가자지구에 2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살고 있다. 인구의 절반은 어린아이. 구호품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이스라엘의 총격이 있었다는 소식, 음식을 나눠주는 배급소에는 빈 통을 들고 밀려드는 이들의 행렬. 총격, 포탄, 폭격, 또 폭격, 다시 폭격.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하려는데, 나는 음식에 대해 쓸 말이 없었다. 지구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다. 그 구멍에 사람이 있는데, 끼니는 닿을 수가 없다. 실시간으로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폭력은 모니터 앞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애써 외면하고 내 앞에 주어진 일상을 살아내려 해도, 굶고 있는 230만의 몸뚱이는 강렬하게 지구상 가장 거대한 폭력을 증언하고 있다. 이 증언 앞에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발가벗은 원초적 두려움의 세계가 보란 듯 드러날 것이다.

불도저가 올리브 나무를 있는 그대로 밀어 버린다. 팔레스타인인에게 올리브 나무는 생업의 근간이다. 기름을 짜고 반찬을 만들며, 지중해 세계에서도 특산품이라며 격찬받아왔으니 언제나 희망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학살은 총과 미사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죽이고 굶기는 것으로 모자라 희망의 근거마저 뿌리 뽑히고 있다. 팔레스타인산 올리브 오일이 한병 있다. 과연 풍미가 좋았다. 한끼 정도 먹을 기름이 남았다. 다 쓰질 못하고 내버려둔다. 장 보던 곳에서는 더 이상 기름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희망의 근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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