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44% 노인인데 전문의 1명뿐 “생의 마지막 통합돌봄 막막” [품위 있는 죽음]
“의사 부족해 대기하다 하루 허비… 우울증 약 처방 영양서 안동 원정”
지역 의료 이용률 29% 최하위권… 의료공백 우려, 방문진료 꿈도 못꿔
“의료취약지 통합돌봄 모델 필요”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선진국에서 가장 주력하는 정책이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AIP)’다.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늙고,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한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내년 3월부터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 대상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사업’이 시작된다. 핵심은 각 시군구 단위로 운영되는 재택 의료다. 그러나 영양 같은 의료 취약지는 방문 진료는커녕, 운영 중인 병원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다. 이 때문에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정부 정책이 자칫 현실의 벽에 막혀 겉돌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아프면 대구·안동으로” 지역 의료 이용 29%
서울 면적의 1.35배인 영양군엔 의사가 7명뿐이다. 그나마 보건소에 3명, 영양병원에 2명 배치된 공중보건의사 5명을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이곳에 있는 의사는 2명에 불과하다. 공보의를 마치고 약 20년째 영양병원에서 근무 중인 이상현 원장(가정의학과)은 지역 내 유일한 전문의다. 진료실이 3개 있지만, 봉직의와 공보의가 떠난 뒤 의사를 못 구해 현재 하나만 운영 중이다. 병상 50개는 입원 환자를 돌볼 의료진이 없어 비었다. 이 원장은 “공보의 2명이 교대로 응급실 당직을 선다. 80세가 다 된 방사선사가 퇴직하면 엑스레이도 못 찍는다”고 했다.

주민은 영양군 밖 의료기관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2023년 기준 영양군 관내 의료 이용률(총입원·내원 일수 대비 관내 의료기관 이용률)은 28.6%. 섬 지역인 인천 옹진군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낮다. 영양병원에서 만난 채정희 씨(70)는 “작년에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치료할 의사가 없어서 1시간 이상 걸리는 안동병원까지 갔다”고 했다.
진료할 수 있는 질환도 제한적이다. 박모 씨(73)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우울증이 왔는데, 여기선 약 처방이 안 된다. 4주마다 안동까지 가서 약을 처방받는다”고 했다. 우울증 치료제는 전문의약품이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처방이 필수다. 이날 수비면 보건지소에서 만난 3년 차 공보의는 “몸만큼 마음이 아픈 노인성 우울증 환자가 많은데, 돌봐줄 의사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민간병원 의사 2명으로 방문 진료는 엄두도 못 낸다. 공보의도 올해 2명이 줄었는데, 앞으로는 더 감소할 수도 있다. 인구 밀집도가 낮아 방문 진료에 시간도 많이 든다. 고나은 일월면 용화보건진료소장은 “의사, 간호사가 방문 진료를 가면 정작 다치거나 약 처방을 받으러 찾아오는 환자는 진료를 못 한다”며 “인력이 부족해 읍면 단위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를 통합 운영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또 다른 의료 공백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여건을 고려해 호스피스·완화의료 등 임종기 돌봄에 집중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지난해 영양군 사망자는 296명. 이 병원장은 “독거노인이 많다 보니 한두 달에 한 번은 고독사가 발생한다.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게 평안한 임종을 돕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장 소장은 “은퇴한 시니어 의사를 불러 영양병원 병상 10개만 호스피스 병상으로 운영해도 임종기 돌봄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양군과 같은 의료 취약지에선 특화된 통합돌봄 모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새롬 인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전국 시군구 중 23곳은 인구 3만 명에 못 미친다”며 “생애 말기 돌봄을 자급자족하기 어려운 지역은 정부 지원을 늘리고, 간호사 등 의사 대체 인력의 재량과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립대 병원과 상급종합병원 의사 파견이나 순회 진료 등 지역 내 의료 자원을 적극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혜진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의료취약지 수가 가산 등 보상을 강화해 재택 의료 및 통합돌봄 참여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특별취재팀 |
|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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