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中 후보만 출마한 ‘가짜 선거’… 마카오 민심 ‘백지 투표·고의 무효표 속출'
무효표 7.5% ‘역대 최다’
‘정치적 냉소주의’ 확산 우려
마카오가 15일(현지시각) 친중(親中) 성향 후보만 출마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꾼 후 처음으로 입법회(의회) 선거를 치렀다. 중국 정부와 친중 매체들은 ‘애국자가 통치하는 마카오’ 원칙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민주적 축제였다고 자평했다. 반면 서방 언론과 민주 진영은 홍콩처럼 중국식 ‘통제 선거’가 이식되면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외면하고 무효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저항한 ‘민주주의 장례식’이었다고 혹평했다.

16일 마카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는 총 17만5272명이 투표했다. 1999년 마카오가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여덟 차례 치러진 입법회 선거 가운데 가장 많은 유권자가 참여했다. 중국 본토에서 마카오로 이주한 영주권자 수는 최근 5년 동안 꾸준히 늘고 있다. 마카오는 7년 연속 통상적으로 거주한 이주민에게 영주권을 제공한다. 마카오 영주권자는 유권자로 등록할 수 있다.
마카오 정부는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선거 당일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행했다. 마카오 경제를 지탱하는 카지노 업체들은 셔틀버스를 동원해 직원들을 투표소까지 실어 날랐다. 샘 호우 파이 마카오 행정장관은 직접 공무원들에게 참여를 권하며 “투표는 기본법과 특별행정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이번 선거 투표율은 53.35%에 그쳤다. 전체 선거 사상 3번째로 낮은 기록이다. 역대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했지만, 정작 투표율은 저조한 모순된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번 선거에선 백지 투표와 무효표가 기록적인 규모로 쏟아졌다. 마카오 선거관리위원회 집계 결과 백지 투표는 5987표, 고의로 훼손하거나 표기 규정을 어긴 무효표는 7077표가 나왔다. 합치면 총 1만3064표에 달했다. 전체 투표수 약 7.5%에 해당하는 수치다. 바로 이전 2021년 선거에 비해 1.5배 이상 급증했다. 국제 민주주의·선거 지원 기구(IDEA)에 따르면 일반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무효표 비율은 보통 0.5%, 많아도 3%를 넘지 않는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유권자들이 투표는 하되, 지지할 후보가 없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정치학자 에릭 사우테데는 AFP에 “(이번 선거 투표율은) ‘발로 하는 투표(voting with one’s feet)’라는 표현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발로 하는 투표는 선거 제도나 후보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이 투표 불참 혹은 무효표 행사로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를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38세 유권자는 AFP에 “마카오에는 더 이상 진정한 정치가 없다”며 “정치에는 공개 토론, 반대 목소리, 최소한 일부 다른 의견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마카오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배경에는 2024년 개정된 선거법이 자리한다. 이 법은 ‘애국자가 마카오를 통치한다(patriots administering Macao)’는 원칙에 입각해 제정됐다. 새 선거법에 따르면 모든 입법회 선거 출마자는 국가보안수호위원회가 진행하는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위원회는 후보자가 ‘마카오 기본법을 옹호하지 않고, 마카오 특별행정구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출마 자격을 박탈한다. 위원회가 내린 결정에는 어떠한 법적 이의 제기도 불가능하다.
올해 선거를 앞두고 위원회는 소위 ‘민주파’로 분류되는 후보자들을 심사 과정에서 대거 탈락시켰다. 현역 의원 론 람 우 토우가 속한 ‘시너지 파워’, 알베르토 웡이 이끈 ‘마카오 창조 민생 역량’ 등 두 개 연립정당이 내세운 12명 전원이 입후보 자격을 빼앗겼다. 민주파 후보가 전멸하면서 이번 선거 직·간선 의석 14석에 도전한 후보 그룹은 1999년 마카오 반환 이후 가장 적은 6개에 그쳤다. 자격을 박탈 당한 론 람 의원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폭풍우 뒤에는 항상 햇살이 비친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에 앞서 마카오 당국은 지난 7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직 민주파 의원 아우 캄산을 체포했다. 아우 캄산은 수십 년간 마카오 민주화 운동을 이끈 민주파의 상징이다. 마카오 당국은 그가 해외 반중 단체와 결탁해 허위·선동적 자료를 지속적으로 전시했다고 했다. 마카오에서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첫 사례였다. 그는 현재 보석 불허 구금 상태로 수사를 받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홍콩과 마찬가지로 마카오에서도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탄압이 아우 캄산 체포 이후 본격화했다고 해석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이 사건에 대해 “마카오에서 진행 중인 정치적 다원주의와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를 더한다”며 비판 성명을 냈다.

정치 공간이 좁아졌다는 논란 위에 이번 선거 결과를 바라보는 시선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샘 호우 파이 행정장관은 “이번 선거는 ‘애국자 통치’ 원칙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했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대변인도 “높은 투표 열기는 마카오 고품질 민주주의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자평했다. 친중 성향 학자 투하이밍은 관영 매체 차이나데일리에 “애국자만 입법회에 들어오도록 보장해 주민들 삶이 더 나아지고 사회 화합도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이번 투표로 마카오 입법회가 중국 정부 정책을 무조건 통과시키는 ‘거수기’로 전락할 것을 우려했다. 마카오대학 행정학과 교수였던 에일로 유는 AFP에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후보 자격 박탈 사례들은 입법회 내 반대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중국 정부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마카오 유권자들은 현재 제한적인 선택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그 권한마저 점차 좁아질 것”이라며 “입법회도 거수기로 전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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