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윤석열, 전한길…‘가여운 것들’ [뉴스룸에서]

신승근 기자 2025. 9. 1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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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피의자’ 윤석열(왼쪽·대통령기자단), 내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두환(한겨레 자료사진)

신승근 | 뉴스총괄부국장

‘학살자’ 전두환의 이름이 요즘 다시 입길에 오르내린다. 전씨 일가가 그의 유골을 서울 연희동 집 마당에 묻는 방안을 강구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때 독재자로 호사를 누렸지만 2021년 11월23일 90살 나이로 죽은 그는 시쳇말로 아직 ‘구천을 떠돌고’ 있다. 살았을 때 쓴 회고록에 죽음 이후 희망 사항(“북녘땅이 바라다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을 밝혔지만 한줌 재가 된 그는 몸 누일 몇평 땅뙈기조차 마련하지 못해 4년째 유골함에 담겨 연희동 집 안에 임시 안치되어 있다. 전씨 일가는 아무도 임종하지 못한 채 화장실에서 생을 마감한 그를 화장한 뒤 생전 바람처럼 북녘땅이 보이는 경기도 파주시 장산리 땅에 모시려 했다. 하지만 전두환 유골이라는 걸 안 주민 반발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죽하면 집 마당에 유골을 영구 안치할 생각에 이르렀을까 싶다. 하지만 스스로 자초한 일, 자업자득이다. 1980년 광주에서 그 많은 이를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그는 대통령 재임 동안 불법체포와 고문을 일삼았다. 보도지침으로 언론을 옥좼고, 뒷돈을 받아 수천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축적했다.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그는 ‘5공화국 청문회’, ‘역사 바로세우기’ 등 여러번 용서를 빌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진실 규명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학살과 발포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죽임당한 이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었다. 1995년 내란 혐의 재판에선 “억울하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강변했다. 1996년 비자금 사건 공판에선 “내가 돈을 받지 않으니 기업인들이 되레 불안을 느꼈다. 기업인들은 내게 정치자금을 냄으로써 정치 안정에 기여하는 보람을 느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이 판결한 2205억원의 추징금도 요설로 회피했다. 골프를 즐기며 호사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예금 자산이 29만원밖에 없다”고 버텼다. 그가 은닉한 재산을 찾아내 추징했지만 아직 867억원이 미납 상태다.

인지상정, 측은지심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유골을 집 마당에라도 묻고 싶다는 전씨 일가의 마음을 헤아리자는 것이다. 허락해선 안 된다. 일단 주거 지역엔 묘지를 조성할 수 없다. 그 자체가 불법이다. 연희동 집은 전두환이 내지 않은 867억원 추징금 몰수를 위해 정부가 소송 중인 부동산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후손을 위해서도 국민이 준 여러번의 용서받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이에게 평안한 안식처를 제공해선 안 된다. 그래야 국민을 총칼로 위협해 권력을 찬탈하려는 역한 마음을 먹는 권력자나 군인이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고, 시민은 언제든 쿠데타에 온몸으로 맞설 것이다.

윤석열이 일으킨 친위쿠데타 12·3 내란을 시민과 국회가 신속히 제압한 건 ‘죽어서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는 전두환’의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두환처럼 내란을 도모한 몰염치한 윤석열을 마주하고 있다. 좌파를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총을 든 군인을 동원하고도 단지 경고용이었다고 강변하는 그는 또 다른 전두환이다. 용감한 시민과 부당한 명령에 주저한 군인이 없었다면 거리 곳곳에선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처절한 저항이 벌어졌을 것이다.

머리 조아리고 사죄해도 측은지심이 발동할까 말까 할 텐데, 윤석열은 뻔뻔하고 치졸한 처신으로 일관한다. 진실 규명을 위한 특검 소환엔 속옷 바람으로 버텼다. 법정엔 나오지 않는다. 그가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동안 아내 김건희는 금거북이, 명품 백, 명품 목걸이를 받고 매관매직을 일삼았다.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고 있지만 윤씨 부부는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외친다. 그런 윤석열, 김건희를 감싸며 증오의 정치로 공동체의 반목을 조장하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나경원 의원, 전한길·전광훈류의 극우 인사들에게선 1980년 학살자 전두환을 찬양하던 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또 반세기가 흐른 뒤 윤석열과 김건희, 장동혁과 나경원, 전한길과 전광훈 같은 이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권력의 정점에 섰지만 선거를 통해 국민이 만든 여소야대 정치 지형을 인정하지 않고, 총칼로 주권자를 짓밟으려다 몰락한 몰염치한과 그를 추종하는 아둔하고 가여운 것들로 기억될 것이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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