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멤버’ 홍철이 새 룸메이트와 얻은 희망 “선수로 더 뛸 수 있겠어요”

프로축구 강원FC가 창단 17년 만에 처음 밟은 아시아 클럽대항전에서 역사적인 첫 승리를 거둔 지난 16일 30대 중반에 접어든 베테랑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화려했던 옛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조금 더 오래 그라운드에 머무를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겼다.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홍철(35)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홍철은 기자와 만나 “오늘 경기에서 ‘앞으로도 이 자리에 설 수 있겠다. 축구를 조금 더 오래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홍철은 이날 춘천송암스포츠타운에서 열린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리그 스테이지 1차전에서 강원의 첫 승리를 이끌었다.
강원은 중국 슈퍼리그 명문인 상화이 선화를 상대로 2-1 역전극을 펼쳤는데, 0-1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은 선수가 홍철이었다. 홍철은 후반 9분 팀 동료인 구본철이 페널티지역 왼쪽 측면으로 내준 패스를 달려들면서 왼발슛으로 상하이의 골망을 흔들었다. 강원의 첫 ACLE 득점이기도 했다.
득점 장면을 떠올린 홍철은 “지고 있는 상황이라 일단 (슈팅을) 때려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운이 좋게 들어갔다. 룸메이트인 (구)본철이가 어시스트를 해주고 골을 넣었기에 더욱 기쁘다. 형이 축구를 조금 더 오래 하라고 이렇게 어시스트를 해준 것 같아 고맙다. 이제 룸메이트는 바꾸지 말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구본철 역시 후반 18분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룸메이트가 나란히 강원 승리의 주역이 됐다.
2010년 성남 일화(현 성남FC)에서 데뷔한 홍철은 국가대표로 A매치 47경기를 뛰면서 두 차례나 월드컵 본선 무대(2018 러시아 월드컵·2022 카타르 월드컵)를 밟은 선수다. 수비수로 언제나 첫 손에 꼽히는 선수였지만 최근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홍철은 올해 강원 유니폼을 입으면서 선발이 아닌 벤치에서 출전하는 빈도가 늘었다. 홍철 스스로 (주전이 아닌) ‘뒷 멤버’라고 표현할 정도다. 실제로 이날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기존의 주전 선수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규리그 윗물(파이널라운드A·1~6위)을 다투는 6위 강원이 당장 21일 수원FC와 K리그1 30라운드를 앞두고 있는 것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홍철은 “왼쪽 라인에서 호흡을 맞춘 (윤)일록이와 제 나이를 합치면 70살이었다. 걱정도 많이 되고, 우리가 잘못하면 독박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감독님에게 아직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됐다. 앞으로도 뒤에 있는 선수들과 함께 베테랑으로 잘 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홍철의 활약상이 놀라운 것은 골을 넘어 새 역할을 소화한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측면 수비수가 익숙한 그가 이날은 스리백의 한 축을 맡으며 공중볼까지 처리했다. 축구 선수로 아직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홍철은 “중앙 수비에 투입될 때는 키(176㎝)가 큰 편이 아니라 헤딩 경합에 자신은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되길래 나도 이 자리에 설 수 있겠다. 축구를 더 오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기쁜 날”이라며 “이젠 (구단에서) 재계약 제안을 받을 것이라 기대해도 되는 것이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홍철에게 이날 옥에 티는 골 세리머니였다. 지난해 첫 딸을 낳았던 그는 아내가 둘 째를 임신했기에 공을 유니폼 안에 집어넣는 세리머니를 펼치려고 했지만, 팀 동료 가브리엘이 하프라인으로 가져가면서 그 기회를 놓쳤다. 홍철은 “앞으로 몇 경기를 더 뛸지도 모르겠고, 골을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꼭 하고 싶었다. 가브리엘이 눈치 없이 공을 가져가 그냥 뛰었다”면서 “아내에게는 늘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춘천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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