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환과고독과 민생지원금

이용규 2025. 9. 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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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태조 이성계는 즉위식에서 환과고독(鰥寡孤獨)을 챙기는 일을 조선의 정치 기틀로 선언했다.

개국 설계자 정도전이 쓴 선언문에는 '환과고독을 돌보는 일은 왕의 정치로서 가장 우선해야하는 일이니 당연히 그들을 불쌍히 여겨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왜구가 한반도를 유린하고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었던 고려말과 달리 조선은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따뜻한 정치로 차별화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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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 신문디자인국장
정조가 노인들을 초청해 베푼 잔치를 묘사한 화순 능행도.

1392년 태조 이성계는 즉위식에서 환과고독(鰥寡孤獨)을 챙기는 일을 조선의 정치 기틀로 선언했다. 개국 설계자 정도전이 쓴 선언문에는 '환과고독을 돌보는 일은 왕의 정치로서 가장 우선해야하는 일이니 당연히 그들을 불쌍히 여겨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왜구가 한반도를 유린하고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었던 고려말과 달리 조선은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따뜻한 정치로 차별화를 내세웠다. 환과고독은 독신 남성, 독신여성, 고아, 독거노인을 가르킨다. 맹자는 사회에서 하소연할 곳이 없어 공동체가 우선적으로 배려해야할 사람을 '환과고독'으로 지칭했다.

아동복지에 관심이 많은 정조는 유기아 보호 매뉴얼 '자휼전칙'(字恤典則)을 제정했다. 고을의 수령을 비롯한 관리들은 흉년과 기근으로 버려진 아이들 구조와 돌봄에 적극 나서야 하는 강제 규정이었다. 암행어사는 지역의 유기 아동을 파악하는 것이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1795년 정조의 화성행차 역시 경로사상을 고취한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였다.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연 다음날 노인 384명을 초대해 양로연을 베풀었다. 노인들에게 궁중 음식과 공연을 제공하며 마음을 전했다. 왕과 왕비가 존경의 마음으로 의례를 진행하고, 이들에게 명예직 벼슬도 내렸으니 노인들의 위상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세종때 신분에 관계없이 노인들을 궁궐에 초청, 축제로 제도화·법제화된 양로연은 해마다 8월이나 9월에 열렸다. 상황에 따라 다른 달에 베풀기도 했는데, 대체로 여든살 이상의 노인들이 참석했다. 조선 중기에는 노인직을 따내려고 조정에 로비를 벌이는 사례도 심심찮게 발생하곤했다. 조선시대 양로연은 정치적 기획이었지만 노인의 사회경제적인 지위와 입지를 끌어올리는 분기점이 됐다. 조선의 복지는 백성들의 고충에 공감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 집중했다. 환과고독을 돌보는 진휼과 환곡 등 정책실행에서 폐단이 발생했음에도 끈을 놓지 않았다.

정부가 22일부터 2차 민생지원금을 지급한다. 민생지원금 이면에는 경기침체와 내란 후폭풍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의 아픔이라는 그림자가 있다. 지금까지 지급된 재난지원금 평가는 딱 잘라 재단하기 어렵다. 일각의 포플리즘이라는 비판에도 나서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복지가 안녕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안녕한 삶을 살아가도록 최소한의 곁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용규 신문디자인국장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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