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태평양'에서 '아모레'까지…80년 역사 다 담았다
원료식물원, 1700여종 식물의 보고
아카이브 속 한국 화장품사의 기록

아모레퍼시픽이 창립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화장품 역사와 함께 쓴 발자취를 공개했다. 동백오일 사업에서 시작해 화장품 생산 설비의 변천사, 원료 식물원 체험까지 아모레퍼시픽의 뿌리 깊은 역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 오산 아모레 뷰티 파크 '아모레퍼시픽 아카이브'와 '아모레퍼시픽 팩토리'에 '아모레퍼시픽 80년 | 1945-2025' 기획전이 열렸다. 지난 16일 기획전 현장에서 80년간 국내 화장품 산업의 변곡점을 그린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를 만났다.
화장품 공장의 과거와 현재
아모레 뷰티 파크의 팩토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아모레퍼시픽의 생산 철학과 제조 스토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1층 '팩토리 스테이션'에 들어서면 거대한 미디어월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화장품을 체험할 수 있는 '팩토리 라이브러리'도 관람객들에게 인기다. 진열장에는 라네즈 네오쿠션이 색상별로 줄지어 서 있고, 아이오페와 설화수의 스킨케어 제품도 다양하게 채워져 있다.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다면 QR코드를 통해 바로 구매할 수 있다.

한쪽에는 아시아 최초로 도입된 코티파우더 생산설비 '에어스푼(Air-spun)'도 자리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화학공업사'가 1958년 독일 알파인사로부터 들여와 1980년까지 사용한 장비다. 입자의 크기에 따라 회오리바람처럼 원심력을 이용해 고운 분백분을 생산했다. 이 공정을 통해 나온 'ABC분백분'은 출시 직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반자동 섀도우 제조기와 수동 충진기 등 과거 공장에서 쓰였던 기계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수많은 작업자의 손을 거쳐 화장품이 완성되던 시절의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3층에는 현재 사용 중인 아모레퍼시픽의 최신 생산 라인을 볼 수 있다. 이날 현장에서는 설화수와 코스알엑스 제품의 제조·포장·물류 과정이 실시간으로 공개됐다. 생산 현장은 다소 썰렁해 보였다.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한 라인을 관리하는 직원이 단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과거 수십 명이 한 라인에서 작업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완전 무인화된 라인이 도입되면서 근무자의 역할이 상당 부분 줄었다"며 "현재 일부 라인은 최신 기술을 집약한 설비로 교체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종 목표는 '다크팩토리' 구현"이라면서 "근무자 없이도 순환 생산이 가능한 체계를 갖추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창업자의 꿈을 담은 '원료식물원'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 서성환 선대 회장은 식물이 가진 가치와 생명의 경이로움에 매료됐다. 그는 "언젠가 식물원을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고 그 뜻은 원료식물원으로 이어졌다.
2019년 7월 문을 연 원료식물원에는 1만8200㎡ 부지에 1700여 종의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설화수의 원료인 인삼·감초·작약을 비롯해 다양한 화장품 원료 식물까지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입구에는 현재 아모레퍼시픽의 모태가 된 창성상점의 상징 동백나무가 서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1932년 선대 회장의 어머니와 선대 회장이 창성상점에서 동백 머릿기름을 판매했던 것에서 시작한다. 동백나무는 계절에 따라 분재를 옮겨 심으며 정성스럽게 관리된다.
원내에는 흰색과 분홍색을 비롯한 40여 종의 무궁화가 만개해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선대 회장이 직접 심은 향나무와 마몽드 꽃초세럼의 원료가 되는 금은화도 눈길을 끈다.

허브원, 전시온실, 암석원에서는 사계절마다 서로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전시갤러리에서는 이니스프리 그린티 시드 세럼의 원료인 녹차 씨앗, 설화수 자음의 핵심 성분인 백합뿌리와 연자육 등 자연의 원료를 눈으로 보고 향으로 느껴볼 수 있다.
80년의 기록과 '최초'의 역사
아모레퍼시픽 아카이브 전시실에는 80년 세월 동안 축적된 기록 9만여 건이 보존돼 있다. 전시는 6개 테마로 구성됐다.
먼저 '좋은 원료에서 좋은 제품이 나온다'는 창업자의 신념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는 기술 연구소 설립으로 구현됐다. 1954년 국내 최초로 화장품 연구실을 설립한 아모레퍼시픽은 1992년 아시아 최대 규모의 '태평양중앙연구소'를 완공했고, 2010년 제2연구동 '미지움'을 열었다.

자연에서 얻은 원료를 바탕으로 한 화장품은 아모레퍼시픽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1960년대에는 창업자가 유년 시절을 보낸 황해도 평산과 개성 특산품인 인삼으로 화장품을 만들었다. 1989년에는 세계 최초 녹차 화장품 '미로'를 출시했다. 이후 창업자는 제주 도순리 황무지를 개간해 세계 3대 녹차밭으로 키우고, 2001년 '오설록 티뮤지엄'을 세워 화장품과 식문화를 함께 확장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최초'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1966년 세계 최초 인삼화장품 'ABC인삼크림', 1973년 사포닌 추출 화장품 '삼미', 1990년대 세계 최초 안정화 레티놀 화장품 '아이오페 레티놀', 2008년 세계 최초 쿠션팩트 '아이오페 에어쿠션'이 대표적이다.

특히 에어쿠션은 연구원이 '주차 스탬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발포우레탄 스펀지에 액체 제형을 넣고 퍼프로 찍어 바르는 방식을 고안해 탄생했다. 이는 자외선 차단과 메이크업을 동시에 구현한 혁신 제품으로, 화장품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아무래도 '아모레'에요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는 곧 한국 화장품의 역사다. 창업자의 신념과 도전은 오늘날 K-뷰티의 뿌리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는 'ABC'의 시대로 불렸다. 당시 포마드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시중의 왁스는 잘 씻기지 않아 불편하다는 불만이 뒤따랐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아모레퍼시픽이었다. 식물성 원료로 만든 왁스를 내놓자 "머리에 바르고도 쉽게 씻겨 내려간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불티나게 팔렸다.

아모레퍼시픽은 마케팅 혁신에도 앞섰다. 1958년 국내 최초로 미용 전문지 '화장계'를 창간했다. 읽을만한 교양 잡지가 없던 시절 화장계는 미용 방법과 생활관련 정보까지 담아내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61년에는 '미용상담실'을 열어 고객과 직접 소통했고, 1963년 미용사원 제도와 멤버십 '난초회'를 도입했다. 1970년대에는 방문판매 사원이 피부 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피부 타입에 따른 맞춤형 화장품을 추천하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미용상담실에서 20여 년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1987년 명동 '아모레 1번가'에서 '메이크업 시뮬레이션' 서비스를 선보였다. 고객 사진에 색조 화장을 가상 적용해 어울리는 메이크업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아모레 1번가는 지금의 플래그십 스토어 역할을 했던 셈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모레 뷰티 파크는 단순히 제품을 생산하는 공간이 아닌 기업의 이야기와 생태적 자원, 지적 자산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라며 "80년의 역사는 단순히 기업의 발자취가 아니라 한국 화장품 산업의 성장사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화장품의 가치를 널리 알리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80주년 전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열리며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예약은 아모레퍼시픽 팩토리 투어 공식 홈페이지에서 진행하면 된다.
김다이 (neverdi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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