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기후공학자들이 잃어버린 것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한겨레 2025. 9. 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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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비 작가의 ‘가이아의 공동 식탁’. 보안1942 제공

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기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연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치가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1.5도를 넘고 있다. 폭염과 한파가 번갈아 지구를 휩쓸고, 작은 섬나라는 국토를 포기해야 할지 염려한다. 현재의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가 산업혁명 이후 배출한 온실가스 양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기후공학’이다. 탄소포집저장(CCS) 기술로 시멘트 공장과 제철소 등 온실가스 다배출 공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땅속 깊이 묻거나, 이미 대기에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직접공기포집장치(DAC)가 이미 실행 중이다. 북극 바다얼음을 인공적으로 다시 얼리는 프로젝트, 성층권에 황 입자를 뿌려 지구를 인위적으로 냉각하는 방안도 영화 같은 상상처럼 들리지만 진지하게 연구 중이다. 인간의 기술력으로 지구 시스템 자체를 조작하겠다는 웅대한 계획이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역설이 숨어 있다. 개발로 훼손된 지구를 다시 개발로 치료하려는 점이다. 과거 우리가 ‘가이아의 역습’을 예상 못했듯이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성층권에 뿌린 황 입자는 예기치 않는 날씨 변화를 몰고 오고, 포집한 탄소를 땅속에 저장한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실제로 2016년 지열발전소 실험 과정 중에 경주에서 지진이 났다.

소비자본주의의 폭주와 그에 따른 기후위기 속에 동물들은 흙을 잃었다. 케이지에 갇힌 닭은 발톱으로 땅을 긁어 벌레를 찾는 본능을 발휘할 수 없다. 콘크리트 바닥 위의 돼지와 소는 흙냄새조차 맡을 수 없다. 이들은 흙과 단절된 채 공장식 축산 시설 안에서 일생을 보낸다. 세계농업기구(FAO)의 가축환경측정모델(GLEAM 3.0)을 보면, 과밀해진 소의 트림, 돼지의 배설물, 사료 작물의 재배 등 축산품을 만들어내는 데 나오는 온실가스가 세계 배출량의 12%에 이른다.

지난 주말 서울 통의동 문화공간인 ‘보안1942’에서 ‘내가 사는 피부’ 기획 전시를 보았다. 17세기부터 본격화한 플랜테이션과 화석연료 채굴, 최근의 탄소포집저장 같은 기후공학까지 흙은 생산수단과 자본의 형태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원래 흙은 모든 생명이 연결되는 터전이었다. 동물이 똥을 싸고, 미생물은 탄소를 저장하고, 인간은 식물을 길렀다. 흙의 착취로 복잡한 연결고리는 깨지기 시작했다. 이 연결고리를 복원하지 않으면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고 작품들이 말하는 듯했다.

실제로 훌륭한 기후공학자는 따로 있다. 바로 코끼리, 소, 고래 같은 동물들이다. 코끼리는 숲을 걸으며 나무를 쓰러뜨리고 씨앗을 퍼뜨려 숲을 북돋운다. 2019년 학술전문지 ‘네이처’에 실린 이탈리아 토스카나대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의 논문을 보면, 숲의 코끼리가 사라지면 아프리카 중부 열대우림의 바이오매스가 7% 줄어든다. 그만큼 탄소 흡수 능력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한꺼번에 많은 수의 소를 방목해 흙을 해치지 않는다면, 소를 방목하는 것도 소가 내뿜는 온실가스인 메탄의 양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 소들이 풀을 뜯고 배설하여 만든 좋은 흙에는 탄소 흡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생 반추동물이 초원에서 풀을 뜯는 것처럼, 소를 시시때때로 이동하는 방식의 방목은 토양의 유기탄소 저장량을 늘린다. 2022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보면, 잘 관리된 방목은 연간 1.48억~6.99억톤의 탄소를 격리한다. 아직 연구 결과가 엇갈리는 신생 분야이지만,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잠재력 때문에 최근 들어 많은 학자가 토양의 탄소 저장 능력을 연구하는 데 매진한다.

이달 초 ‘네이처’에는 기후공학의 대표 주자인 탄소포집저장에 판돈을 거는 유행에 대해 경고하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포집한 이산화탄소는 위험한 고압가스다. 이 때문에 육상이나 해저의 땅속에 저장해야 하는데, 지진 유발 가능성이 있거나 인구가 밀집한 부적합 지역을 제외하면 실제 묻을 수 있는 양은 이론적 추정량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주류의 기후대응은 ‘돈을 버는’ 사업을 키우는 쪽에만 치중한다. 흙은 계속해서 자본의 식민지가 되어간다.

원조 기후공학자들은 흙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동물에게 흙을 돌려주어야 한다. 소는 흙을 밟아야 한다. 진정한 기후 해법은 하늘 높은 곳이 아니라 발밑 흙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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