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로 부산국제영화제 찾은 박찬욱 “늪에 빠진 한국영화, 우리가 역할 해낼 수 있길”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5. 9. 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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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찾은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박찬욱 감독이 17일 부산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설에 이미 있는 것과, 아직은 없지만 거기에 뭔가 내가 보탤 만한 것을 생각했다. 하나는 코미디의 가능성이었고, 또 만수가 하는 일(범죄)을 가족들이 눈치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도 생각했다. 이 두 가지가 날 사로잡아서, ‘어쩔수가없다’를 붙들게 만들었다.”

3년 만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박찬욱 감독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원작소설 ‘도끼’를 ‘어쩔수가없다’로 각색해 연출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17일 오후 부산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만난 박 감독은 “원작이 가진 이야기가 가장 큰 매력이었지만 개인의 이야기와 사회적인 이야기가 결합해, 바깥으로 향하고 또 안으로도 향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으로 ‘어쩔수가없다’를 연출했다”고 회고하면서 “거대한 역설에 관한 이야기”라고 운을 뗐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이달 17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초청됐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 캐나다 토론토영화제를 거쳐 이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한국 관객에게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쩔수가없다’는 24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지업체에 20년 넘게 재직했던 만수(배우 이병헌)이 해고된 뒤 잠재적 경쟁자를 살해하면서 재취업을 꿈꾸는 이야기다.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박찬욱 감독, 배우 이병헌·손예진·박희순·염혜란·이성민. [연합뉴스]
박찬욱 감독은 “가족을 지키겠다는 순수한 동기, 내가 사랑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동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깊게 파고들고 싶었다”며 “원작소설 ‘도끼’가 1997년 발표됐지만 지금과 비교했을 때 근본적인 차이가 없고, 미국 소설이지만 한국과도 별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이야기를 처음 만들고 싶다고 마음 먹었을 때, 어떤 소재는 그때 만들어야 하는, 그때가 아니면 시들해지는 소재가 있기 마련인데, 원작소설 ‘도끼’는 시간이 흘러도 계속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라고, 이웃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만수는 극단적인 살해를 감행한 뒤 결국 재취업에 성공한다.

하지만 인공지능(AI)으로 완전 자동화를 이룬 공장에서의 관리자 직이다. 해고 전 만수의 과거 삶을 상상하면 ‘자동화 공장’으로의 재취업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박 감독은 “AI에 의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아직 우리 산업과 일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단계는 아니지만 발전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조만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태”라면서 “이 아이디어를 영화에 녹여내려고 시도했고 만수가 취직한 공장에 담아냈다. 편집도 다 끝나고 VFX도 다 끝난 상태에서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만수는 평생 ‘종이’를 다루는 제지업체 공장에서 근무했다. 종이가 점차 산업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지산업이 소설과 영화에서 중심 소재로 나온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마치 저물어가는 영화산업을 은유하는 듯한 대목도 적지 않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을 읽으면서 쉽게 감정을 이입했던 이유가 있다. 종이 만드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데, 주인공들은 자기 인생 자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영화를 만드는 저로서도 그러했다. 영화라는 것도 어찌 보면 삶에 큰 도움을 주는,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일도 아니고, 두 시간짜리 오락거리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일에 우리는 가진 걸 전부 쏟아부어서 인생을 통째로 걸고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쉽게 동화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제지업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마치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특히 박 감독은 “지금 영화업계가 어렵고 우리나라는 특히 팬데믹 이후 회복세가 더딘 상황인데, 영영 이런 상태로 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저희 영화가 구렁텅이에서,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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