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이 궁금하다
[사실과 의견]
[미디어오늘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독립언론 <단비뉴스>의 주간 교수를 맡고 있다. 학생들이 국장과 부장인 곳에서 주간 교수는 편집인 격이다. 기자로서 못 해본 출세를 학교에서 이룬 셈이지만, 덕분에 절반만 선생이고 나머지는 여전히 기자다. (다른 교수님들과 함께) 아이템 회의를 열고, 머뭇거리는 기자를 독려하고, 기사 초고를 뜯어고친다. 그러느라 논문, 강의, 행정이 정체된다. 가끔 정체성을 돌아본다. 에디터인가 연구자인가.
예를 들어, 선생으로서 '피처'(feature) 기사를 알려주는 것과 에디터로서 피처 취재를 독려하는 일은 다르다. 개념을 이해시키는 건 선생의 일이다. 영미식 기사 장르인 피처는 먼 나라 한국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한국 기자들이 피처를 말랑말랑한 미담 기사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국내 어느 교과서는 피처를 '기자의 주관이 들어간 기사'라고 소개한다. 말도 안 된다. 피처는 진지한 기사이므로 함부로 주관을 담아선 안 된다. 전혀 말랑말랑하지 않다.
'feature'가 복잡미묘한 단어이긴 하다. 'This film features Lee'라는 문장에선 '특별히 출연시키다'라는 뜻이다. 'Honesty is one of her best features'에선 '특별한 속성'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피처 기사는 어떤 이슈를 다룰 때 '누군가에게 특별히 주목'하는 동시에 그 대상의 '특징'을 잡아채어 보도한다. 굳이 번역하면 '사람 기사'가 아니라 '특집 기사'가 맞다.
해외 기자들은 피처라는 정점을 향해 단계적으로 기사를 쓴다. 어떤 일이 생기면 '긴급 보도'(breaking news)부터 내보낸다. 이건 (출처를 밝혀) 통신 기사를 옮겨 와도 좋다. 다음엔 현장에 간다. 관찰하고 인터뷰하여 '현장 기사'(spot news)를 쓴다. 한국의 상당수 기자는 속보만 쓰고 만다. 현장 기사를 쓰면 주변의 칭송을 받을 정도다. 그런데 영미 기자들은 그다음부터 진짜 일이 시작된다는 걸 안다. 이제 피처 쓸 차례다.

기사는 시간과 함수 관계를 갖는다. 긴급 보도는 바로 써야 하고, 현장 기사는 (현장이 휘발되기 전에) 얼른 써야 한다. 피처는 좀 묵혀도 된다. 오히려 시간을 견뎌야 좋은 피처가 나온다. 이슈와 관련한 그 사람이 아직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란에 빠진 영혼이 실체를 인지하고 수용할 때까지, 마침내 말할 용기를 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며칠 또는 몇 주, 때로 몇 달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한국 기자들은 견디지 못한다. 현안을 챙기라는 데스크 압박 때문에 그런 취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 기자라고 안 그렇겠는가. 그들에게도 챙길 현안이 있고, 압박하는 데스크가 있다. 다만 영미 기자들은 '나의 바이라인이 달린 좋은 기사' 쓰려고 기자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꼭 피처를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신만의 토굴을 판다.
그 토굴을 단비뉴스 기자들에게 안내하려면 선생이 아니라 에디터로 변신해야 한다. 독려하고 때로 압박한다. 이슈를 품은 사람을 발굴하고, 신뢰를 맺고, 까칠한 인격을 견디고, 스스로 말하길 기다리면서 그들이 기자 일의 실체를 깨닫길 기대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하면서 구조와 체계를 감지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그 일을 레거시 미디어의 기자들이 잘 치러낸다면, 나는 좀 덜 궁금할 것이다. 가자 지구에서 아직 생존한 사람은 하루를 어찌 보낼까. 서울 구치소에 갇혔다 풀려난 사람은 지난 몇 달 동안 윤석열 곁에서 어찌 지냈을까. 가뭄을 견딘 강릉 시민의 여름은 어땠을까. 트럼프 정부 관료로 지내는 한국계 미국인은 찰리 커크 피살 이후의 미국에서 잘살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해소해줄 피처는 저널리즘의 포털이다. 그 입구를 거쳐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기자의 일이 생겨나고, 그 경로를 따라 스토리텔링과 내러티브가 태어나며, 그 대문을 통해 어떤 이슈가 우리의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전히 보여줄 수 있다.
얼마 전, 단비뉴스의 어느 기자가 네팔 민주화 관련 피처 아이템을 발제했다. 그의 아이템이니 대상과 방법을 공개할 순 없다. 그가 잘 취재하여 보도할진 모르겠다. 에디터로서 독려하고 압박할 뿐이다. 그러다 문득 학자의 처지로 돌아와 생각했다. 무슨 이슈건 피처까지 써야 한다는 걸, 그래야 하나의 이슈를 다루는 최소한의 루틴이 끝난다는 걸 한국 기자들이 깨닫게 만들려면, 무슨 논문을 쓰고 어떤 강의를 열어야 할까. 저기, 기자를 기다리는 사람이 무수하다는 걸, 어떻게 논증하여 설파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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