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못 먹을 매운맛" 이랬던 일본 돌변…신라면, 도쿄에 깃발 꽂았다

도쿄(일본)=유예림 기자 2025. 9. 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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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웨이브 올라탄 K이니셔티브 현장을 가다]<2-K푸드 대장정> 농심(종합)
[편집자주]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재도약과 도태의 갈림길에 섰다. 'K웨이브'로 달궈진 'K산업'의 성장엔진이 식기 전에 글로벌 영토 확장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머니투데이는 전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푸드·리테일·패션·뷰티' 등을 중심으로 'K이니셔티브'를 실현하고 있는 기업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장을 집중 조명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한국인 줄…분식집 가는 일본인 "신라면 호로록", 열도는 열광 중[르포]

일본 도쿄 하라주쿠 다케시타 거리에 있는 농심의 ‘신라면 분식’./사진=유예림 기자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하라주쿠에서 만난 쿠니이씨(27세). 그는 다케시타 거리 초입에 있는 '신라면 분식' 2층 매장에 들러 농심의 신라면 2봉지와 너구리 1봉지를 산 뒤 익숙한 솜씨로 즉석조리기를 사용해 라면을 끓였다. 그러면서 "한국 여행을 가면 해야 할 일 순위에 '한강에서 조리기로 라면 끓여 먹기'가 있어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먹어봤다"며 "즉석조리기로 또 먹고 싶어 이곳에 종종 온다"고 소개했다.

'신라면 분식'은 농심이 세계 주요 관광지에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라면 체험 공간이다. 도쿄점은 농심의 아시아 첫 매장이자 글로벌 2호점이다. 도심 '핫플(핫플레이스)'로 거듭난 이곳에선 라면이 매일 하루 평균 150봉지씩 팔린다. 끓인 라면에 김밥과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등을 곁들이는 모습은 한국의 분식집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실제로 점심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난 이날 오후 2시30분쯤에도 매장 내 탁자 7개는 25명의 손님들로 꽉 차있었다. 현지인부터 외국인 관광객까지 남녀노소 모두 라면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일본인 루나씨(12세)는 "처음 신라면을 먹었을 땐 매웠지만 여러번 먹다 보니 괜찮아졌다"면서 "신라면 분식에서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거나 우유랑 같이 먹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 하라주쿠 다케시타 거리에 있는 농심의 ‘신라면 분식’에서 현지인들이 농심 라면과 김밥을 먹고 있다./사진=유예림 기자


올해 창립 60주년, 내년이면 신라면 일본 출시 40주년을 맞는 농심의 제품은 라면 종주국인 일본에서 마트와 편의점, 식당 등 어디서나 구입하고 먹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1등 라면과 스낵회사로 성장한 농심은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앞세워 일본 시장도 빠르게 잠식해가고 있다. 특히 미소(된장)와 소유(간장), 시오(소금), 돈코츠 등 달고 짠 국물이 대부분이던 일본 라면 시장에서 매운 라면을 선보여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일본 라면 시장은 규모가 크고 종류도 다양하지만 4대 맛인 된장·간장·소금·돈코츠 제품이 60~70%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해산물이나 카레 등이 나머지 시장을 점유 중이다. 김대하 농심 일본법인장은 "일본 인스턴트 라면 시장 규모는 7000억엔(한화 약 6조5000억원)으로 라면 분류가 굉장히 다양하다"며 "농심은 이전엔 없었던 매운 라면 시장을 만들어 시장 규모를 6%까지 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 신라면은 단순히 한국 라면으로 통했다면 이젠 매운 라면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농심은 신라면 브랜드로 일본에서 135억엔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420억엔 규모의 매운 라면 시장에서 30~40% 가량을 차지하면서 1위 브랜드를 차지한 것이다. 여기에 봉지·용기 등 전체 라면 시장에서도 신라면 브랜드는 전체 9위에 올랐다.

일본 도쿄 긴자의 마로니에게이트 쇼핑몰에 있는 식당 '샤브요'. 현지인들은 샤브샤브를 먹은 뒤 후식으로 신라면을 끓여 먹는다. 메뉴에는 샤브샤브에 신라면이 포함된 구성이 표시됐다./사진=유예림 기자


같은 날 찾은 일본 외식 시장에서도 농심 라면의 인기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도쿄 긴자의 마로니에게이트 쇼핑몰에 있는 식당 '샤브요'를 가보니 현지인들은 샤브샤브를 먹고 나서 후식으로 신라면을 끓여 먹었다. 메뉴에도 신라면이 포함된 샤브샤브 구성이 한눈에 들어왔고, 신라면을 함께 먹는 설명도 표기돼있었다.

샤브요는 일본 내 유명한 외식프랜차이즈 '스카이락'의 브랜드로 전국에 390여개 매장이 있다. 샤브요가 농심에 먼저 협업을 요청해 지난 7월21일부터 2개월간 신라면 18만봉지를 납품했다. 매장 관계자는 "더운 여름엔 샤브샤브를 잘 먹지 않으니까 신라면과 함께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나카메구로에 있는 '이요산 서울'에서도 K푸드의 열풍이 느껴졌다. 일본의 외식 브랜드 '제톤'이 한국 포장마차 콘셉트로 꾸민 이 가게에선 즉석 라면 조리기로 농심 라면을 한껏 즐길 수 있다. 한국 '소맥'에 안주로 신라면과 너구리, 짜파게티, 사리곰탕, 안성탕면 등을 끓여 먹을 수 있는데다 한국 아이스크림도 곁들일 수도 있다. 직원인 니노미야 마사요시씨는 "지난 6월말부터 라면 판매를 시작했는데 한달에 300봉지 정도 팔린다"며 "신라면 블랙과 너구리가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일본 도쿄 나카메구로에 있는 주점 ‘이요산 서울’. 한국 포장마차 콘셉트로 꾸며진 매장에선 즉석 라면 조리기로 농심의 라면을 먹을 수 있다./사진=유예림 기자


농심의 신라면이 일본 가정과 외식 시장에서 부각되자 현지 라면 기업들도 매운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나섰다. 대표 업체인 '닛신'은 신라면과 유사한 매운 라면을 처음 선보였다. 김 법인장은 "현지 기업들도 매운 라면을 내놓으면서 관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면서도 "그만큼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고무적"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농심은 일본 소비자들이 매운맛에 익숙해질 수 있게 제품군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라면보다 덜 매운 '신라면 김치'를 통해 고객 접점을 확대하고 있는게 대표적이다. 정영일 농심 일본법인 성장전략부문장은 "치즈와 크림을 더한 '신라면 툼바'나 '신라면 김치'가 부드러우면서도 덜 매운 새 맛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 제품을 통해 신라면을 접한 후 나중엔 신라면 오리지널에 도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농심 일본 법인 매출 추이/그래픽=이지혜


일본에서 매운 라면의 선두로 올라선 신라면은 현지 법인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 전체 매출 가운데 신라면 비중은 75%에 이른다. 일본법인 매출은 2015년 30억엔에서 5년만인 2020년에 95억엔으로 껑충 뛰었고 2021년에 112억엔을 기록하면서 100억엔을 넘겼다. 이듬해인 2022년에 125억엔, 2023년에도 145억엔으로 매년 우상향하고 있다. 지난해엔 173억엔으로 역대 최대 매출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일본법인의 성장세는 농심의 해외 사업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일본법인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전체의 9.6%로 미국(38%), 중국(12.8%)에 이어 3번째로 높다. 김 법인장은 "일본 즉석 라면업계에서 이런 성장률은 없다"며 "이 과정에서 신라면 브랜드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덧붙였다.

"매운맛 못 먹어? 안 팔면 돼" 20년 고집 통했다…일본 홀릴 승부수는
-김대하 일본법인장 "올해 매출 200억엔 넘기는게 목표"
김대하 농심 일본법인장./사진=유예림 기자


"라면의 본고장에서 '신라면'을 잇는 제2의 브랜드로 '너구리'를 키우는 투트랙 전략으로 올해 매출 200억엔을 넘기는게 목표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카스미가세키에 있는 농심 일본법인에서 만난 김대하 법인장(사진)은 "매운 라면 시장을 더 키우면서도 너구리의 기본 맛과 순한 맛으로 모든 연령대를 아우르는 브랜드가 되겠다"면서 이같은 청사진을 밝혔다. 매운 라면의 불모지였던 일본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관련 시장 비중을 현재 6%에서 2030년까지 10%로 확대하고, 시장 점유율도 50%까지 끌어올리겠단 포부다.

김 법인장은 "너구리의 기본 맛이 매운 맛에 부담이 없는 젊은 세대를 공략한다면 순한 맛은 5060세대나 매운 제품을 잘먹지 못하는 일반 소비자들을 겨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라면과 너구리를 앞세워 매운 맛이 주류인 한국 라면에 익숙해지도록 한 뒤 승부를 보겠단 전략이다. 이를 위해 농심 일본법인은 다음달부터 너구리 IMC(통합 마케팅)를 가동한다. 해외 거점국에서 너구리로 통합 마케팅을 하는 첫 사례다.

대표적으로 너구리 캐릭터를 활용해 마스크팩을 만든다. 너구리 라면의 다시마액을 활용한 마스크팩을 제작해 판매하고 굿즈처럼 판촉물로도 쓸 예정이다. 다음달엔 너구리 일본 전용 컵라면을 현지 5대 편의점에 입점시킨다. 신라면 외 브랜드론 처음이다. 정영일 농심 일본법인 성장전략부문장은 "일본에 자리 잡은 신라면과 브랜드를 연동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너구리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굿즈 등 체험 접점을 확대하고, 온·오프라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너구리 통합 마케팅을 실시해 소비자들과 소통하겠다"고 소개했다.

특히 너구리의 오동통한 면발과 식감, 전자레인지로 조리해 먹을 수 있단 강점도 내세운다. 정 부문장은 "일본 편의점은 한국과 달리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해먹는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다"며 "한국 라면은 전자레인지로 먹으면 더 쫄깃해진단 점을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도쿄 하라주쿠의 농심 '신라면 분식'에서 판매하는 라면 제품들./사진=유예림 기자


농심은 전자레인지 등 라면 조리법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신라면 인지도를 높여온 만큼 이 방법을 너구리에도 적용한단 방침이다. 신라면의 경우 용기면이 70~80%를 차지하는 일본에서 '봉지로 먹으면 더 맛있는 라면'으로 자리 잡았다. 김 법인장은 "신라면의 진정한 맛은 봉지로 먹어야 알 수 있다고 알렸다"며 "면을 먼저 끓이는 일본과 다른 한국의 라면 조리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봉지 라면 시식을 많이 했는데, 신라면은 5분을 끓여도 면의 꼬들꼬들함이 살아 있어 일본 소비자들에게 통했다"고 말했다. 이어 "신라면을 볶음면이나 탄탄면 형태로 먹거나 콩나물과 토마토, 카레, 치즈 등 재료를 넣어 먹는 방법을 많이 제안했다"고도 했다.

2000년 일본에서 근무를 시작하며 2002년 법인을 만드는 과정부터 신라면의 현지 안착 과정을 지켜본 김 법인장은 현지 인기 요인으로 타협하지 않은 매운 맛의 철학을 꼽았다. 그는 "신라면은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남쪽 끝자락 오키나와까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면서 "일본 대형 유통채널 이온(AEON)엔 전국적으로 들어가있고 봉지는 편의점 대부분에 깔렸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20년 전엔 바이어가 신라면을 두 입 먹더니 상담 내내 땀을 흘렸고, 어떤 바이어는 사람이 먹지 못할 매운맛을 만드냐고 화를 냈다"면서 "이런 시장에서 매운 신라면을 파는게 쉽지 않겠다고 판단해 본사에 순한 맛을 만들면 안되냐고 건의도 해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신춘호 명예회장은 "매운 맛을 못 먹는 사람한텐 안 팔면 된다"며 "신라면 맛을 바꾸지 말고 그대로 팔라"고 주문했다. 이에 김 법인장은 "한국의 매운 맛을 지켰고 연간 400~500개씩 라면 신제품이 출시되는 일본에서 결국 40년 장수 브랜드로 성장했다"면서 K푸드 인기가 잠잠해져도 농심 브랜드는 살아남도록 하는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지에 브랜드를 심고, 식문화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한류 열풍이 끝나도 농심 라면이 매대에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우후죽순 많은 제품 속에서 농심의 매운맛이 고유한 브랜드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일본 도쿄 하라주쿠의 농심 '신라면 분식'./사진=유예림 기자


도쿄(일본)=유예림 기자 yes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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